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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수확, 감사, 사랑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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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거지와 게으른 거지가 교회 주변에 살고 있었는데 두 거지는 이따금씩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될 즈음에 부지런한 거지가 구걸하러 갈 채비를 하면서 게으른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같이 가서 동냥하지 않으려나?” “난 안 갈래. 자네나 가서 열심히 동냥해 오게.” 동냥 나가는 게 귀찮았던 게으른 거지는 그냥 빈둥빈둥 놀면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있다가 동냥 나갔던 부지런한 거지가 돌아와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는데 그때 게으른 거지가 잠에서 막 깼는데, 동냥을 나갔던 거지가 빵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옆에서 빵 먹는 걸 지켜보는 것이 곤혹스러웠어요. 배가 더 고프고...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는데...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냥 나가자고 할 때 같이 갈 걸... 괜히 게으름 피우다 쫄쫄 굶게 생겼구만...’ 게으른 거지는 먹을 것 좀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점잖게 빵을 좀 달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번 목사님 설교가 참 은혜스럽더구만... 그때 자네도 듣지 않았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설교 말일 세... 그러니 자네 몸이라고 생각하고 빵 조금만 주게나...” 그 말을 듣고서 부지런한 거지가 빵을 줬을까요? “그래. 나도 지난 번 목사님 설교를 듣고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다네... 그런데 말이야, 난 목사님이 했던 설교 중에 자네가 들었던 그 다음 말씀이 더 은혜가 되더구만...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는 말씀 말일세...”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거지가 가장 싫어하는 색이 ‘인색’이라고 합니다. 인색한 걸 가장 싫어하면서도 인색한 게 거지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움켜쥐고 베풀 줄 모르는 거지, 자기 배만 채우는 거지들이 적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소설가요 사상가인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여 손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은 식탁의 제일 윗자리에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먼저 먹을 자격이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게으른 사람)은 식탁의 제일 아랫자리에 앉아서 먹다 남은 찬밥을 맨 나중에 먹어야 한다. 이것이 이 사회의 법률이요, 도덕이요, 철학이다. 열심히 일한 후에 하는 식사야말로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그랬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생존율이 높고 성공률도 높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해야 할 것에 부지런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동시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과 동시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이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 때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어리고 생각이 짧은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고 육체적인 것을 최고의 삶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점차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가고, 지혜가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영적인 상태가 건강하고, 항상 열려 있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은 물질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삶의 가치를 알고, 나눔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적인 건강과 성숙함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추석

오늘 추석을 맞이하여 고유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4계절을 만드시고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식주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때를 따라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도한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영적인 결실도 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생각하며 청지기로서 충성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영적 결실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추석은 우리나라 2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추석은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그 열매에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추석을 말하기를 “수확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말합니다. 수확이 없는 추석은 쓸쓸할 것이고, 수확은 있는데 감사가 없다면 또 마음이 메마르게 됩니다. 또 우리가 감사는 하는데, 사랑이 없다면 이것도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진정한 추석은 수확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있는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없는 것에 더 불평을 합니다. 떨어진 과일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직 나무에 붙어있는 과일을 보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애써 농사지은 것이 태풍에 쓰러졌다면 참 아깝지만 그러나 세울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가 많아서, 가진 것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감사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 감사는 하나님 제일 기뻐하시는 것,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면서,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함으로 신앙을 회복하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신앙이 회복되고, 감사가 회복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자,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할까요?

