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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부흥하게 하옵소서! (합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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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능력의 탁월함을 기뻐하지 않고 그 사람의 신실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높여 줄 수 있는 믿음만 가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 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길이 열립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기회의 때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설령 지나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놀라운 기회를 우리에게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이라도 그 속에 믿음만 들어가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니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의 분량을 크게 하십시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발 종발이 같은 적은 믿음의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큰 역사를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를 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이성적인 판단과 경험들을 포기하십시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감과 계시를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에도 하나님은 눈으로 바라본 그대로 판단하고 고백했던 10명의 정탐꾼보다 위로부터 오는 영감과 계시를 붙잡고 고백했던 2명의 장탐꾼을 쓰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계산하고 판단했던 빌립보다, 보는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고백했던 안드레의 믿음을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든 이성과 과학과 경험의 지식은 십자가 아래에 다 묻어버리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의 심령 속에 계시적이고 영감적인 믿음이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입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입은 복을 부르기도 하고 복을 쫓기도 합니다.  복을 부르는 입이 되려면 입으로 자꾸 큰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해야 합니다.  말대로 됩니다.  말이 인생을 바꿉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끊임없는 말의 훈련을 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복 받을 사람아!"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사람이 될 아이야!"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이런 말이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이놈의 웬수덩어리야!"  "쳐죽일 놈아!"  이런 저주의 말보다는 이 말이 더 안 좋을까요?  "이 축복 덩어리야!"  "세상을 살릴 사람아!"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이후로 내 입에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말을 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저주의 말은 흔적조차도 지워버리십시오.  오직 긍정적이고 복된 말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그래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행동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살려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가지 말아야 할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자꾸만 하면 우리의 믿음은 그나마 있던 믿음까지도 까먹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곳에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생활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세상과는 구별된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여기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의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구별된 생활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은 꿈에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면 내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역사하는 믿음이 될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지만 안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제나 그저 그런 존재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핍박이 있습니다.  애매한 비평과 판단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결코 시시한 사람들의 비평과 판단에 허우적거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실수나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서부터 들려오는 어두운 소리에 귀를 닫으십시오.  솔직히 우리를 실패자로 몰고 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불안과 근심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불안과 근심을 정복하는 일은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 시간 내 안에 있는 불안과 근심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녹여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실패자의 기질을 성령의 능력으로 정복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절망과 좌절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성령의 빛으로 몰아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매한 소리에 귀를 막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환경 때문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그것도 알고 보면 사실은 그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어떠해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미 중심을 잃고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굳게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동굴에 숨어 있을 때에 지은 시편입니다.  그는 1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주께로 피합니다."  그는 지금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7절 이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동굴 밖에는 사울과 사울의 군대가 자신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결국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람이 불어야 연이 뜹니다.  상처 입은 조개만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듭니다.  고통을 사랑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고통을 통하여 인간은 더욱 강해집니다.  고통을 통하여 인생을 더욱 성숙시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믿음 안에서 고통을 소화하고 이겨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아직도 이 땅에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된 인생의 가능성을 하나님 안에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환경의 변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상대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환경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싸움도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의 싸움입니다.  때문에 환경이 어떠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게 믿음이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다고 원망하지 말고 내게 그만한 믿음이 없음을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담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지팡이가 되십시오.  어떤 생명이든 고난과 역경의 삶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만 역사하면 단번에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을 줄 믿습니다.  성경은 가난과 굶주림과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복 받은 가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복 받은 백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복 받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이상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어이 우리 시대에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복 받는 때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더 높은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꿈도 없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비전도 없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잘 사는 것도 죄가 아니고, 못사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령이 충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꿈을 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 주고 복 주고 복 준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 시대와 기업과 사람과 자손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나 복은 하나의 결과이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복을 받았겠지…"  아닙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 부자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복 받은 사람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복과 성공은 믿음과 기회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회를 꿈꾸십시오.  하나님의 기회를 담을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사람을 통해서만 복을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복은 하나님이 창조하십니다.  복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의 원리는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습니다.  어느 글에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믿음은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나 춤추게 한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투자 중의 투자는 흔들림이 없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이 강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 나라가 부흥해야 우리 개개인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망하면 우리 개개인도 망하고 맙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나라가 어렵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돈을 벌려다가 돈보다 귀한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있습니다.  결국 나라가 잘 살아야 합니다.  나라가 부흥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개인도 잘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개인의 영적 삶이 풍성합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개개인이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침체하거나 쇠퇴하게 되면 개인의 영적 삶이 황폐해 집니다.  개개인이 고통스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양 영신교회의 부흥과 함께 여러분의 영적 삶이 보다 풍성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언양 영신교회의 부흥과 함께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이 하늘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해야 하고, 생명을 걸고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몸부림치십시오.

한국교회는 20년 전까지 세계 교회가 부러워하고 놀랄 만큼 부흥되던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세계 교회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에 한국 교회만은 급성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땅의 교회가 지금 내적으로는 갈등을 겪고 사회적으로는 비난과 지탄을 받기 시작하더니 침체와 몰락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에 한국 교회를 떠난 영혼이 1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지금 이 땅에는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울증 환자와 같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사회의 심각한 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지금 우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복음의 촛대를 이 땅에서 옮기지 마옵소서."  우리는 다시금 이 땅에 부흥의 계절이 불어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하옵소서!"  "주여! 이 땅의 교회들이 부흥하게 하옵소서!"

