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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스겔 골짜기의 부흥(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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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꿈이 클수록 사사로운 일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진정 희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희망적입니까? 우리의 현실은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염려되고 불안한 소식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번번이 희망이 꺾기고 맙니다. 그리고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라는 절망적인 말들을 쉽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꿈도 사라지고 희망도 사라지고 어쩔 수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스겔은 BC586년에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망하여져 소망이 없고 민족의 앞날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뼈들로 가득했습니다. 각각 마른 뼈들이, 앙상한 뼈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납량특집도 이러한 등골이 오싹한 납량특집은 없을 것입니다.

이 뼈는 무엇을 말합니까?
11절 말씀을 보시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겔 37:11)

이 뼈는 이스라엘 온 족속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절망뿐이요, 죽음뿐이요. 허무함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여러분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이 뼈가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어떻게 죽은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과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볼 때 절대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물음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의 죽음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성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 나사로의 죽검 앞에서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여러분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이미 냄새가 납니다.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이미 끝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살 것을 믿느냐?”
여러분 살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는 상황 가운데 다시 회복될 것을 믿느냐?
나사로와 같이 죽어서 냄새나는 상황처럼 소망이 전혀 없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 다시 새로운 살아날 것을 믿느냐?

여러분 에스겔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니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즉 ‘저에게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만은 가능하십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게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문제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에스겔은 한 뼈도 세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에스겔도 똑같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면 아무리 마른 뼈라 할지라도 능히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말씀하였을 때 그는 귀도 없고 들을 수 없는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여러분 마른 뼈들에게 말한다고 되겠습니까? 이러한 무모한 짓이 어디 있나? 그러나 에스겔은 뼈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뼈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여러분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생명력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하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의 능력이 되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소망이 사라졌고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회복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말씀을 통해 회복시킵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할 때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말씀이 임할 때 흩어진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뼈들이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힘줄이 생깁니다.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실제적으로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므로 옛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절실히 접했고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때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이 있었고 그리고 절망적인 포로생활에서 기적적인 귀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용기가 생깁니다. 결단력이 생깁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인생이 살아납니다. 가정이 살아납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면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위로와 희락과 소망과 회복을 주십니다.

시편 119편은 말씀장인데 50절의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 119:50)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107편 20절에서도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알기 전에는 공허와 어둠뿐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살아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같은 고통의 상태에서 생명의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의 회복뿐임을 알고 또한 말씀에 모든 문제 해결이 있는 줄 알고 말씀을 사모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뿐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온전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뼈들이 소리가 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뼈와 저 뼈가 들어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육신만 가지고 있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뼈에 가죽만 붙어있다고 산사람이 아닙니다. 생기가 없는 육체는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생기에 대하여 대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생기를 불어 넣을 때 완전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때 비로써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호흡이 필요합니다.
이 호흡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라는 말인데 이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어 성경에서는 성령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어 성경에는 생명의 영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의 회복도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아무런 능력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고
에스겔의 골짜기의 뼈들처럼 아무런 역사도 이루지 못하는 나약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번 주에 기도회를 마치고 황금마차를 타고 광주를 가는데 차가 성남 톨게이트에서 나와서 광주로 가는 국도를 탔는데 그만 언덕에서 푸르르, 푸르르 하더니 그만 시동이 꺼졌습니다. 밤 11시 20분정도가 되었는데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앞 본네트를 열고 엔진을 물을 뿌리며 좀 식혔습니다. 그런데도 시동이 안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보험회사에다 연락해서 레카와서 결국 그것 타고 광주를 갔습니다. 나중에 카센터에 갔더니 발전기가 고장 나서 불꽃을 튀겨주지 못해서 차가 결국 서게 되었다고 해서 결국 8만원주고 수리를 했더니 지금은 차가 아주 힘 있게 잘 나갑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불꽃이 튀기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푸르르, 푸르르 하다가 시동이 꺼진 자동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꽃이 파닥, 파닥 잘 튀는 신앙은 비록 차는 오래되었지만 힘 있게 달릴 수 있고 어떤 언덕도 힘 있게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성령의 생기가 불어 올 때에 그 뼈들이 살아났고 그리고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은 능력 있게 합니다. 성령은 마른 뼈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강한 군사로 만듭니다. 살아 있는 기독교인이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말할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얼마나 성공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또 나를 통해서 얼마나 크게 역사 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이번 특별기도회가 바로 성령의 불꽃이 우리의 심령에 불같이 타올라서 우리 모든 아름다운 성도들이 극히 큰 군대를 이루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에스겔의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아무런 쓸모없는 신앙이 아니라 말씀으로 일어나고 성령으로 채워져서 큰 군대로 설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 연합할 때 우리는 큰 군대를 이룹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다시 봅니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본문 10절을 봅니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더라” 마른 뼈들이 살아서 사람이 되었더라도 서로 연합하지 못하면 큰 군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른 뼈들이라도 살려 큰 군대로 만들어서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를 분열시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귀에게 속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연합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연합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가 분열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불평하게 만들어 파벌을 조성하도록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화의 씨를 뿌리는 자보다 연합하는 자가 더 많은 교회가 되어지도록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마른 뼈가 서로 연결될 때 소리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서로 연합되려면 소리가 나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기도 소리가 나야 합니다. 함께 찬송하는 찬송 소리가 나야 합니다. 불평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원망하는 소리도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서로 연결이 잘 되어야 합니다. 연결됨 없이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통하여 한 마음으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숫자가 많을지라도 흩어지고 단결이 안되면 약한 군대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교회가 적을지라도 성도들이 연합하면 강한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분열시켜 약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방해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붙잡아주지 못하는 것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 잡아주고 연합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마른 뼈처럼 능력 없이 소망이 없이 신앙생활하고 계십니까? 이제 무슨 일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우리의 어려운 환경을 정복해 나가는 당당한 하나님의 군대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 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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