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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송 받으실 여호와 (삼하 22:1-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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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의 좋은 덕담이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어제 하루동안 약 300여 가정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감사하게도 약 100여 가정으로 부터 귀한 답장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혹 답장을 주시지 못한 분들께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젊은 세대와 달리 휴대폰 조작이 쉽지 않음을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혹 축하 문자가 전해지지못한 가정이 있을 수 있기에 왜 내겐 문자가 안 왔을까 하고 "나만 미워해..."하고 시험 들지 않기를 부탁 드리며, 다시한번 명절을 맞이한 모든 성도들 가정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년에 몇차례 있는 전교인 초청 연합예배를 드릴때면 저는 언제나 마음에 고민이 생기곤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설교의 컨셉을 어린이에게 두어야 할지, 어른에게 두어야 할지, 아니면 젊은이에게 두어야 할지 고민스러움 때문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서론이면서 또한 이 장을 기록하게된 중요한 동기가 거기에 나와 있습니다. 자신을 이기게 하셨던 그날에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는 다윗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설교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는 노래의 말씀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시라는 문학적 장르를 빌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노래의 말씀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점이 언제냐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을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승리한 후엔 개선행사를 치루기 마련이고 그 행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개선장군이 됩니다만, 다윗의 경우엔 순서가 분명했습니다. 행여나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월드컵이나 프리미어리그 같은 세계적 수준의 경기에서 선수가 골을 넣으면 좋아서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골세레모니를 하기 마련인데, 그 감격의 순간에 먼저 그라운드에서 무릎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최근 박주영선수의 기도 세레모니가 많은 사람들에게 찬반 양론이 있지만, 정작 본인은 조금도 굴함이 없어 당당하게 자신의 생활신앙을 표현하고 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심정을 가진 다윗이었지만, 모든 대적에게서 이김을 얻었던 그 영광의 순간에 그가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 것을 참으로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생활이어야 합니다. 평상시 훈련되고 실천되던 모습일 때 중요한 삶의 고비에서도 변합없는 모습으로 고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4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의 내용입니다. 그의 고백은 바로 자신의 고백이기에 ‘나의...’라고 하는 분명한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나 혹은 간접적으로 안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에 대한 고백들이기에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000 이시라"는 형식의 그의 고백은 매우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부분에서 얻어진 것들입니다. 그들의 일상 어디에서나 만나며 체험될 수 있는 현장에서의 산 고백이기에 더욱 강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로다..."

5절에서 7절까지는 그러한 하나님을 고백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자기에게 능력의 하나님이 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론 사망의 물결이 자기를 에워쌀 때, 때론 불의의 창수가 자신을 두렵게 할 때, 때론 음부의 줄이 자신을 엄습할 때, 때론 사망의 올무가 자기에게 다가올 때에 하나님은 자신에게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아! 다윗에게도 이런 고통과 어려움들이 있었구나....그런 어려움 속에서 만난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었구나. 건강치 못할 때 만난 하나님, 가난할 때 만났던 하나님, 실패를 맛보았을 때 만났던 하나님이지만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방패가 되어 주셨고, 피난처가 되어 주셨음을 고백하는 다윗입니다. 결국 그 고백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셨는데, 어떤 상황에서 인도하셨는지,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셨는지, 그것이 8절에서 20절까지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담겨져 있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떨리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리며,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르며,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며, 구름을 타고 나르시며,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시며,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저희를 흩으시며, 번개로 파하시리로다.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다윗은 아주 재미있게 상징법으로, 은유법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셨는지, 마치 크고 강한 비구름이 가득 차서 지금 곧 비가 쏟아지면 호우주의보가 예고되는, 호우주의보가 예보된다고 하면 둑이 터져서 모든 사람이 사망의 두려움에 처해있는 그 상황에서 큰 동풍을 불어서 비구름을 순식간에 밀어내셔서 하나님께서 콧김으로 한 번에 바람을 밀어내시는구나.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21절에서 3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는 초자연적인 역사로 구원하시는 그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 멋대로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로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마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일 거예요.

