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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 1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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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5:8-9절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말씀같이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일을
사람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 나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과는 전혀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이요 오늘 본문말씀의 핵심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출발부터 특별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 간섭하심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님이 간섭하신다는 말은
자꾸 바울의 전도계획들이 바뀌어진다는 말입니다.
먼저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헤어지게 되어서
바나바와 마가는 구브로로 떠났고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이제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본래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제안할 때
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에 형제들을 심방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마가가 먼저
전에 복음을 전했던 구브로로 가버리니깐
뒤 따라가기도 뭣하고 그래서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와 루스더라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 예정 코스와는 정반대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꺼꾸러 돌아간 것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루스드라 하면 바울에게는 희비가 엇갈리는 장소입니다.
앉은뱅이가 고침 받고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격화하며 숭배하는가 하면
돌에 맞아 내 팽겨쳐 죽을 뻔한 일을 당한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청년 디모데를 만난 사건입니다. <2>
디모데를 만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나 바울의 사역에서나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본래 계획과는 반대로 향하는 전도여행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디모데라는 동역자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럼 디모데는 어떤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입니다.
그리고 딤후1:3절에 디모데의 믿음이
외조모 루이스,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아
외가 쪽으로는 3대째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런 디모데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디모데가 복음을 받은 사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바울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아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아마도 디모데가 있었을 것이다 ]
즉 스데반의 죽음이 바울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듯이
바울이 돌에 맞아 성밖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디모데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가능한 추측인 것입니다.
디모데와 바울의 관계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바울이 사역하는 동안 언제나 따라다닌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신약성경 13개 가운데 두 개가 디모데에게 쓴 편지이고
고린도 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후서 빌레몬서의 서두마다
[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묶어 인사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특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에서는 아들 디모데라고 합니다.
이런 디모데를 루스드라에서
생각지도 못했는데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 사역에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부쳐준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사역 위대합니다만
그러나 그 배후에는 디모데와 같은 하나님이 부쳐준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3>
2절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
칭찬받는 자란 인정받는 자란 말입니다.
저는 혹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하기 위하여 저한테 물으면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 이력서 보고 하지 말고 섬기는 교회와 주위 사람들이 칭찬하나 안하나
그러면 틀림없다 ] 라고 말해줍니다.
어떻습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군입니까?
디모데는 예수 믿은지 얼마되지 아니한 청년이지만
처음부터 바로 믿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일군이 되었고
또 사도 바울에 눈에 띠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지 못한 동역자 디모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디모데와 함께 사역을 하는데
또 하나의 생각지 못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3절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생긴 것입니다.
디모데는 왜 본래 할례를 받지 않았을까요?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다 유대인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은 이유는
헬라인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데리고 같이 동역을 하려고 하니
할례문제가 걸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할례란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의 15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이 사역을 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예수 믿는 이방인들은
예수 믿고 나서 반드시 할례를 받게 해야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끝까지 그것은 안 된다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할례를 구원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함께 공식적으로 의논을 하고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관측을 시킨 것입니다. 그 정도까지 할례 문제에 있어서 민감하게 앞장섰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디모데를 데리고 가면서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주기로 결정을 합니다.
왜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게 합니까?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3절 하반절 [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더라 ]
그것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데리고 가면서 <4>
헬라인을 만날 수도 있고, 유대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만나면 항상 옆에 있는 디모데가
아버지가 헬라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헬라인이 있는 자리에 유대인들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한테 매번
[ 이 사람 아버지는 헬라인이지마는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원래부터 유대교육을 받아서 컸고 ]
이렇게 구구한 설명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너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 네가 할례를 받아 놓으면 누가 뭐라고 하면 나는 할례 받은 유대인이다 ]
그래서 유대인에게 복음전파를 위해 건덕상 할례를 받게 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할례를 받느냐? 안 받느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에게 제사 음식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먹고 안 먹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는 문제 때문에 믿음이 약한 사람이 시험 들면
자신은 제사 음식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니
복음전파를 위하여 할례를 받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도나 전통 때문에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난 바울은
여러 성으로 다녀가면서 교회를 돌아보는데
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성장의 모습과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4-5절에
[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
바울은 루스드라를 떠나 계속 여러 성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교회들을 심방했습니다.
바울이 지나가는 곳마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전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5>
어느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은 자전거 인생이라고 표현합니다.
두발 자전거는 계속 가지 않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정지된 상태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하여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전진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먼저 가르치고 지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4절에
[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
당시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들과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는 바로 신약성경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곳 마다 이 규례를 가르쳐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뼈대가 되어 믿음이 굳건해 지니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날마다 수가 더해 진 것입니다.
말씀으로 믿음이 더 굳건해 지는 교회
날마다 수가 더해지는 내일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여러 성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또 성령님의 간섭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6-7절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
바울 일행은 전에 복음을 전했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서
무시아를 거쳐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는데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지 아니하고 드로아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소아시아 서북쪽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데
성령님께서 두 번이나 막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자 하는데도 자꾸 막히면
거기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마귀가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럴 때는 잘 분별하여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이라면 다른 길로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막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길을 열어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6>
신학교 다니다가 결핵으로 쓰러져서 2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고 회복되니
공부가 하고 싶어서 마지막 돈 되는 것, 집사람의 결혼 반지를 팔아서
차비를 해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절벽을 간신히 올라가는데 누군가 발길로 차버려요
그래서 아하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싶은데도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서울로 올라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어 아는 전도사님 집에 찾아갔어요.
