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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 (창 4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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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와 인간을 하나님자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욥기 11장 7-8절에 보면, 욥의 친구 '소발'이 욥에게 하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 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깨닫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다는 것은, 그 깨닫는 것만큼,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도는 물론 지혜로움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삶은 지혜롭고, 아름답고 값진 것이 됩니다.
  인간 삶에서의 불평과 원망, 비난과 비판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는 감사와 찬양의 생활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 세계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루어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확신하며 인생의 삶을 살아간 요셉이라는 사람을 봅니다. 요셉은 히브리인으로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의 보디발의 가정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모함으로 죄인이 되어 왕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신하의 꿈을 해몽해주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애굽 왕의 꿈을 해몽하게 되어 애굽의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섭리를 깨닫는 지혜를 가지고 팔레스틴 전역에 찾아온 7년 가뭄으로 인한 대 흉년의 역사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성서본문의 말씀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곡식을 얻으러 온 형들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움가운데 떨고있는 형들에게 위로하는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사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으로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형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도록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7년 흉년에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에 갔던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러한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의 고난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노예와 죄수로서의 고통과 괴로움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형에게 배신당함으로 격은 정신과 마음과 신앙적인 고통과 아픔은 대단히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운데 있는 것이었음을 깨달았기에, 요셉은 그 고난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요셉의 고난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욱 깊은 의미로는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역사를 위한 섭리였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을 살리심으로 그 후손들 가운데서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태어나시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격은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일임을 깨달았기에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아기를 해산하는 산모는 그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참고 견딥니다. 그 아픔과 고통이 한 아기의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섭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헛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그 분의 가치 있고 특별한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고난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깨달은 히브리 저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6)고 했고,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할 것이요"(약 5:12)라고 했고, 바울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고난 중에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오히려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그 고난이 선한 열매가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 형들은 증오의 대상이며 원수와 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형들은 같은 혈육의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내신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소서"(5절) 라면서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용서의 세계를 가지고 삽니다. 왜냐하면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의 행위 보다 더욱 큰 하나님의 은총의 행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원수들의 핍박보다 그 원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때문에 용서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무리를 향하여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돌을 던지는 무리를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류구원 은혜가 바로 핍박하는 그들에게 다가왔고 그 복음의 능력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나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을 수 있을 때에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그것 때문이 마음이 상하여 오히려 우리 인격이 병들고 있지는 안습니까? 도저히 용서하고픈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눈을 들어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위 위에서 우리를 만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십시다. 그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용서의 세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알고 계셨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침 뱉고 욕하며, 창으로 찌르는 무리들의 향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자가 되어 용서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되는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나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 자신을 바로의 아비로 삼으시고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다"(7-8절)고 했습니다. 요셉은 팔레스틴 7년 가뭄의 기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섭리를 깨달음으로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사는 가치를 찾은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자신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사용되기 위해 어머니 태로부터 택정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데서 바른 소명감의 확신과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위대한 삶을 산 것입니다. 
  인천 자유공원 안에 세워져 있는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 동상은 이 땅의 공산화를 막는데 큰 공을 세운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인천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동상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장군은 우리 조국이 낙동강 전선의 백척간두에서 존망의 위기에 처하여 있었을 때에,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또 미국의 장군으로서가 아니라, UN군사령관으로서 이 땅에 와서 이 땅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데에 큰 공을 세운 분입니다. 이 땅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냄에 결정적 공로를 세운 분입니다.

  지난 11일 이런 분의 동상을 철거하겠노라고 약 4500여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맥아더 장군을 '전쟁광', '민족통일을 가로막은 원수', '양민의 학살자'로 규탄하면서 그의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죽봉을 들고나섰습니다. 죽봉을 낫으로 한번 치면 죽창이 됩니다. 그들은 그런 무기를 들고 세계무역 10위권에 오른 이 나라의 대도시 한복판에서 휘둘러 댔던 것입니다. 그때에 수많은 전경들이 다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중에 이제 나이가 막 21세 된 전경 '문정현'군은 데모대가 휘두르는 죽봉에 맞아 실명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접근하는 데모대를 막다가 눈을 다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는 무엇이며, 마지막 목표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 뒤에는 누가 있을까? 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 나라의 기본 체제를 뒤집겠다는 세력입니다. 그 숫자가 수 천명에 이르는 것을 보면 분명히 어떤 사주 내지 조종도 있음직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류의 좌경화 세력이 지나치게 늘어나 이제는 "우리 세상이 왔다"는 식으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바라다보면서 우리는 염려와 함께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됨은 무엇 때문일까?' 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지나온 시대의 이념적 갈등의 역사와 어둡고 힘들었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원한과 아픔에 지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섬뜩한 증오와 원한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면, 요셉처럼 용서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서 용서와 화목을 통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아름다운 평화의 사람들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섭리 중에서 가치 있게 쓰이는 삶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어떤 삶의 조건에서도 그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사는 찬양과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삶임을 확인하는데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확신의 사람은,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그 속에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는 축복한 삶을 이룰 것입니다.  (김 성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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