다윗은 21절에서 30절까지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 스스로 죄악을 피하였나니, 하나님께서 그 목전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하나님께서 내가 응답하시고,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만한 삶을 다윗은 살고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의로움만으로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주의 의로우심, 주의 자비하심, 주의 완전하심이 나를 새롭게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6절입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보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라.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의로우심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31절과 32절에서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2절,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냐. 이 말은 유일하신 하나님, 오직 한 분 이신 하나님, 이 세상에 어떤 것들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할 수 없는 그래서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냐,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과 그것이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신실하신과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에 의지해서 주의 구원함을 얻었을 때 우리가 고백해야 할 한마디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십니까? 이 분명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다원론적으로, 다신교적으로, 요즘처럼 모든 것이 유물론적으로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는 시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외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합니다. 내가 성공한 것은 내가 승리한 것은 1절에 고백한 것처럼 모든 대적과 사울의 손에서 고백받았다고 하는 승리했다고 하는 그 승리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는데, 그 승리하게 하신, 내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 하는 38절에서 46절까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시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를 띄우셨도다. 주께서 나를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식이 뛰어나고, 내가 어떤 센스가 있고, 내가 세상에서 보는 안목이 있고, 그래서 성공한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 해서 받은 것이 아니었구나.

이스라엘이 그런 교만으로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라. 너희들과 달라. 이방민족들과 늘 그렇게 구별하면서 거룩함으로, 겸손함으로 가지 않고, 자만심으로, 자부함으로 갔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다른 민족들보다 그 수가 많아서 너희를 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교만을 일거에 꺾어버리셨어요.

다윗은 이 부분에서 아주 분명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시고, 나에게 능력으로 띠를 띄워 주신 것은 곧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송축하게 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패해도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공하셔도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것이 어렵겠어요? 실패할 때, 주님, 내가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어렵습니다. 그 전에는 헌금도 척척 했었는데, 이제는 주일헌금할 돈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배를 가야 하는데, 헌금할 것이 없어서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 가지고 계실 거예요. 우리도 개척했을 때 주일날 담임전도사가 헌금을 해야 하는데, 헌금할 돈이 없어서 우리 아이들 저금통장, 감사하게도 그 뒤에 드라이버로 열수 있게 되어 있어서 저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10원, 5원, 100원 들어가 있는 그 돈 아이들보고 ‘저금통장 좀 가지고 와봐라.’ ‘왜요?’ ‘아빠가 검사할 것이 있어.’ 그리고 아이들은 나가 놀면 드라이버로 그것을 열어서 5원, 50원, 100원짜리를 모아서 그걸로 슈퍼에 가서 1000원으로 바꿔서 그래서 헌금을 드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 그런 현장에 놓여져 있는 분도 계실 거예요. 또 건강해서 80, 90세까지는 건강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장담을 했던 분들이 건강을 잃어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나는 무엇이든지 하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경제적으로, 사업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어제 우리 조카가 와서 인사를 하고 갔는데, 지금 강남에서 펀드회사에 매니저로 있다고 하는데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에 제일 돈에 대해서 흐름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두 직업이 있대요. 목사는 아예 빼고, 의사와 교수들이 제일 경제적인 부분에서 무지하다는 거예요. 자기 부분에서는 전문가인데, 오히려 돈을 만들어 가는 일에 자기들이 볼 때는 모른다는 거예요.

찾아가서 설명해 주면 굉장히 기뻐하고, 돈을 맡긴다는 거예요. 어떤 교수님도 1억원을 맡겨서 6000만원을 만들어 드렸더니 너무 고마워하면서 양복도 해주고 그래서 너무 좋았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펀드에서 잘 만 하면 요즘에 참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주식이나 펀드 해 가지고 돈 벌었다는 사람을 딱 한 번 들어봤다고 얘기를 했어요. 우리 교인 중에 딱 한 사람이 제게 주식투자해서 이득을 얻었다고 감사헌금을 한 것을 딱 한 번 봤습니다. 그것을 내가 못 들어봤다고 그랬더니 저보고 그래요.

화투 노름판에서 돈 따가지고 가면서 땄다고 하는 사람 보셨나요? 주식투자는 그것과 똑같습니다. 노름판에서 돈 따가지고 가면 돈 내놓으라고, 개평 띠라고 말하기 때문에 다 잃었다고 그러는 것처럼 주식투자하는 사람 상당수가 다 잃었다고 말하고 다니지, 벌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그것은 자기 양심에 맡깁시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조건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지요. 그것은 자기에게 불행한 일이지요. 자기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지요. 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적으로 불행함이 올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고백하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해서 만사가 형통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건강하지 않을 때 견디기 어려운 그런 질병에 놓여 있을 때 건강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겨질 때 더 하나님을 높일 수 있습니까?

