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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목장 사역으로 나아갑시다.(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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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사자를 세워놓고 누구든지 사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게 하면 재산을 다 주겠다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아무도 사자로 하여금 웃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허름한 옷을 입은 중년의 한 남자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사자 앞에 서서 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자야, 날 잘 봐.  내가 지금 막 세례를 받고 오는 길이야"  이 말을 들은 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씨~익 웃더랍니다.  결국 주인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자 주인이 집에 돌아가서 생각을 해 보니까 도저히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자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하면 재산을 다 주겠다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아무도 사자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못하는데, 어느 날 깨끗한 양복에 정장을 한 신사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신사가 사자 앞에 서서 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나 기억나?"  사자가 가만히 보니까 기억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기억이 난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이 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 말이야, 어제 목사가 되었어"  이 말을 듣고서 사자가 잘했다고 정신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결국 주인은 그 신사에게 재산을 다 주어야만 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린 사자 주인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자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면서 울게 하면 재산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사자로 하여금 울게 못하는데, 어느 날 성경책을 든 신사 한 사람이 자기가 해 보겠다고 하면서 나섰습니다.  그래서 이 신사가 사자 앞에 서서 사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너 나하고 안면 있지?"  사자가 가만히 보니까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면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이 신사가 사자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나 말이야, 어제 교회를 개척했어"  이 말을 들은 사자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을 합니다.  결국 주인은 재산을 다 주어야만 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린 사자 주인이 집에 가서 생각하니까 화병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자로 하여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울게 하면 재산을 다 준다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신사 한 사람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나 알지?"  사자가 가만히 보니까 전에 교회를 개척한다고 했던 그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이 목사님이 사자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야, 너 나하고 개척교회 할래?"  이 말을 들은 사자가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랍니다.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유머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자도 개척교회 교인이 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즘 개척교회를 일으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은 대형교회, 편안한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는 교회를 세워 가는 감격이 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처음부터 대형교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금의 대형교회들은 모두가 처음부터 몸부림을 치면서 헌신한 평신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 역사 이래로 예수를 잘 믿는 나라가 복을 받지 못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잘 섬겼던 사람 치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했던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드렸다가 완전히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드렸던 사람들에게 더 넘치는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몸부림쳤던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과 자녀들이 다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껏 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를 받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전부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전부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인색하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인색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부흥과 함께 여러분의 가정이 부흥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와 더불어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이 크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름지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유익과 기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목회를 해 오면서 제게는 끊임없이 제 마음 속에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맞추려고 주저함이 없이 그 길을 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나 자신의 유익과 기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교회 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내가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7가지 능력 원칙들' 이라는 책에서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현대의 교회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 교회는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지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는 일곱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에는 첫째, 성령의 사역적인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투적인 예배 즉 영적 전쟁의 승리가 체험되는 예배가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기적적인 치유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탄이 쫓겨가는 축사 사역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능력 있는 풍성한 기도가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새로운 수준의 영적 전쟁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널리 확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교회를 신사도적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신사도적 교회란 한 마디로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성령께서 주도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도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내 삶의 주도권을 성령께 드려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교회에 권력자가 있어서 역동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돈 많은 재벌이 있기 때문에 힘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힘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역동적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열망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챨스 슈압이라는 사람은 "무한한 열정만 있으면 사람은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열정은 어떤 자본보다 중요합니다.  열정은 어떤 인맥보다 중요합니다.  열정은 학력보다 더 중요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실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열정은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어줍니다.  열정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열정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옛말에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 위인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타는 열정만 있다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로마서 12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기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는 말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심령의 뜨거움을 받으십시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 심령에 열정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면서 주님의 사역에 열정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복음에 대하여 열심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이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십시오.  언제나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한 걸음씩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에서 '산'은 인생의 문제를 말합니다.  인생의 한계를 말합니다.  삶에서 부딪히는 환경의 문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믿음이 겨자씨만큼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사용해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사용해도 우리가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능력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땅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엄청난 당신의 믿음을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에게는 이미 태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믿음이 있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믿음을 보시고 고치십니다.  믿는 자에게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혼돈의 시대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아십니까?  우리의 믿음은 사용할수록 커집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사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안에 열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보십시오.  성령으로 뜨거워진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면서 살아갔는가를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열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매사에 의욕을 상실한 사람을 만나면 괜히 짜증이 납니다.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에서도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믿음의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우리 주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  가장 싫어하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지 8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은혜 가운데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서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헌신하는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0년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의 행정 체계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첫 작업이 목장 제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제 우리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날개는 대그룹 혹은 축제로서의 주일예배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언양 영신 가족들은 주일에 드리는 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예배의 영광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온몸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뜨겁게 체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와 감격이 있는 예배가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날개는 소그룹으로 모이는 셀 목장의 날개입니다.  우리는 이 목장을 통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돌봄과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친밀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목장 사역 속에서 우리는 낮아지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생동하는 교회였다고 믿어지는 초대교회,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사도행전적 교회는 바로 이 두 날개를 사용했던 교회였습니다.  본문 46절에 보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뗐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에서의 모임은 첫 번째 날개인 대그룹 모임을 말합니다.  축제로서의 주일 예배를 말합니다.  그리고 집에서의 모임은 두 번째 날개에 속하는 소그룹 모임인 목장을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초대교회의 두 날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소위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핵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정부에서는 김정일이 남한을 방문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절대로 남한에 내려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서울에 내려오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도권에 총알택시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 골목마다 대포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왕대포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남한의 남자들은 폭탄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서울에는 비행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서울에 올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남한에는 거의 전부가 핵가족이라는 겁니다.