그 전도사님은 부자집에 결혼하여 장모님이 집도 마련해 주고
당시 승용차도 사주고 해서 며칠 신세 질 수 안 있겠나 싶어 간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방이 두 칸이라서 건너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전도사님과 사모님이 말다툼을 해요
가만히 들어 보니 [ 신혼집에 찾아오는 친구는 친구 하지 마라 ] 고 해요
그래서 통행금지만 없었더라면 그 집에서 나왔을 것인데
통행금지 때문에 나오지는 못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교육전도사 하는 총각 전도사 친구 집에 찾아갔는데
겨울인데도 냉방이예요. 그래도 그곳에 누우니 얼마나 편안한지
그 후에 공부할 길이 없어 그냥 대구로 돌아왔지요
그리고는 내일교회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개척교회 하라고 다 예비해 놓았는데
나는 공부하겠다고 우겨 세우니 하나님이 허락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보다 개척교회 시작 잘 한 거지요.

저는 오늘 본문말씀 속에 바울의 전도의 발걸음을 보면서
생각나게 하는 기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W이론 의 저자 <이 면우> 교수팀이 만든 로봇 청소기입니다.
자동 베큠 진공청소기,
이 청소기를 충전해서 방안에 스위치를 켜놓고 나가면
자기 혼자 알아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막히면 돌아서고,
여기 막히면 방향 바꾸고 해서 온 방을 다니면서 진공 청소합니다.
먼지를 다 빨아들입니다.
이 청소기가 돌아다니면서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방향 바꿔 뒤로 나오고,
그 다음에 어떤 물건에 걸리면 다리를 들고 빙빙 돌아가고
그래서 온종일 다니면서 먼지를 다 걷어 올립니다.
그 진공청소기가 하는 일은 한가지입니다.
그냥 다니면서 먼지 빨아들이고, 막히면 방향 바꾸고,
그렇게 하다가 보면 시간이 한시간, 두시간 지나서 보면 방이 다 깨끗해집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와 보니까 방이 깨끗해 졌서 옆방을 치워야겠다고 생각되면
그 청소기를 번쩍 들어다가 옆방에다 갖다 놓습니다.
얼마나 진공 청소기 입장에선 편합니까! 머리 쓸 거 없습니다. <7>
그냥 다니면서 할 일만 하면 됩니다.
바울이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될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한테 맡겨 드립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분명히 나를 책임지시고,
인도해 주실 거다 라는 것을 믿고
막히면 다른 곳으로 가고, 또 막히면 다른 곳으로 가고,
그러다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야! 그 방 청소 다 끝났다'하시면서
어느 날 환상이라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셔서 정신 번쩍 들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에
자기의 인생을 맡기면서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나 그렇게 될 대로 살지 못합니다.
가다가 막히면 돌아가고, 아무나 그런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큰 방향,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모두 맡겨 드리고
바울은 복음전파라는 큰 목적을 가지고
가다가 막히면 돌아가고, 기회가 열리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목표를 정하고 목적지를 정해서 단 한 번도 거기서 벗어난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게 하신 성령님은
어떤 의도를 갖고 계셧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8-9절에 보니
[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루아 하거늘 ]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바울에게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니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그런 중에 바울은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환상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고 손짓하는 것입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8>
소아시아에서 머물지 말고 지경을 넓혀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지경을 더 넓혀 주신 것입니다.
1차전도 여행 때는 소아시아만 가게 되었는데
2차전도 여행 때는 유럽 쪽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3차 전도여행 때에는 그 지경을 더 넓혀
로마를 거쳐 스페인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유럽으로 간 복음은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미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에 [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바울이 곧 손종했다는 말입니다.
환상을 본 후에 삶의 뒷정리 다하고 노년에 떠난 것이 아니라
즉시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즉시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환상까지 보었으니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 문이 열려야 하고,
만사 형통해야 되고, 막힌 문이 없고, 막힌 길이 없고,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받아들이는 등 일이 잘 풀려야 될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보여져서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을 한 후에도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즉 이것은 성령의 지시에 즉시 순종하려면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이 [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 는 환상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그것은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심각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사실을 볼 수 있는 눈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1971년 국제예수전도단(YWAM)의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 박사는 <9>
21세기에는 한국을 쓰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해, 커닝햄 박사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김포공항에 내린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본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겨우 25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였는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이 나라가
어떻게 세계 선교를 감당할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nbsp;1996년, 2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경제적인 발전과 1천만 명이 넘는 성도들을 본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감동했습니다.
겨우 25년 동안, 기독교 인구는 400%나 증가햇으며,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세계 선교를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볼 때라 생각합니다.

저는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성령의 음성에
생각나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지금 타슈겐트 장로교회 사무장 강정길 집사를 처음 만나서
이 분이 하는 말이 자기 누님이 크라스다르에 사는데
누님 집에 가보니
동네 할머니 가운데 성경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러시아 방문을 하면서 크라스노다르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소문대로 가죽성경책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왠 것인냐? 물어 보았더니
자기는 모르겠는데 주위 사람들이 자기가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목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목사님 우리도 빨리 교회 조직 하라우 ]
그래서 크라스 노다르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지금은 선교 후원을 안 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가보면 지금도 곳곳에서
[ 우리도 빨리 교회 조직 하라우 ]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는 환상이
우리 내일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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