우리 생각에는 잘 될 때 하나님을 더 높이고, 더 하나님을 세울 것 같은데, 힘들어요. 경제적으로, 건강적으로, 삶으로 고단하고 힘들 때에는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일이 사실은 웬만한 믿음 가지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잘 될 때, 건강할 때, 만사 형통할 때 경제적으로 그 어려움이 없이 나갈 때 그 때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가 힘듭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늘 그 부분에서 우리는 다윗이 나를 하나님께서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셨다는 그 고백을 하면서 그러기에 나는 으뜸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높이고 싶습니다. 라는 고백은 결국은 쉬운 고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47절에서 51절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이 결론에서 첫 번째 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신앙고백할 때, 그 신앙고백에서 가장 강력한 신앙고백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실패의 밑바닥에서 뒹굴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는 고백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일어날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고백이 살아있냐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감사의 첫 번째 고백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높입니다. 다윗의 적들을 처벌하시고, 다윗을 높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 찬송합니다.

뿐만 아니라 50절에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나 혼자 골방에서, 나 혼자 주님과의 대면에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반석이시오, 주님은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내가 성공했다고 저 사람의 지식과 지혜과 학력과 경험이 오늘의 저 사람의 부를 이루고, 저사람의 영광이 있게 했다고 사람들이 그런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열방 중에서 하나님을 높인다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때는 입만 다물고 있어도 모든 영광이 내게로 몰려 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입을 열어서 열방 중에서 이 영광을 주님께 돌리겠다고 말하겠느냐 그거예요. 여러분,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장면에서 침묵하는 교만을 행치 않기를 바랍니다. 열방이 여러분들을 주목합니다. 여러분들은 그 열방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51절 여호와께서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그는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하나님, 나를 이기게 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승리하게 하시고, 열방 중에서 머리가 되게 하셨지만, 그러나 알고 보면 나 같은 죄인은 어찌 주님에게 주의 종으로, 주의 도구로, 주의 사자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까? 주의 인자하심 덕분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강론입니다. 이제 정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시작됩니다. 저는 다섯가지의 오늘 말씀 속에 아주 중요한 제목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말씀 속에는 찬양의 미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자신이 과거에 거둔 승리에 대한 자만과 자기도취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공의 순간에 배워야 할 삶의 태도가 무엇이냐 하면 찬양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이 고백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공하시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체험적 신앙이 담겨져 있습니다. 고난의 때라고 하는 것, 저도 고난의 때를 많이 건넜습니다. 여러분들도 고난의 때를 많이 건넜습니다. 아니 지금도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격적인 체험과 삶에서 녹아나는 신앙이 담겨져 있어야 되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하나님을 개념으로, 이념으로 아니라 순종으로 알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 고백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깊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깊은 구렁에서 건져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로와 자유와 평안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의 순간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성도의 시선입니다. 여러분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초점을 어디에다가 두고 있습니까?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냥은 알 수가 없어요. 눈으로 점점 당겨서 확대를 해 보면 제대로 잘 찍혀진 사진은 아무리 끝까지 줌으로 당겨도 선명합니다. 확대가 되요. 그런데 잘 못 찍은 사진은 확대를 해 보면 허옇게 사진의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당겨봐야 합니다. 좀 더 확대해 보아야 합니다. 멀리서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가까이 보니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의 영적 시선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 같은데, 점점 가까이 가 보니까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성도의 시선은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의 고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종말론적인 소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주 그리스도, 열방을 다스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방이 다윗에게 굴복하는 것은 그 당시의 열왕기상, 열왕기하, 사무엘상, 사무엘하 역사적 상황일 뿐만 아니라 예언적인 의미도 담겨져 있어요.

그것은 곧 온세상이 그리스도 예수,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하는 예언적인 말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귀중한 명절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다윗의 찬양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 삶 속에 이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깊은 말씀의 은혜들이 양식이 되기에 넉넉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실패의 자리, 곤고한 자리에서도 주님을 부르짖으며, 성공한 자리, 형통한 자리에서도 주님을 높일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높이며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삼고 그 분만을 바라며, 그 분만을 의지하는 평안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 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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