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 (갈 3:13-14)

  • 잡초 잡초
  • 588
  • 0

첨부 1


드라큘라는 16세기경 터키의 침공으로부터 루마니아를 구한 전쟁 영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루마니아에서 탈출한 사제들에 의해 살인마라는 악명이 붙여 졌습니다. 그에 대한 저주는 수세기에 걸쳐 덧칠이 돼 마침내 1897년 영국의 통속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그를 흡혈귀로 만들었습니다. 스토커는 드라큘라 백작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소설로 대단한 명성과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에 편승해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제작자들도 그를 향한 저주에 참여했습니다. 결국 드라큘라 백작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엉뚱하게도 후세에 살인마 흡혈귀 등의 악명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저주받은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설교 제목을 보고 기분이 이상한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니 저주받은 그리스도라니 이렇게 불경스러운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실 수 있습니까? 무엇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자청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본래 아담이래 모든 사람은 저주아래 놓였습니다. 죄가 무서운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죄를 지고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에게는 저주가 임하였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환경적인 저주가 임하여 환경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많은 자연 재앙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온갖 질병이 임하였습니다. 각색 질병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육체와 정신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아와 고통, 악한 영들에게 시달림,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의 원인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남으로 임한 저주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기를 자청하셨습니다. 율법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였는데 친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스스로를 저주아래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죄와 전혀 상관이 없으시고 저주와 관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고자 자원하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무서운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떤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였습니까?

1.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13)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아우성입니다.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사람들의 죄를 지목하며 벌을 주라, 심판하라, 죽여라 하는 것은 모두 율법의 자주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찾아내 돌로 치라고 죽이라고 멸망시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본래 노예로 있는 사람을 몸값을 대신 지불해주고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살며 사단의 노예로 살며 조종당하여 나쁜 죄를 짓고 살며 늘 불안해하고 꼼짝못하고 눌려 있는 우리를 예수님이 친히 당신의 몸을 내어주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에수 믿고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죄의 유혹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죄의 권세가 우리를 위협해도 겁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죄가 다 용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고 기도응답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된 것을 모르고 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살 소년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소년을 죽인 범인은 '악의에 찬 헛소문'이었다. 사실 이 소문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었다. 이 가정에 적개심을 품은 한 노인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가 여전히 저주아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안에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더이상 저주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미래도 에수님이 책임지시고 예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안전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 사람이 쏟아 부은 저주, 마귀가 가져다 주는 저주 등 모든 저주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을 믿으시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우리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14)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창 22:17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창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대로 아브라함은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땅에 왔으나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의 양과 소때를 돌보고 집안의 일을 해주는 종들이 318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어서 늘 외롭게 살았는데 백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그 이삭을 통해 후손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또 그와 그의 후손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며 도와주심으로 원수의 성을 차지하는 것 즉 승리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세상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손의 덕을 입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시시하게 시작하여 시간이 갈수록 화려하고 존귀하게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보통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슴하시는 것을 듣고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아브라함을 ㅅ훌륭한 인격을 갖춘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존귀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며 본받고 싶은 신앙의 모델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우리들에게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과 동일한 복을 나누어 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잘 믿으면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귀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에수안에서 가정적인 복을 내려 주십니다. 위기의 가정을 웃음과 사랑이 가득한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풍성함을 누리게 될 뿐 아니라 자식들과 후손들에게도 고귀한 축복이 전승되게 하십니다.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만 복을 받아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좋은 복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중보기도를 사용하셔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구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많은 재물과 지헤와 능력을 주셔서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감동하셔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아름답고 환하게 만드는 일을 쉬임없이 행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임한 저주를 가져가 주시고 대신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아주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내것이라 주장하시고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셨습니다.(14)

사람들이 범죄한 후에 내려진 형벌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이 함게 하지 않으시고 떠나신 것입니다. 창 6:3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영이 함께 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흉악해지고 마귀 사단을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불의와 불법, 부도덕과 부패가 가득한 무서운 곳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안에서 저주가 풀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된 사람들에게 다시 성령을 약속하시고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야말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에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나서 처음에는 두려워하며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자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온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 사람이 교육수준도 형편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힘이 있게 담대하고 유창하게 말을 하며 예수를 잘 전하지..' '별 볼일 없던 저 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대단한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지..' 사람들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지헤로와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성숙해졌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귀신과 사단이 꼼작못하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성령님을 하나님은 예수믿는 우리에게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안에 있으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말고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간구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붙들리어 새롭고 놀라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승리하는 새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위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무서운 저주를 친히 받으셨습니다. 그런 값진 희생을 여러분이 헛수고로 만드신다면 얼마나 배은망덕한 것입니까? 불신으로 인해 여전히 우리가 죄와 저주아래에 갇혀 있고 축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불행한 삶을 살며 성령을 받지 못한채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 기분등에 의해 살아간다면 예수님이 아무 보람도 느끼지 못하며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대신 저주를 받는 결단을 하신 예수님의 값진 희생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담대하게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아브라함처럼 큰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강력하게 붙들려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며 자신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며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안에서 믿음으로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