가족,친척,이웃에게 감사

가족, 친척, 이웃은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의 날개는 때로는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습니다. 새가 날아가지 않을 때는, 모이를 쪼아 먹을 때는 새의 날개가 부담스럽고 아주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날아가야 할 때, 짐승이 와서 잡아먹으려고 할 때, 도망가려고 할 때는 날개가 없이는 안 됩니다, 날개가 있기 때문에 훨훨 날아갑니다. 공중을 나릅니다. 창공을 나릅니다. 다른 짐승이 아무리 좇아 와도 잡히지 않습니다. 지붕으로 날고, 산으로 날고, 나무 위로 날고, 다 나를 수 있습니다. 그 날개가 어떤 때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러나 필요한 때는 날개 때문에 훨훨 날라 간다 그 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도, 이웃도, 친척도 좋은 때가 있는가 하면,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가족에게 감사하고, 친척에게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돕기도 하시며, 연단시키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나를 도와줄 때가 있고, 때로는 그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을 통해서 내가 연단 받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롬 8:28).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 친척, 이웃을 향해서 어리석고 죽이는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 원망 불평하는 말이 아니라,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추석명절에 잃어버렸던 가족, 친척, 이웃끼리 감사 많이 하는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장 4절“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부모와 조상에게 감사

감사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안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수지 안 맞으면 불평하고, 수지맞으면 감사하고, 그게 아닌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또 그 뿐이 아닙니다. 내가 효를 행하지 아니하고,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이 내 탓이기보다는 부모 잘못 만나고, 조상 잘못 만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발전이 없으며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현상유지하고 살기도 어렵고 퇴보하고 살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수가 없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삽니다. 지금은 없을지라도 내일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넘어졌을지라도 내일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실패했을지라도 내일은 성공의 자리로 옮겨져야 될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아도 내일은 존경받고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부모에게 감사하고, 조상 어른들에게 감사하는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는 나를 피로 낳아주셨고 눈물로 길러 주셨고 땀 흘려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들어야 됩니다. 그런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 감사하더라도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유익이 오면 감사, 피해가 오면 불평, 원망, 시기. 그것만이 아니라, 폭행. 그것만이 아니라, 살인.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행복하기 원하신다면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고,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에 행복이 있고, 감사의 나무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 없이는 행복도 없고, 감사 없이는 평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행복을 원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감사, 감사" 해야 합니다.

국가에 감사

국가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나라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나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있고,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고, 내 기업이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그런 신자가 되어야 참다운 신자요, 참다운 국민 아니겠습니까?

자연에 감사

자연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존귀를 돌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심각한 환경오염에 직면해 있는 이 때에, 생명에 대한 귀중함을 가지고 자연과 그 소산물을 대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감사의 자세인 것입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악하지 않으며 절대로 사람을 살인하지 않으며 절대로 폭행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람끼리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 착한 사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감사의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조상,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지위, 자기의 환경, 자기의 명예, 자기의 성공, 자기의 재산만이 감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조건적인 감사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환경이 바뀌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바울이 옥중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성도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감사를 가르쳐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의 감사의 조건은 환경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만드시고, 환경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참으로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시편 50편 23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감사는 무엇일까요? 예배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이것이 하나님께 향한 최대의 감사가 예배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주의 말씀을 우리가 늘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성취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회복, 인간성 회복, 삶의 회복은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감사가 회복되면, 신앙이 회복되고, 인간성이 회복되고, 삶이 회복됩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부모님, 가족, 친척, 이웃, 더 나아가서 민족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구원받게 하는 데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느 해 보다 이 번 추석명절이 더 즐겁고 더 기쁘고, 더 감사하고 더 감격해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도 좋고, 하나님도 좋으신 추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어제는 지나갔기 때문에 좋고, 내일은 올 것이기 때문에 좋고, 오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어제를 아쉬워하거나 내일을 염려하기 보다는 주어진 오늘을 사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찾고 받아들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이 주어지는 것은 새 기회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안에 있는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가 좋아지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리라는 마음입니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매 순간 순간을 열심히 최선을 다할 때 내일은 더욱 더 아름다운 찬란하고 아름다운 해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은혜를 받고 양질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부지런합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감사하며 기쁘게 일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마음이 민첩합니다. 추석을 지내면서 모든 면에서 수확을 거두시고 감사를 풍성하게 고백하고, 가족들과 친지들과 자연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누면서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 정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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