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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킨십으로 하는 사랑 (창 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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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여러분을, 나를,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표현하기까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늘 표현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사랑받는 주의 자녀라
주께서 이 자리에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살아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주님이 뜻 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의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여기에 모인 우리 사랑받는 주의 자녀라
주께서 뜻하신바 우릴 통해 펼치신다
주님의 일꾼 되어 기도하며 따라가리니
어려움 닥쳐와도 능력주심을 믿노라

(후렴)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는 오늘까지 5번째 시간으로 사랑의 표현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방법의 첫째는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복을 빌어 주라고 했고, 두 번째는 행동으로 하는 사랑의 표현법으로 함께하는 것으로, 단순히 같이 있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물로 하는 사랑으로 돈을 투자해서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있어야 할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해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봉사로 하는 사랑으로 상대방을 위해 일을 해 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피부와 피부의 접촉에 의한 스킨십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8월 30일에 방영된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 시간에는 신체 접촉을 많이 할수록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터치 건강법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마사지’를 치료의 중요한 요소로서 강조했는데 그것이 사실로 판명이 난 것입니다.

남미의 콜롬비아는 지난 1978년부터 조산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 ‘캥거루 프로그램’을 도입을 했습니다. 캥거루가 미숙아 상태에서 태어난 2.5㎝(3g)밖에 안돼는 새끼를 육아낭에 넣어 키우는 것처럼, 조산아를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천주머니에 넣어 엄마의 가슴에 품고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엄마의 체온으로 아기의 체온도 유지하고 엄마의 심장소리도 듣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 넣는 대신에 캥거루처럼 엄마품에 안겨 24시간을 함께 있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가슴에서 체온을 느끼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자라서 정상적인 아이보다 성장속도도 빠르고 면역력도 증가한다고 합니다. 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10초 동안 6번 이상 손으로 쓰다듬어 줌으로 아이들이 더 잘 자라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시청 5분)

인큐베이터라는 차가운 유리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이 신생아에게 외적인 성장뿐 아니라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들을 하게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도 엄마가 아이를 자주 안아주는 집 아이들이 혼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활발하다는 것입니다.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들의 경우도 머리 뒤꼭지부터 엉덩이까지 엄마가 지그시 차례로 눌러 주기만 해도 숙면을 취한다도 합니다. 이것은 어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스킨십을 하면 즐거움을 감지하는 뇌 부분이 활성화되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졸’의 수치를 떨어뜨린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영국에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겁니다.

그래서 피부(皮膚)는 제2의 뇌라고 말할 정도로 스킨십은 정서적 안정과 두뇌 발달에 큰 역할을 하므로 똑똑하고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스킨십은 상대방에게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자존감 속에 긍정적인 사고가 형성하게 하면서, 어려서부터 이웃에 대한 이해심을 갖게 하여 사랑 받은 만큼 다시 베풀게 되는 사회적 인간으로 자라도록 하게 합니다.

반대로 신체접촉이 부족할 때는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뇌가 상당히 손상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2차대전으로 고아가 많이 생긴 이탈리아에서는 이 복지시설에서 키운 아기들이 유독 사망률이 높은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복지시설에서는 아기들이 거의 죽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아기들을 돌본 한 여인이 죽은 자신의 아기 대신 끊임없이 아기들을 안아주고 만져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는데 있어서 우유나 영양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담긴 스킨십이라는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신체 접촉의 기회가 적어지면 자연히 뇌가 손상(損傷)되면서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토피성 피부병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이 아토피성 피부병도 음식과 체질에서 온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만 가지고는 고치기 어렵지만 마사지 하듯이 계속 피부를 문질러주게 되면 면역력이 다시 생기면서 눈에 띄게 호전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돈과 명예 때문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론 격려와 사랑에 대한 욕구가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출퇴근 때 안아주고 힘들어 할 때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만날 때마다 악수 하며 피부가 부딪칠 때, 스킨십을 할 때 기적(奇績)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터치를 잘 하려들지 않습니다. 부부사이에서조차 그건 어색하고 쑥스러워 합니다. 또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인해 요즘 아이들은 ‘접촉 결핍증’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스킨십이 필요한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안마나 마사지를 가장한 터치가 가장 자연스러운 만지기가 됩니다. 부모님의 어깨를 주물러준다든가 추석음식 준비하느라고 피곤해진 가정의 주부들의 허리를 주물러주는 것은 몸을 녹일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녹여줍니다.

전문가들은 그렇게 주물러줄 때 경혈 점을 자극해주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어깨가 아플 때는 양쪽 어깨 위 중앙 점 우묵한 곳을 누르는데 아픈 감이 오면 제대로 잡은 것이고, 등뼈를 세어서 네 번째 마디 양 옆 6㎝ 되는 곳을 눌러주고 7번째 마디 양옆 3㎝되는 곳을 꾸욱 눌러주면 잘 눌러주어도 어깨가 한결 시원해져서 피로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번 집에 가셔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잘 아는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형제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적인 상봉을 합니다. 본문3, 4절을 같이 봅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고 하였습니다.

