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왜 고난이 축복인가? (삼상 22:1-5, 삼상 23:1-6)

  • 잡초 잡초
  • 499
  • 0

첨부 1


오늘의 설교를 여러분께 드리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다.”

고난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난 자체는 힘들고 어려운 일일 뿐입니다. 더구나 그 고난이 나의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는 억울한 고난이라면, 과연 우리는 그 고난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지선 양을 잘 압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화상을 입고, 수많은 수술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얼굴마저 잃어버린 여대생 이지선 양. 술 취한 한 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는,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빠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여대생의 인생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고, 그녀 인생의 미래마저 송두리째 짓밟아 버린 안타까운 사연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고통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그녀의 간증집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왜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입니까? 왜 나입니까?’라는 불평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역경 속에서도 평안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이 그녀의 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손가락을 절단해야하는 수술실 앞에서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했고, 힘든 가운데서도 숟가락을 혼자 잡을 수 있어서 감사했고, 문고리를 손으로 잡고 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그녀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책 「지선아 사랑해」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저는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지선 양에게만 고난이 축복은 아닐 것입니다. 이 역사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그들의 삶의 목표가 영글어지고, 인격이 다듬어졌음을 곳곳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낸 만델라, 그는 27년 동안 감옥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복역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합니다. 꼭 아브라함 링컨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역사 속의 훌륭한 인물들은 고난 속에서 그들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스데반, 엘리야, 또 우리가 흔히 예를 들 수 있는 요셉과 에스더,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형제들, 사도바울, 그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동일합니다. 그도 억울한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그런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아름다운 섭리와 계획이 있는 것을 믿고 꿋꿋하게 이겨나갔던 인물입니다. 양치는 목동소년이었지만, 어느 날 전쟁터에 심부름 갔다가 블레셋의 거대한 골리앗 장수를 물맷돌로 무찌른 이후에 갑자기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군대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승리가 오히려 그에게 화근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핍박과 미움을 받는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다윗의 부모들까지도 동굴 속에 숨어있는 다윗에게 피신해 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누리고 있던 모든 기득권들 영광스런 군대 장군의 직책들, 의지하던 것들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갈 곳이 없고, 머물 곳이 없어서 그는 외국을 전전하고, 천대를 받고, 때로는 미친 행동을 하고, 동굴과 광야에서 부엉이처럼 숨어 지내는 그런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34:19는 다윗의 시입니다. 동굴 속에서 지은 다윗의 시라고 설명이 붙어 있는데,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그는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 저자는 특별히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겪은 고난을 이렇게 간증으로 고백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요, 그에게 유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18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내가 지금은 고난을 받지만 고난 때문에 오는 그 후의 아름다운 영광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많은 고난이 다윗에게 오히려 축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많은 고난의 세월이 어떻게 다윗에게 축복이 될 수 있었을까요? 고난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배웁니다. 아픔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평안하고 건강할 때에는 별로 깨닫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아픔 속에서 몸부림 칠 때, 깨닫는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고난이 우리에게 새로운 배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이 축복일까요?

첫째로 고난은 기도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기도와 담 쌓아놓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을 부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때로 고난은 기도의 싸인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기도의 보좌로 초청하시는 것이 고난입니다. 일찍이 기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EM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는 하나님의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현대 교회에 필요한 것은 좋은 방법이나, 신기한 조직이나, 새로운 기계문명이 아니다. 현대교회는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한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대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현대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무엇입니까? 시설이 부족해서입니까? 재정이 없어서입니까?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우리들 자신들의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너무 바빠서, 아니 기도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나는 기도 안 해도 잘 살고 있는데 뭐,’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우리들을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 한걸음 한걸음 기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을 기도를 통해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기도에 관한한 뼈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얼마나 심하게 추격하고 핍박하는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21:17에 보니까 다윗이 사울이 두려워서 그는 판단력을 잃고 순간이나마 어디로 피신을 했는지 아십니까? 급한 김에 블레셋의 유명한 도시 중의 하나인 가드로 피신을 했습니다.
가드에는 아기스 라는 왕이 있는데, 이 가드란 도시가 어떤 곳이었냐면, 바로 이 다윗이 물맷돌로 무찌른 장수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하필이면 그곳이 거기입니다.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죠. “늑대가 무서워 들어갔더니 호랑이 굴에 들어갔더라” 뭘 피했더니 더 무서운 곳에 이르렀다는 말로, 때마침 그런 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기스 왕에게 가서 사울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여기로 피신코자 왔다고 말했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왕이시여! 이 자가 누구입니까? 이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장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기있는 장수 다윗이 아닙니까? 그가 골리앗을 무찔렀을 때 이스라엘 여인들은‘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위험한 자를 어찌 받아드리려고 하십니까?”하고 펄쩍 뛰었습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 때 그는 다윗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갑자기 미친 사람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몸을 대문짝에 긁히게 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고, 미친 소리를 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보고선‘왜 미친 사람을 내게 데려 왔느냐?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참으로 우리의 위대한 다윗이 어찌 그리 미친 행동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때는 물맷돌 다섯 개로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갔던 그 당당한 장수 다윗이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면서까지 생명을 부지해야하는 그런 존재로 전락해갔다는 말입니까?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다윗은 그 사건을 통해서 뼈아픈 깨달음을 얻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내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했구나.’

