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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소원 (딤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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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들과의 차이점들 중에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이 없는 소원이 있다는 겁니다. 동물은 그냥 본능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떤 소원이 가장 귀할까요? 대부분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소원들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이기적입니다. 매우 육신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은 다릅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분 하나님께서 소원이 있다니 이해가 잘 안갑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소원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소원을 갖고 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수 있지만 그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로 맡겨 주신 것입니다.

행동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였는데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몇가지 중에 소원이 있었습니다.
소원이 작은 사람은 그 작은 만큼의 삶을 살았고 소원이 큰 사람은 큰 만큼 영향을 미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원없이 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삶에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큰 사람은 질병이 걸려도 빨리 나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입니까? 그 소원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사명자들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런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1.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

부모님의 소원을 자녀들이 풀어 드리는 것은 자녀들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부모님의 소원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호화스런 집을 사 달라든지, 외국 여행시켜 달라든지, 고급승용차를 사 달라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은 정도의 아주 소박한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들이 당연히 알고 그 소원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하나님의 소원은 이 땅에 죽어 가는 영혼, 멸망으로 달려가는 영혼들 모두 한사람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잉어의 수명은 150년, 거북이는 300년, 학은 1000년을 산다는데 인간은 100년도 못삽니다. 수명으로 따진다면 100년도 못사는 인간은 거북이 잉어, 학 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짐승과 다른게 있습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까? 공부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까?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존귀한 이유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먼저 흙을 빚어 사람의 육체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티끌, 먼지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불면 날아갈 티끌, 먼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약한 질그릇 같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기, 생령(살아 있는 영)을 불어 넣어 주신 것입니다. 비로소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 즉 영적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을 육체적으로 보면 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영혼이 이기에 사람의 존재가치가 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 분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버림받고 하나님의 동산, 에덴동산에서 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쫓겨난 인생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할 일은 전도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전도하는 것입니다.
왜 영혼구원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영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고깃덩어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막8:36-37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앞으로 10년 이내에 세상을 떠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20년 이내에 떠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30년 이내에 떠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잠27:1을 보면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히9:27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영혼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부자가 많은 재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두고는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즐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불러 가버렸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지난여름에 바다가로 놀러갔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은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불어오는 태풍과 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 남해안에도, 미국 뉴올리언스에도 . . . 그 영혼들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그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거절한 사람들이 있을 곳입니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어떤 분은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 가족들에게 이 고통을 안겨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고통을 다 대신 지불하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하셨습니다.(요19:30) 이 말씀의 뜻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죄의 빚을 완전히 갚았다다는 것입니다. 이 은총은 믿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처음에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 이 은총이 결국에는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게 된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결심합시다.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친구들에게 꼭 이 소식을 전하리라고.
어떤 이들은 교회가 숫자만 많으면 뭐합니까?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all man)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교회가 전도하는 일에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영국에 “콰드란트(Quardrant)”라고 하는 기독교 조사 단체가 있는데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조사, 발표하였습니다. 이 조사에 의하면 현재 영국 인구 중 7.5%인 약 4백만 명이 매 주일 교회에 나가는데 이것은 백년전 기독교 인구 20%에 비하면 약3배가 감소한 숫자라는 것입니다. 20년 전 12%에 비하면 약 반으로 감소한 숫자라는 것입니다. 10년 전 10%에 비하면 1/4이 감소한 것입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감소 추세를 보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지금부터 35년 후인 2040년에는 영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합니다.

영국에 기독교가 번성했을 때 영국은 세계에서 최고로 강성했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할 만큼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기독교의 부흥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들어와 우리나라 기독교는 기적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치와 퇴폐, 온갖 부조리가 만연해 있습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흥청망청 물 쓰듯이 쓰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확대 재생산 하지 않으면 쇠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유럽교회의 쇠퇴도 전도하지 않아서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는 날로 약해져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몰락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연구소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기독교인의 숫자는 줄고 불교의 숫자는 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회사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한 회사가 있다고 합시다. 질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팔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산원가, 인건비를 생각하니 그렇게 할 수 도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떤 전략이 가장 좋겠습니까? 세일즈를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광고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사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또 세일즈 하는 사람을 더 많이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세일즈맨들을 늘려야 교회가 삽니다. 교회가 쇠퇴하면 여러분들에게도 큰 위기가 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엄청난 손해가 옵니다. 신앙이 사라진 사회에서 자라나야 하고, 그런 불신의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살리는 일은 우리 자신들과 자녀들을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도 세일즈를 잘 하는 사람에게 대우를 잘 해 주듯이 하나님도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을 더 귀히 여기시고 복을 주십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에게 영육간의 복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전도하지 않으면 나에게 손해가 막심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인, 전도하지 않는 교회에 대해서는 엄중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그런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습게 여기시고 전도하는 성도 전도하는 교회는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발사는 이발을 하면서 일년에 백 명을 전도한다고 합니다. 이 분은 하나님께서 자기 직업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발할 때 소요되는 시간이 한 30분 걸립니다. 이 분은 이 시간을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조용, 조용, 차근, 차근하게 30분 간증과 아울러 복음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 다음 “선생님도 예수를 믿으십시오. 교회에 가십시다”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년에 100명이 전도를 받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전도할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전도할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 전도에 대한 마인드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전도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전도를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전도할 용기와 필요한 지혜를 주십니다. 지금 당장 전도의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전도는 심은 대로 거둡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은 것은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이 심는 교회는 많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요즘은 이미지 전도의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미지가 좋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칭송’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칭찬을 받았습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갔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랑과 친절, 봉사와 헌신이 모든 불신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날마다 새 신자가 늘어갔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끼리끼리 앉아서 고스톱이나 치고, 술이나 마시고 . .하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도 호감이 가야 합니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호감이 가야합니다. 집사 부부가 날마다 싸운다고 한다면, 이웃사람에게 호감이 가겠습니까? 이웃과의 관계도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고 사람답게 살 때에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예의 바른 운전, 예의 바른 주차, 인사성. .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것들입니다.

전도는 댓가를 치룬 만큼 열매를 거둡니다.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전도하기를 원하는 교회는 교회의 이미지도 좋게 소문이 납니다. 전도가 일어날려면 좋은 소문이 나야 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지난번 정돈제일교회에서 가진 전도 세미나에 갔는데 천안중앙감리교회는 일부러 그럴려고 한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노인들에게 목욕을 키켜주는 좋은 일을 하다보니 목욕탕교회로 수문이 나서 전도가 일너나기 시작하는데 500명이 3000명으로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이번 가을에 전도의 불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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