20년 만에 안아보는 형제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미워하고 원망하던 형제간이었습니까? 쌍둥이 관계로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긴장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형제는 서로 스킨십을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사랑과 화해의 상봉을 스킨십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이 보다 더한 사랑의 스킨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누가복음15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중에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아버지가 바로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20절에 보면 “탕자가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어떻습니까? 에서가 야곱을 맞이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에서의 스킨십은 야곱의 마음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도록 붙잡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서는 동생 야곱에 대하여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주는 장자의 축복을 동생 야곱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도망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에서는 동생의 금의환향에도 반가움이나 그리움의 기쁨보다는 그 때의 분노가 가득하여 개인군대 400명을 거느리고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의 재물과 가족을 앞세워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적은 양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했습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약대 3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어린 나귀 10마리를 예물로 보냈습니다. 이 엄청난 양의 선물에도 그 형의 마음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그 어떤 에서의 누그러진 태도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형을 만날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2장을 보게 되면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하던 기도와는 완전히 변화된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욕심만을 위한 기도, 이기적인 기도를 하였지만 얍복강 가에서는 '내가 야곱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라는 회개의 기도, 영적인 기도, 신령한 기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줄로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로 넘기 어려운 장벽이 가로막았을 때나 내 힘으로는 내 의지로는 어찌 할 수가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2-1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

전날 밤이 맞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여 승리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은 이제 담대하였습니다. 형 에서가 아직도 분노가 풀리지를 않아서 군대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치러 마주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담대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믿음이 있을 때 강하고 담대해 지지만 믿음이 약해지면 비겁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 1장 5-6절에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膽大)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호수아와 같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이겨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야곱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비상한 머리를 쥐어짜고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끌어내고, 재물이나 세상 권력을 다 동원해도 안 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확신이 설 수 없습니다.

그때는 자포자기할 때가 아니라, 조물주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시고 우리를 위해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얍복강에서 만난 하나님만이 야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에서의 그 강퍅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셔서 야곱을 사랑하게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는 것도 내가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신디아 하잔 교수팀은 인간의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남녀간의 애정이 얼마나 지속되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2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집단에 속한 남녀 5천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결과, 남녀간에 가슴 뛰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18-30개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3년사랑은 개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에는 이 속담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가 만난지 2년을 전후해 대뇌에 항체가 생기는데, 처음에 생긴 도파민이란 호르몬은 호감, 즉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페디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은 열정, 즉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생기고, 사랑에 빠졌을 때는 페닐에틸아민이 생겨 껴안고 싶은 충동이 느끼고 옥시토신은 짝짓기를 그리고 엔돌틴으로 행복감에 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2년6개월밖에는 안된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사랑은 3개월, 싸우며 3년, 참으며 30년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남녀가 2년이 지나면 사랑의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오히려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변하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도록,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사랑의 조건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환경에 의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면 남을 도와준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은 일을, 남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한다고 다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이 돼서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이스라엘 초대임금인 사울왕을 보게 되면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악령이 그 안에 들어가니 피붙이인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영의 그를 지배하고 있느니 아무리 원수된 자라도 사랑을 합니다.
제가 어제 주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목욕탕을 갔는데 차타고 정지선에 서있는데 차가와서 꽝! 받아주는 겁니다. '누구신데 날 정신 차리게 하셨나?'
옆에 있던 아우가 "아니 누구냐구" 그러면서 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으라.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 목 다친 것도 아니고 차 다친 것도 아니니 그냥 있으라”고 했어요.

얼핏보니까 외제차가 저를 박았습니다. "그냥 가시라"고 하니 얼마나 쏜살같이 가는지 역시 외제차는 빠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생각을 하니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엔돌핀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서 나오는 기쁨보다는 주어서 나오는 기쁨이 더 크잖아요. 즐거울 때 나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우면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기도했지만 에서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줬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잘못을 다 포용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그런 마음입니다. 우리는 스킨십으로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옆 사람과 손을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집에 가셔서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하십시다. 아니 포옹을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랍비가 어느 유대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대가 길에서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유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선생님, 저에게는 아이들이 많이 딸려 있고 게다가 가난합니다. 저는 그 돈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알겠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도둑이다.”
랍비는 똑같은 질문을 두 번째 사람에게 던졌습니다. 두 번째 유대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즉시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랍비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바보다.”
랍비는 세 번째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제가 얼마나 약한 인간인가도 잘 알고 있어 갖고도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 제가 그 지갑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랍비는 그를 칭찬했습니다.
“그대의 답은 옳은 대답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3종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보, 둘째는 도둑, 그리고 셋째는 옳은 사람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도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정의를 생각한 것입니다. 바보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신앙을 생각한 것입니다. 옳은 사람입니다.

누가 사람을 정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으로 살아 신앙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한다'는 고백을 하셔야 합니다. 내가 잘나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잘나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당연히 옳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기도해야 옳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추석 가정예배로 모이실 때 연세드신 부모님들은 6․25전쟁의 참상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공산당에 속지 말라고, 요즘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우리가 북한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동포이기에 당연하지만 공산당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것은 당연히 자유 민주주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요, 승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피 흘린 우방의 헌신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른다면 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나라를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감사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사랑에는 스킨십으로의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가족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포옹으로 맞으십시오. 사랑을 나누세요!! 사랑은 표현하기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엔돌핀이 가득하고 사랑하며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  창 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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