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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민족의 살 길(대하 28: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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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 전쟁이 나서 하루에 12만명의 병사가 죽고, 대통령의 아들과 국무총리와 내무장관이 죽었다. 그리고 20만명이 포로로 끌려 갔다.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나라가 침공을 해와 영토의 일부분을 빼앗기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 갔다. 나라가 심각한 위기적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면 이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겠는가?
-?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실제로 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남왕국 유다의 아하스 왕이다.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이 아람왕과 연합군을 형성해서 쳐들어 왔을 때 하루 만에 12만명의 군사를 잃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마아세야와 총리대신과 내무대신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20만명의 부녀자가 사마리아로 끌려 갔다. 국가적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라가 혼란 가운데 빠진 틈을 타고 남쪽에서 에돔과 블레셋이 공격해와서 남쪽의 성읍들을 빼앗아 버렸다. 북쪽에는 이스라엘과 아람, 남쪽에는 블레셋, 동쪽에는 에돔. 서쪽은 지중해 바다. 사방이 꽉 막힌 절망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 어린 왕 아하스는 자력으로 이 국난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법은 딱 한 가지, 당시 최강대국인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은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도움을 얻지 못하는 아하스왕(16-21)
28:16-18, 그 때에 아하스왕이 앗수르왕에게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에돔 사람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블레셋 사람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와 그 동네와 딤나와 그 동네와 김소와 그 동네를 취하고 거기 거하였으니...

1)에돔의 재침공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가 조상인 민족이다. 요단강 건너 사해 동편에 위치한 나라. 별로 힘이 없는 민족이었다. 대대로 유다의 속국이어서 유다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나라였다. 유다가 에돔에게 시달릴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국력이 약화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2)블레셋의 침공
유다 남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민족으로 사사시대 이래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민족이다.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절에는 역시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쳤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세력을 회복하고 유다 남방을 강점해서 여러 개의 성읍을 지배하게 되었다.

유다왕 아하스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믿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과 방백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들을 모아서 앗수르왕에게 예물을 갖다 바쳤다. 앗수르왕이 즉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쳤다. 유다는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게 되었으나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8:20-21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유익이 없었더라

앗수르왕은 이왕 쳐들어 온 김에 유다까지 삼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줄 줄로 기대했던 앗수르왕이 도리어 침략자가 되버린 것이다. 안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하스의 입장이 이와 같았다.

그러면 유다왕국은 처음부터 이렇게 힘이 없었는가?
아니다. 아버지 요담으로부터 나라를 물려 받을 때 유다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대하27:4-6,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하고, 암몬 자손의 왕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 석과 보리 일만 석을 드렸고 제 이 년과 제 삼 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드렸더라.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선대 아버지 때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만큼 강하고 튼튼한 나라였다.
그러면 왜 나라가 이렇게 허약하게 되었는가?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8:1-4,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한지라.

그의 아버지 요담은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걸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경건한 아버지 밑에서 이렇게 우상숭배하는 아들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주석가 박윤선 목사님도 이 부분에 대하여 “이 사건을 통해서 부모된 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다”라고 짧게 코멘트만 하고 있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왠만한 집안이면 가문의 전통이라는 것이 있다. 대대로 유다의 열왕들은 그들의 훌륭한 조상인 다윗의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하스왕는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열왕들과 같았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본문은 아하스왕의 악행에 대하여 열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주로 우상숭배와 이방풍속을 쫓는 것이었다. 바알들의 우상 만들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기, 가나안 사람들의 인신제사 본받기, 전국에 산당을 짓고 미신섬기기...

결론적으로 나라의 힘이 약화되고 외적들에 의해 유린당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우상숭배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28: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2.더욱 깊은 우상숭배에 빠지는 아하스왕(22-25)
사람이 일이 잘 안될 때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착하게 될 때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되고 악화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나는 장거리 운전할 때 잘 조는 습관이 있다. 졸리면 차를 세우고 눈을 좀 붙인 후에 맑은 정신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데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졸음을 참으면서 운전을 한다. 지금까지 아무런 사고가 없었는데 그래서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난 후에는 항상 감사기도를 한다.

여러분, 고속도로는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쉬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면 졸음을 참으면서 휴게소를 스쳐 지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도원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잠깐 멈춰서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고 해결하는 지혜이다.

아하스왕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한 없이 악한 왕이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시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의 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낌이 다윗의 시같다. 만약 아하스가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할아버지의 시집을 펼쳐서 읽었더라면 이와 같은 수치와 위기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였는데 분명히 왕에게 충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28: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어떻게 범죄하였는가?
28:23-25,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1)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드림(23절)
왕하16:10-12,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아람왕을 도운 다메섹의 신을 섬기면 지금의 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기대와는 정반대로 도리어 망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성전 기구를 파괴하고 성전을 폐쇄함(24-25).
아하스의 행동은 이미 이성을 잃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향한 반항적 태도는 다메섹 신을 섬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성전의 기구를 부수고, 문을 닫고 백성들의 출입을 막고, 예루살렘 구석구석마다 우상의 단을 쌓고, 유다 전역에 산당을 세워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도록 했다.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했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다.


3.아하스의 죽음(26-27)
28:26-27,아하스의 이 외의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두심.
20세에 즉위해서 16년 간 다스렸다. 그의 나이 36세. 아직도 젊은 나이였으나 그의 악행을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2)열왕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함.
백성들은 그를 열조들이 묻힌 곳에 장사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나라를 회복시켜 보려고 몸부림친 왕이었으나 죽은 후에 유다의 열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라는 불명예를 받고 말았다.


아하스왕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아하스왕 처럼 행동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본인 자신만 망한 것이 아니라 나라까지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하스왕의 실패의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1)우상숭배
예루살렘에 바알신상을 세우고, 전국토에 산당을 짓고 우상을 만들었다. - 망령된 행동(19절)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왕과 유다에게 어려움을 주신 것은 그들의 교만을 꺽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아하스왕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해 주변 나라를 징치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모든 만물과 열국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무지요, 이기주의다.
사41:29,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2)인본주의
아하스왕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첫째는 강대국의 힘을 이용해서, 둘째는 다메섹 신을 이용해서 셋째는 여러 잡신들을 총동원해서 극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행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말씀에 대한 무지가 인간적인 생각을 들여오는 통로가 되고 무기력한 기도가 세상과 타협하는 원인이 된다.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는 정치 경제에 대하여 잘 모른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떤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출입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이다. 가난한 시절을 겪었던 세대는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배가 고프면 말씀을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먼저 배를 불리도록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나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 문제 - 경제적 위기, 정치적 혼란, 교육의 부재,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요함이 우리의 살 길인 것처럼 그런 것들에 목을 매고 있다. 돈이라는 우상과 정치라는 수단이 나라의 살 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들과 성도들은 돈과 정치가 나라와 민족의 유일한 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우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속에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생활로는 나라를 위기에서 살릴 수 없다. 아무런 방향 제시도 할 수 없다. 교회는 단지 천국가는 대기소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돌아 보고 하나님만이 나의 삶에 주관자가 되시고 나의 도움이 되심을 믿고 나라와 민족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능력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원 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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