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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한계상황을 극복하자 (왕상 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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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할렐루야!!
본격적으로 추수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온 들판은 황금빛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계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신앙에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알곡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지옥불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정말로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사람의 의지나 또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나약한 사람은 좌절하고 실망하고 그러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더 나아가서는 자살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지가 굳고 마음이 강한 사람은 그와 같은 상황을 헤쳐나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을 하여도 안될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는 신앙의 힘이 없으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이나, 의지나, 또는 경륜과, 경험과, 노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는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힘으로만이 어려운 한계상황을 헤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의 대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갈멜산 상에서 신앙의 대 승리를 얻고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갔으나 왕비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그에게 열심히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일찍이 낙심한 적이 없었거늘 이제는 일개 여자의 협박에 망명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단신으로 아합정권에 대항하며 이교선지자 850명의 적과 싸우기 위해 결사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대 역사를 승리로 끝내고 잠시 숨돌릴 시간도 없이 또다시 강적의 공격을 받게 되니 낙심치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쫓기는 몸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몇 주전에 오늘의 본문 말씀으로 「신앙의 불경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바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가 되어서 모든 것이 다 불경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호경기가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들의 신앙마저도 불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기에 이와 같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설교에 연속성을 띤 설교가 되겠습니다.

다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믿음의 한계상황을 극복하자」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의 믿음과 신앙이 한계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질 때에 새로운 힘을 얻고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말씀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구약의 역사상 엘리야 때처럼 특별한 때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참 종교인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거짓종교인 바알과의 싸움이 치열하였습니다. 세속주의와 복음주의의 대립과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대립이 극도에 달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롬5:20)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런 시대에 세움을 받은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로서(약5:17)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었고 용기를 잃어버릴 때도 있었으며 절망과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합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탄압과 자칭 선지자로 이세벨을 앞세운 거짓 종교가들의 악한 흉계로 인하여 엘리야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되는 긴급사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엘리야의 곁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엘리야와 동행을 하였고 힘을 주어서 승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왕후 이세벨은 엘리야의 생명을 빼앗겠다고 선언하였고 이에 낙심한 엘리야는 브엘세바로 나가 광야의 외로운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하룻길을 걷다가 피곤하여 기진 맥진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라고 탄식합니다. 엘리야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갈멜산의 승리가 바로 어제였는데 오늘은 패배의 깊은 수렁에 빠져 하나님께 쥐어짜듯 울부짖습니다. “내 생명을 거두소서 내가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찬란하게 이루어 놓은 많은 승리와 성공으로 온 천하가 그의 이름에 크게 떨며 두려워하는 이 마당에 졸지에 찾아온 곤경에 그는 너무나 준비가 없었으며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불붙는 제단을 보면서 “여호와 그는 참 하나님이시다” 고백하던 백성들도 하루밤 사이에 변질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무리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던 엘리야가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망명의 길을 가는 엘리야의 심정은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일사각오로 갈멜산에 오르던 걸음은 나는 듯하더니 망명의 길을 가는 걸음은 괴롭기만 합니다. 노경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라고 하면서 실의에 빠져 나무아래 쓰러져 피곤한 잠이 들었습니다.
주름살 잡힌 얼굴에는 이스라엘의 근심을 기록하였고,
백발로 희어진 머리와 수염은 주님께 다한 충성을 표시하고,
해어진 가죽옷은 곤고의 인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만 외쳤지만 백성은 엘리야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인심은 모두 아합과 이세벨에게로 쏠렸습니다. 예언자의 말로는 비참한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엘리야의 모습에서 목회자의 말로를 예견해 봅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말씀만을 외치다가 모아 논 재산도 없이 오라는 곳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마지막 노후를 비참하게 보내는 원로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엘리야와 같이 낙심할 때는 없습니까? 때로는 마음이 불안하여 자포자기하고 죽었으면 하고 신앙을 버리는 때는 없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엘리야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힘입니다. 전후좌우가 모두 막히고 어찌할 수가 없는 극한 상황에서 그 한계상황을 이기고 일어나는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넘어진 자리에서 용감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 일어나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입니다. 엘리야는 낙심한 중에 자기의 힘도 자기의 결단도 아닌 바로 위에서부터 들려오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다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갈멜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실패하나 하나님의 일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광야에 쓰러져 잠든 잠 속에서도 남은 사명을 꿈꾸는 엘리야를 한 번 깨우고 두 번 일으켰습니다. 일찍이 까마귀의 떡으로 연명을 하던 엘리야는 이제 천사가 주는 떡을 먹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달려온 길이 험하고 먼 길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멀고도 험한 길을 가야 합니다. 엘리야는 새힘을 얻어서 40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성산 호렙산에 올라갔습니다. 그 호렙산에서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도 엘리야와 같이 지쳤습니까? 낙심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떡을 먹고 새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산 호렙산 되는 교회에 나와 새로운 사명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엘리야 선지자가 어떻게 하여 한계상황을 극복하였는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상당히 철학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신앙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① 엘리야는 자기 자신이 힘없고 무력한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자기를 통하여 일어난 기적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엘리야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 자신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자연스러운 인간입니다.
② 자기의 열심히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미약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③ 깨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④ 그리고 아직도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날마다 호렙산 정상을 향하여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가 올라가야 할 호렙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교회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날마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몸 된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대하7:16)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2. 엘리야는 한계상황에서 일어섰습니다.

