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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바른길(히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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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연휴를 다 마치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니 기쁜 마음입니다.
평안하시죠? 주님의 지키시고 돌보시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교독하신 말씀 중에 11절 이하의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인생의 앞길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넓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좁은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넓은 길을 걸으면 그 마지막이 사망이고 좁은 길의 마지막은 생명이므로 생명의 길인 좁은 길을 택하라는 주님의 권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이 올바른 생명의 길을 걷지 않는가요?
그것은 이 생명이 되는 길 앞에서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갑자기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겨납니다.
·사업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기회가 그냥 몽땅 무산이 됩니다.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진급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갑니다.
·인간 의사가 힘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집니다.
이럴 때면 교회를 다닌다면서도 두려움과 공포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패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저 완전하게 낙심이 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외에도 견디기 힘든 어려움들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가정을 영위해 나아가면 직장을 잃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갑작스런 육신의 불구도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일평생을 살아왔는데 태풍 카타리나인지 뭔지 몰라도 그 비바람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길바닥 위에서 소리도 없는 눈물을 흘려 땅바닥만 내리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1년 농사가 다 순간의 홍수 속에 그만 쓰레기 더미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너무 실망되는 나머지 농약을 먹고 자살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요! 너무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고통을 모른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마비현상이 일어나는거죠.
그래서 너무 기가 막히는 일도 당하게 되면 울지도 못한 채 사람이 멍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들은요! 애들이 울면 그저 무조건 울지마! 하고 윽박지르시는데 이거 아니에요!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뚝! 압!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매로 울음을 그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려서부터 울지 못하게 교육받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눈물이 없으면 신경쇠약에 걸리구요 자기 연민에 빠져서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는 거에요. 어느게 더 낫겠어요? 뚝! 압! 하며 몽둥이가 더 낫겠어요 울 수 있는 게 더 낫겠습니까?

왜?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닥치는 것일까요?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가 봐! 나를 버리셨나 봐.
·나에 대한 관심이 없으신가봐! 이거 죄에 대한 징계인가 봐.
·그리고는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왜?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원망하면서 세상의 유혹에도 빠지게 되어 집니다.
왜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까?
6절을 보세요 중간부터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갑자기 어려움이 생기면 다른 사람! 대인관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판단해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고독의 수렁에서 헤매이고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6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경겁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해치려고 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때때로 시련이 오고 불생이 오는 것이 결코 나쁜 일만이 아닙니다. 저 태양을 보세요!
만일 저 태양이 계속, 언제나 햇빛만을 발하고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그건 완전히 황량한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슬픔이나 고통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고통은 장차 받을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의 밑 걸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세크라멘도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낮 집회를 마친 후에 어떤 분이 잠깐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보니까 참 기가막혀요. 한국에서는 이혼을 당했고! 미국에는 무작정 왔는데 지금은 아는 사람의 집에서 단칸방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은 젊으니까 열심히 일해서 이곳에서의 삶이 안정되면 애들도 다시 데려오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저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용기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만일 이 공포가 내 가슴속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의 삶에 파괴적인 힘을 가해오기 때문입니다.
공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러나 그 공포에 붙잡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두려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 하면서 고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민하는 것보다 믿음 위에 튼튼히 서서 이 두려움을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헬다의 대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도 한 때는 말을 몹시 더듬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위축이 되어서 말을 안 하게 되고 나중에는 자꾸만 자꾸만 대인기피증이 생겼지마는 나중에는 사람들 앞에 담대히 서면서부터 말 더듬는 버릇을 없앨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과학자 스태인매츠는 자신이 극심한 불구였지마는 그러나 언제나 자신은 남을 도울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죤 밀톤을 보세요.
그는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노래하는 세계적인 대서사시인 실락원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강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암을 보세요! 얼마나 연구가 활발합니까? 왜 암에 대한 연구를 세계적으로 합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암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신앙도 없는거에요! 두려움을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실패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약점도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을 자극해서 열심을 내도록 나를 고무시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요?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거짓이 없으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 우주세계를 초월해 계신 분!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70×7이라도 용서하시면서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그 하나님! 바로 우리의 아버지시란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면서 생명까지도 맡기셨던 것이고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미쳤든지 온전하든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르리라 열릴 것이로다. 이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전능의 신! 초월의 신! 그저 완전하신 하나님! 으로만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런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다같이 외쳐볼까요?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12절과 13절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아멘.
저는 가끔 이것으로 제 생애가 끝나는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 죽으면 조금은 아깝다
내가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는데
문자 그대로 어느 때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으로 멀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신해 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서 일어서게 됩니다.
절망의 냉탕에서 소망의 온탕으로 다시 옮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다 빠르게 제단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만이 나의 일이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저에게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보세요!
비가 쏟아지고 눈이 내리면서 비행기가 덜덜덜 떨리고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구름층을 뚫고 올라가면 그곳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눈앞에 짙은 안개나 구름이 내려 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내가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삶이 발견되는 줄 믿습니다. (박 세 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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