김정일도 두려워하는 핵가족을 오늘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군중 속에서의 고독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군중 속에서의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가족 시대에 사람들이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확장된 가족입니다.  교회는 바로 확장된 가족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에서 믿음의 가정이라는 말이 'the family of believers'라고 해서 믿음의 가족이라는 단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됨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셀 목장입니다.  우리 교회가 셀 목장으로 전환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 공동체로서의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가족 교회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목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목장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예배가 아닙니다.  목장에는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목장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기도가 아닙니다.  목장에도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찬양이 아닙니다.  목장의 본질은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일반적으로 교제, 친교로 번역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교제 그 이상입니다.  여기에서의 코이노니아는 삶의 나눔을 말합니다.  삶의 참여를 말합니다.  목장에서는 자기의 삶을 열어서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목장 모임에서의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나눔의 교제가 우리에게는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서는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공동체로서의 강한 연대감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목장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국교회 내에서 가정교회 운동을 주도한 톰 알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메마른 교회 안에서 오아시스처럼 물을 내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살아있는 셀들, 이 밀접한 공동체 그룹들만이 모든 슬픔과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으로 삶의 처방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참되고 역동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생활, 즉 신약 성경적 코이노니아를 드러내 보일 때에만 온전히 그 교회된 기능을 발휘하고 교회로 하여금 세속적인 세상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게 할 것이다"  한마디로 초대교회의 힘은 바로 이 교제의 힘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는데서 얻었습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목장에도 바로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살아있는 교제가 생동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빌레몬서 1장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자기 집을 열어서 목장으로 내놓은 헌신이 가지고 왔던 교제의 영향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교제에서 얻어진 기쁨과 위로가 초대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정복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우리의 풍성한 사랑으로 서로에게 더 많은 기쁨과 위로를 전해 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목장을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 간에 가족의 연대감을 깊이 경험하면서 서로가 기쁨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이 목장에 참여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가정을 목장으로 내 놓으십시오.  서로에게 기쁨과 위로를 얻고 마음에 생기를 얻기 위해서 여러분의 가정을 목장으로 오픈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목장 위에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10년을 준비하는 우리 교회가 목장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저는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마음이 나누어지면 아무런 일도 못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개미 한 마리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뜻이 분열되면 결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분열된 곳에는 사단만 득실거립니다.  사단이라는 말은 분열하다는 뜻입니다.  사단은 철저하게 시작을 못하게 만듭니다.  설령 시작을 했다 치더라도 끊임없이 분열을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나아감에 있어서 부정적인 소리에 귀를 막으십시오.  불평의 소리에 입을 닫으십시오.  그리고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셀 목장으로 전환함에 있어서 실수를 경험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또 매 주일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장소에 참석하여 함께 목장을 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면서 헌신하게 되면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목장으로 나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교인의 사역화라는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20% 미만이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80% 이상의 성도들은 그저 구경꾼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교인들입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 안에서 사역의 자리를 만들어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장의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80%가 사역을 하고 20% 미만이 방관자의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0명이 목장에 나오면 8명이 일하고 2명은 구경합니다.  왜냐하면 목장은 구조적으로 서로에게 일정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자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목장에서는 모두가 은사에 따라서 사역에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목장은 언제나 전도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셀은 생명의 기본단위이며,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그런데 셀 목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성장이 아니라 증식에 있습니다.  세포는 분열을 통해서 자신을 재생산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장도 일정한 숫자가 되면 반드시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눔의 이유가 전도를 통한 나눔일 때에 교회는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포의 존재 이유가 증식인 것처럼 목장의 존재이유도 증식에 있습니다.  목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전도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또 다른 제자를 부르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이유가 너희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런 열매 맺기의 순종을 보인 교회였습니다.  본문 47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증식하지 못하는 세포는 어디엔가 병든 세포입니다.  마찬가지로 재생산하지 못하는 목장은 병든 목장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모든 열린 목장을 가짐에 있어서 빈 방석과 축복의 베스트를 사용할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마침내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우리 목장이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실, 이웃들과 아주 쉽게 접촉할 수 있고 또 자연스러운 만남의 환경에서 차 한잔을 나누고 작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곳은 목장입니다.  그래서 목장이야말로 전도의 가장 완벽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이라는 성서학자는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라는 그의 책에서 "가정의 완전한 비형식성, 긴장을 풀고 쉬는 분위기, 또한 이와 함께 병행되는 손님 접대야말로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의 성공적인 상황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의 야손의 집, 고린도 회당 건너편 디도 유스도의 집,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 간수장의 집.  이런 가정들이 바로 1세기의 세상을 변화시킨 복음전도의 중심 센타들이었다"

저는 이제 우리 교회가 목장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 가정이 이 땅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모든 곳이 사역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의 장이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하루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날이 사역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장운동은 단순히 목장 모임을 강조한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역예배로 만족하면 됩니다.  목장 운동, 이것은 저와 여러분의 사역에 대한 기존의 생각의 틀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제야말로 우리 교회가 두 날개를 펼쳐야 할 때임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신앙도 이 두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동참하여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을 목장으로 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목장 사역에로 뜨겁게 동참하여 주십시오. (오 주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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