오늘 본문이 쓰여진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였습니다.  여호야김은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6장 20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성경을 읽어주면 두루마리 성경을 칼로 잘라 불에 던져 버리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말씀을 무시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유다를 심판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에 유다를 침공해서 여호야김 왕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잡아갑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였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수 많은 젊은 인재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박국은 기울어 가는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비록 우리가 망할지라도,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곤고함을 겪을지라도 주님의 일은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고생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일, 주님의 나라, 주님의 뜻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말고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과 치유를 구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부흥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민족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땅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더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영어로 임브레이스(embrace) 즉 '포옹한다, 껴안는다'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움이 있을 때에 낙심하거나 도피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씨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을 때에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씨름하는 사람이 오늘 이 시대의 하박국입니다.  사업이나 직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직면하고 가슴에 안고 녹여버리는 사람이 이 시대의 하박국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슴에 안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오늘의 하박국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보고 회피하거나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 빈자리를 보고 가슴 아파하며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여기에서 '부흥케 하소서'라는 말은 죽었던 것을 다시 소생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생명이 주어졌는데 이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이 생명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장작불이 꺼져가고 있을 때에 기름을 부어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말은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부강한 나라로 일으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 옛날 다윗 시대와 솔로몬 시대를 회복시켜 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환난의 때가 빨리 지나가고 옛날처럼 다시 회복되는 은총을 달라는 강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를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번영했던 시대를 의미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일,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바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가 오심에 대하여 모형적으로 예비한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주의 일이 강하게 나타난 부흥된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다시금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회복시켜 하나님의 진노의 때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긍휼의 때를 빨리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라와 성전의 부흥을 위해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절규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시기오놋'이라는 말은 정열적인, 열광적인 노래를 의미합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부흥을 위해서 불타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다시금 주님의 뜻이 실현되는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달라고 강렬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의 이 기도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다시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하심입니다.  사실, 하박국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외면하신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들을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따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망루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믿음의 눈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보게 되었습니다.  깊은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영적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내 가정의 부흥을 바라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꿈꾸시기를 축복합니다.

비전이란 글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펼쳐갈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전은 망상이나 공상과 다릅니다.  망상이나 공상은 자기의 욕망을 기초로 해서 자기의 화려한 미래를 꿈꿔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들은 현실을 보는 순간 다 날아가 버립니다.  부질없는 일장춘몽이요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비전은 다릅니다.  현실을 보아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영적 부흥을 간절히 소망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의 부흥을 여러분 자신보다 더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결국 우리가 부흥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환경도 바꾸어주십니다.  시대의 흐름도 바꾸어주십니다.  부흥하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철저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 교회가 수년 내에 부흥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수년 내에 부흥하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수년 내'라는 말은 영어 번역에 보면, 'in our day'라고 해서 '우리 시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주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부흥해야 합니다.  지금 부흥해야 그 때 더 부흥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면적인 부흥이 이루어져야 그 때에도 부흥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에서 릴레이 선수가 바통을 이어받을 때에 가만히 서 있다가 받습니까?  제자리 뛰기도 하고 조금 뛰다가 바통을 받으면 전속력을 다해서 뜁니다.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말은 수년 동안 가만히 기다렸더니 부흥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위해서 지금도 뛰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비전을 붙잡고 더 열심히, 더 뜨겁게 달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부흥해야합니까?  지금 부흥해야합니다.
어떻게 해야 부흥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부흥할 수 있습니다.  부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1907년의 대부흥운동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1907년의 대부흥은 사실은 1903년부터 기도하기 시작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원산에 선교사들이 모여 기도했는데 하디라는 선교사님이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한국에 와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실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백인이라는 우월감과 권위주의 때문에 그렇게 된 줄로 압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디 선교사님의 눈물의 기도를 듣고 있던 전계은, 정춘수 같은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미워했습니다"  이 기도의 불길이 평양으로 옮겨져서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부흥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기도는 부흥의 밑거름입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는 메마릅니다.  삭막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생동력이 넘칩니다.  분위기가 풍요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부흥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지는 '아멘' 소리에 믿음 없이 건성으로 듣고 있던 사람들도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멘으로 화답할 때에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뜨거운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뜨거워집니다.  얼음 덩어리 옆에 있으면 뜨거웠던 사람도 차갑게 식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의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부흥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아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지금의 빈자리는 금방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흥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합니다.  부흥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피하고 낙심하는 사람들 앞에서의 역사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의 역사는 무너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의 교회 공동체는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9세기말 유명한 부흥 운동가 스미스 목사님에게 어떤 성도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나는 부흥을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을 맛보길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때 스미스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 원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바로 여기서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거기서 부흥이 일어나면 당신의 가정도, 당신의 교회도, 당신의 민족도 부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내 가정과 교회에 일어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마음속에 부흥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령이 부흥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말로만 부흥, 부흥하지 마시고 부흥을 위해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심령마다 만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구체적인 사역의 현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의 입을 통해서 불려지던 노래가 어린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간절한 소망이 되어 불려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의 작가는 오늘 이 땅의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었을 것입니다.  희망의 빛을 상실한 채 날로 어두워져만 가는 황무한 이 땅의 역사를 바라보며 다시금 부흥의 역사를 소망하면서 지었을 것입니다.  동일하게 오늘 우리도 구석구석 병든 채 신음하는 이웃들을 바라보며, 세속적인 가치로 병들어 있는 교우들을 바라보며, 생명을 잃고 죽어 가는 영혼을 바라보면서 이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오 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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