그는 그 때에 잊어버렸던 기도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윗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너무너무 위협을 당하니 판단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피신하다가 놉이라는 곳에 걸어갔는데, 거기에는 아비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굶주렸습니다. 수행원도 없었습니다. 칼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가서 ‘내가 너무 굶주렸다. 내가 왕의 특별한 명령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동행자도 없이 이렇게 왔는데, 내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고 아비멜렉은 진설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배부르게 하였습니다. 다윗이‘내가 칼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니까 그는 또 골리앗이 썼던 그 칼을 다윗에게 내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후에 이 아비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이 사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생긴 이 엄청난 비극은 다윗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통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이 진정한 구원자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시편 142편 4~5절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만이 그의 피난처가 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다윗은 아주 비싼 대가를 치루고 기도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 옛날의 유대 땅에 블레셋 거민들이 쳐들어와서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3:1~2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 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아멘.

다윗은 먼저 하나님 앞에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있던 400여명의 무리들이 다윗을 만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렇게 도망자의 신세에 불과한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느냐?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우리는 그럴 힘도 없다”고 다윗을 만류했습니다. 물론 다윗도 그들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사무엘상 23장 4절 말씀도 읽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내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그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서 그일라를 공격한 블레셋을 쳐서 그들을 내쫓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사울 왕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그일라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 물었습니다. 마침 그와 함께 있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서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 앞에 질문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상 23:10~11말씀입니다. “하나님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 왕에게 붙이겠습니까? 사울 왕이 나를 잡으러 여기까지 내려오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물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묻지 않고서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기도는 너무나 중요한 승리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 배우는 기도가 매우 귀중합니다.
종종 어떤 교우들은 제게 “목사님은 늘 기도하라고 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 기도하기 싫어요.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할 말이 없어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하며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성도님, 기도하기가 싫어지시면 “하나님 저 기도 하기 싫어요. 기도할 말이 없어요. 기도가 안돼요.”라며 그것이라도 부르짖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이라도 기도의 끈이 이어진 사람은 바로 하나님과의 생명 줄이 이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고난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도를 배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왜 고난이 축복일까요?

고난은 포용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사무엘상 22장 1절~2절을 보면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아둘람이란 동굴에 숨어있습니다. 동굴은 사람이 거할 만한 곳이 아니지만 다급하기 때문에 동굴 속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환란당한 자와 빚 진자들과 마음이 원통한자 등등이 400명이나 다윗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울왕은 아마 다윗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를 잘 못해서  백성들의 인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한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과 환란당한 사람들과 빚 진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카드 빚지고, 은행 빚지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살 수 없기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산속 깊은 동굴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한사람 한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울이 아니라 다윗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이전의 다윗은 군대의 천부장 이었고, 왕의 사위였으며 호화로운 궁전에서 값진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환란당한 사람들과 빚진 자들 같은 인생의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가장 낮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자이고, 노숙자이고 걸인이며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다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낮추어 그에게 낮은 자들을 보내주셨고, 오합지졸인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통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들을 위로해 주면서 그들을 이스라엘왕국의 주역들로 준비 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습니다. 과부의 사정은 과부가 알고, 홀아비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강도가 새벽에 어느 한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잠자는 주인에게 칼을 대고 일어나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일어나서 자기는 손을 못 들겠다고 했습니다. 왜 못 드느냐고 묻자 자기는 5년 전부터 디스크를 앓았는데 이제는 팔까지 마비가 되어서 손을 못 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강도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실은 나도 10년 전부터 디스크를 앓아 왔어. 직장도 그만두고 생활은 궁핍해지고 내가 오죽했으면 강도짓을 하겠어.” 라면서 서로 앉아서 디스크에 대한 좋은 약이 무엇인지, 디스크 잘 고치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하며 디스크에 관한 이야기로 몇 시간동안 서로 토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강도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그냥 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을 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노래가사처럼 이것이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감옥에 가느냐? 그게 인간이냐?”하며 전과자들을 사람 취급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사업하다가 억울한 모함을 당해 사기죄로 일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그분의 눈높이가 죄수들과 같아졌을 때 그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감옥에 오는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구나! 억울한 모함을 당한 사람들도 있고, 양심수도 있고, 민주화를 위해 산 사람들도 있고.”하며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죄수들이 감옥에 오게 된 것은 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일년 후 감옥에서 석방된 후에 자기의 재산과 시간을 들여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돕는 일에 자기 일생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 마음이 낮아지지 않으면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어 밑바닥 사람들까지도 다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려진 사람들이 다윗을 만나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으로 성장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도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걸고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 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 환란당한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 빚 진 사람들이 와서 성도의 따스한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되어 가는 공동체가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주위에 있던 사람들 중에 온전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에 비난받던 세리,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 몸 파는 여인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복음의 세계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삶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새로운 희망의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할 줄 아는 포용력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고난은 왜 축복일까요?