(1) 도망치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세벨이 두려워서 도망하던 길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치 베드로와도 같습니다. 로마에 박해가 극심하여 질 때에 모든 믿는 형제들이 베드로에게 로마를 떠나도록 권유를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정말로 로마를 떠나야 합니까?” 라고 하자 “그렇습니다. 베드로 님께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잡혀서 죽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아무도 몰래 성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알기에는 주님은 일찍이 감람산에서 천사들에 옹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을 하셨는데 그 주님을 갑자기 만나게 되다니 한편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물었습니다.「도미네 쿠오 바디스」(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가노라”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 십자가 지신 것으로 족하십니다. 로마에서는 내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하고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를 하였습니다.①
그리고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고향 엠마오로 가다가 주님을 만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엘리야도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새힘을 얻고 일어났습니다.

(2) 엘리야는 몸도 마음도 지쳐서 쓰러진 실망상태에서 일어섰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는 잠이 들었습니다. 18장에서는 그렇게도 당당하고 담대하던 엘리야가 19장에서는 나약해진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3) 엘리야는 절망의 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준 떡과 물을 먹고 달리고 달려서 호렙산 굴속에 들어가 또 절망 상태에 빠졌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굴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굴속에서 깊은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절망가운데 빠져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태에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일어나려면 바로 세미 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 모두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3. 엘리야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소리이지만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소리가 어떠한 소리이기에 그렇게 사람과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숲 속에 숨어 있던 아담도 이 음성을 들었고
브엘세바 광야에서 돌 베개 베고 자던 야곱도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고난 중에 헤매이던 욥도 이 음성을 들었고
다메섹 도상의 사울도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에스겔과 그 외의 많은 선지자들이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2) 살아 계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소리입니다.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자는 그 영이 살게 됩니다. 이것이 중생이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 주님의 소리를 듣는 자는 육이 살아서 부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새힘을 얻어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3) 살아 계신 성령의 소리입니다.

행 2:2 절 말씀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날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도들과 믿는 이들은 모두 성령이 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성령의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상에 취하고, 죄에 취하고, 나태와 게으름에 취하여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4. 그러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 겸손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만이 엘리야의 실패의 원인입니다. 결국 그는 죽기를 구하는 자리까지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신앙의 투사인양 남을 무시하고 자기만을 자랑하는 자는 곧 낙심하게 됩니다. 신앙은 시작도 끝도 오직 겸손하게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2) 회개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갔습니다. 이런 자연 현상이 나타난 후에야 초자연적인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와 같은 자연계의 현상은 우리의 죄악된 심령이 부서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장벽이 무너진 후에야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심령의 귀가 열리고, 신령한 마음이 열린 후에야 이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3) 은혜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떡과 물을 먹이시고 어루만져 주신 다음 이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7절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시되…”
다니엘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에 얼굴이 변하고 힘이 없어지고, 두려워서 땅에 엎드렸을 때에 (단10: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사도 요한도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을 때에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말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루만진다는 것은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쓰러졌던 엘리야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다시 재기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시간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 천사의 손길이 여러분을 어루만지며 일어나라고 새 힘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하며 또 무슨 사명이 있습니까?

(1) 마음이 평안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세미 하다는 말은 안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향하여 “잠잠 하라 고요하라” 고 하셨는데 이 때 고요하다는 말씀은 세미 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갈릴리 바다의 풍랑과 같이 근심과 걱정이 파도칠 때 “고요하라” 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평안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용기가 있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다시 힘을 얻은 엘리야는 용기 있는 믿음으로 끝까지 달려가다가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승천을 하였습니다.

(3) 사명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새힘을 얻고 내려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고 엘리사를 불러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믿음의 후계자를 많이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뒤를 이을 믿음과 신앙의 후계자를 세웠습니까? 믿음의 대를 이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살던 시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시대요, 우상종교가 판을 치는 시대요, 진리의 종은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엘리야의 시대만큼이나 어려운 시대입니다. 지치고 쓰러지기 쉬운 시대입니다. 엘리야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또 잠잠 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순절에 역사 하신 급하고 강한 성령의 바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엘리야와 같은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이와 같은 역사가 바로 우리 주은혜교회에서 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 예배시간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분의 신앙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임 영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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