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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대교회처럼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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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복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 인생들을 찾아오신 것은 천지가 개벽되는 것보다 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전히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들을 마귀의 종 되었던 상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가 받으신 대속의 고난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합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삼일 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공생애가 마쳐갈 즈음에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는데,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열흘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성도들 위에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심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증언하고 있는데, 이는 이 땅에 교회가 태동되던 순간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이익 단체가 아닙니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모임도 아니고, 시민운동을 위한 단체도 아니고, 단순히 친교를 위한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이 땅에 있더라도 그 소속이 하늘에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의 신체에 비유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최초의 교회였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살펴봄으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성도님들과 함께 규명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주님을 따르면서 친히 가르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책을 쓰신 적이 없고, 설교나 교훈을 녹음해 두신 적도 없으십니다. 다만,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복음 전파의 사명이 사도들에게 위임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들은 교회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감동시키셔서 신약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곧 신약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정신에 입각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요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천주교는 성경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입니다. 천주교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면서 교황의 가르침을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데 이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천주교가 복음에서 멀리 이탈해 나간 것을 보아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칼빈주의만이 진리이고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장로교가 최고라고 주장하지만 그 말도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신학사상이나 교파가 지구상의 모든 교회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 보다는 그 신학이나 교파나 교단, 또는 개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얼마나 충실하며, 얼마나 사도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보면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믿은 자들에게 주신 경고입니다.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도 한 때 믿음을 가졌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만 귀신의 미혹을 받아 바른 믿음을 저버린 자들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주로 자기들만 구원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빙자해서 거짓 예언을 하거나, 신통력을 발휘해서 병을 고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미혹을 배격하고 오직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초대교회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한 형제입니다. 혈육의 형제관계도 귀하지만 영적인 형제관계는 더욱 귀합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8장 6절에는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의 형제는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친밀한 사귐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들의 교제에는 이기적인 요소가 섞여 있지 않은 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 형제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어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한산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이해관계에 의한 사귐이 아니라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서 성도들 간의 교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시는데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이 사실을 고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며, 손으로 제자들을 가리키시면서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가족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그만큼 소중함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뗀다” 함은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면서 친교하였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눌 정도로 친밀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서 성도들 간에 따뜻한 교제를 나누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초대교회는 기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사회에서 예수 믿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핍박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서 핍박과 환난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또 그들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열흘 동안이나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더니 오순절 날 일제히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시험을 이기고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이지,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보다 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그들보다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보다 더 악하고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의 믿음을 빼앗으려고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지켜나가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험을 이기기 위해,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문제의 해결을 받기 위해,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많을수록, 할 일이 많을수록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시간을 잘 활용하는 첩경이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성숙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이제 기도의 영역을 넓혀서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을 만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로 돕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더욱 기도의 열정이 생겨서 힘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엡 6:)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기도생활에 힘씀으로 기도의 불길이 꺼지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들은 너무 교회에 모인다고 비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익한 비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모임에는 열심을 냅니다. 혹 보면 기독교인 가운데도 교회의 예배 모임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였습니다.

성도들은 그 생활이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정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른들은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 가정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가정을 등한히 하고 밖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원만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모이기를 등한히 하는 사람은 신앙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성장은 교회에 나오는 횟수에 정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힘닿는 대로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됩니다. 요즘은 보헤미안 신자들이 많습니다. 한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에 들면 다른 교회로 옮깁니다. 그런 신자들은 어느 교회를 가든지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손님 노릇하는 신자는 은혜받기 어렵습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를 위해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할 때 비로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자주 만나면 신앙에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목적으로 불신 이웃을 만나야지, 그 외의 목적으로 그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익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도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학생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신앙생활을 도외시하면서까지 공부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들 무엇이 행복하겠습니까? 성도님들의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며 사는 방법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그들이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지체가 몸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요? 손이 몸을 싫어해서 떨어져 나가면 그 시로 그 손은 죽고 맙니다. 지체는 몸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몸 된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풍성한 영적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다른 모임은 더러 빠져도 되지만 교회의 모임에는 빠지지 말고 동참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에 힘쓸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본받아서 언제나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초대교회는 구제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있는 것을 나누어 썼습니다. 이는 가족과 같은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은 집안의 물건을 통용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어 씁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물건을 나누어 쓰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초대교회가 구제에 힘썼음을 보여줍니다. 가진 것이 없는 신자들은 내어놓을 것이 없으니 다른 신자들이 가져온 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을 본받아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들을 돕고 나누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나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손해 보는 것이 아니고 더 풍성하게 되돌려 받게 되는 것이 신앙의 법칙입니다. 어린아이 하나가 자기 몫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렸을 때,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것을 거두니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것을 믿음의 형제들과 나누는 삶을 힘써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여섯 번째로, 초대교회는 전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나가서 전도하니 단번에 삼천 명 또는 오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신자들은 전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나 전도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시작으로 해서 예루살렘에 대대적인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예수 믿다가 집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배척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 4절에 보니,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서 단기간 내에 온 유대 땅과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헬라인 신자들로 이루어진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 11:20).

주님께서 이곳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게 하심인 줄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직분자와 일반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당장에 결실이 없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씨 뿌리고 물주고 가꾸는 것이요, 싹이 나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교회는 선교사들을 후원함으로써 주님을 알지 못하는 타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타국에 가서 전하지 못할지라도 선교 헌금을 드림으로  선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보니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전도의 상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전도의 사명을 자각하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서 불신가족과 불신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본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셨던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서서 성도들의 친밀한 교제가 있고, 모이기에 힘쓰며, 기도와 구제와 전도에 열심 냄으로 초대교회처럼 주님의 인정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김 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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