고난은 진실한 우정의 가치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다 고독합니다. 많은 교인들 앞에서 설교 하는 목사도 행복해 보이지만 교인들이 다 떠나가면  때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주일 설교가 끝나면 바로 사택으로 가지 않고, 강변을 한바퀴 돌고 집에 간다고 합니다. 뭔가 느끼는 외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심에 있다가 모두가 떠나갔을 때 느끼는 허전한 마음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외로운 인생길에 행복하게 사는 비결 중 하나가 벗을 갖는 것입니다. 좋은 우정의 친구를 갖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에센바흐(독일 중세의 궁정 시인)란 분은 “한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 명의 적이 우리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한다.”란 말을 했고,
  시드니 스미스(Sidney Smith)란 분은 “삶은 우정에 의해서 보다 풍성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다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다.”란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벗, 내 인생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진실한 우정은 건강할 때는 잘 모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들의 우정이 진실한 우정인지 거짓된 우정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우리 교우들을 볼 때면 한쪽이 어려움을 당할 때도 계속 지속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대개 같은 처지에 있을 때는 친하게 잘 지내는데 한 사람이 부도가 나서 어려운 처지를 당하면 친구들이 찾아가도 돈 꾸러 오는 줄 알고 보증 서달라고 오는 줄 알고, 전화하면 받지 않고 전화번호도 바꾸며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진실한 우정이 아닙니다.
상대가 고난당할 때 같이 고통당할 수 있는 것이 진실한 우정입니다. 또한 그가 외로울 때 함께 해주고, 그가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그의 침상머리에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에 요나단은 골리앗과의 승리 후에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자와 목동 소년과의 사랑이 불가능했겠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며 사랑과 우정을 나눌 만큼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사울 왕에게 다윗이 미움을 받고 도망가는 처지에 있을 때 다윗을 변호해 주었고 위험을 무릎 쓰고 다윗을 피신시켜주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에게 자기가 차지할 왕좌를 빼앗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다윗의 후원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윗이 황무지 숲에 숨어있을 때 요나단은 다윗을 은밀히 찾아와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23장 16절~17절을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떨고 있는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은 너를 결코 잡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왕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며 다윗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있더라도 몇 년 후에 왕이 된다면 그 고난쯤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너무 힘든 경쟁의 시련 가운데 있더라도 몇 년 후에 재벌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그까짓 고난은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절망 중에 피어난 희망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지친 다윗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야 이 정도 고난쯤은 이겨내야지”하며 격려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요나단의 빛나는 우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바탕위에서 좋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관계도 요나단과 다윗과 같은 우정과 사랑으로 맺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특별히 친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보면 밥 먹을 때도 같이 먹고, 교회 올 때도 같이 오고 참 좋습니다. 그런 우정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은 불행과 고통이 닥쳐왔을 때에도 정말 내 생명과 물질까지도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우리 영신교회 공동체가 서로를 진정한 우정과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우정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귀한 것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고 영광된 미래를 잉태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만나거든 슬퍼하지 말고 기쁘게 여겨라 그것은 너에게 축복이 올 징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고난이 밀려올 때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십시오. 고난 속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의 마지막을 욥기 23장 10절 말씀으로 마무리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다.”
( 이  영 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