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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므리바 생수 (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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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의 이스라엘 백성이 불모지 광야를 거듭 거듭 행진하여 마침내르비딤(!ydiypir], Rephidim, 평원)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 때문에 모세를 원망했으며(출 17:3), 모세가 바위를 쳐 물이 솟아나게 했다(출 17:5-6). 이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도 부른다(출 17:7).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은 심한 갈증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모세를 단지 원망만 하던 과거의 정도(14:12,13, 15:24, 16:2-3)를 넘어 서서 이제는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4절에서는 "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로 보아서 정도가 지나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사실 배은망덕한 행위로써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만 돌려 그로 하여금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이 같은 행동은 5절의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위로 가라."는 말씀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독거리고 진정시켜야 할 장로들이 오히려 모세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을 자주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정당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지라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난관을 극복하게 최선을 다해본 후 그래도 안될 경우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도리인데,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그 책임과 권한을 지도자에게 전가하고 원망하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던 모습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인격을 드러낸 것 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돌팔매질하여 지도자를 죽일 태세"인 것으로 보아 여간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만 이스라엘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도 무엇이 잘못되면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잘못된 행위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는 잘못된 행위는 단순히 물 때문이 아니라 그들 속에 내재된 불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불신앙  때문에 원망이 많고 불평이 많은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부흥하고 은혜로울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지도자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신앙의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단순히 모세를 원망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하였듯이 오늘에도 하나님의 종을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피차에  은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다른 민족에 앞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나 저들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신앙의 모범이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불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 신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떠한 문제든 하나님께 아뢰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저들이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을 출발해서 홍해에 이르렀을 때 저들은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곧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저들을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이 광야의 생활을 시작한지 몇 일 되지 않아서 먹을 것이 떨어지고 없을 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셔서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한 마라에서의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와 양식의 문제 그리고 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적이 있지만 저들은 므리바에서 물의 문제가 생기자 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데서 나온 불 신앙의 결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전능자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믿는 백성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여러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도자를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무능한 국민정부, 무능한 목사라고 지도자를 원망할 때가 아니라 나 개인 각자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모세나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크고 작은 환란을 당하였을 때 그 문제 해결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는데, 많은 참새보다 귀한 이 나라 백성이 엄청난 환난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없겠습니까?(마 10:29-31). 그러므로 우리 모두 겸손히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Ⅱ.  르비딤의 물 없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첫째 :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내재된 불순종의 모습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맛사' 또는 '므리바'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맛사'란 히브리어의 '시험하다'라는 말에 어근을 두는 것으로서 '시험' 또는 '유혹'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므리바'는 '다투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다툼' 또는 '논쟁'을 뜻합니다. 거기다가 모세는  '르비딤'이란 지역 명을 '므리바'로 개명(改名)하여 부름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여 멸망에 빠질 뻔한 자신들의 불 신앙과 패 역함을 영원히 기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백성들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hS;m'(맛사, 시험, 시련) 맛사(명여)는 나사(hs;n: , 5254: 시험하다, 시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시험 test, 시련, 고난 trial, 입증, 검증 proving'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온다. 맛사는 출애굽 때에 바로와 애굽인들에 대한 시험을 묘사한다(신 4:34, 신 7:19, 신 29:3). 맛사는 무죄한 자에 대한 시험, 시련(고난)을 묘사한다(욥 9:23).

맛사(시험)라는 광야의 장소는 이 점에서 하나의 격언 거리가 되며, 종종 말의 기교를 이용하여 나사(시험하다)와 함께 사용되어 있다(출 17:2, 출 17:7, 신 6:16, 신 33:8, 시 95:8, 시 95:9, 참조: 신 9:22). 광야에서 여호와를 시험한 저들은 가나안을 보지 못할 것이다(민 14:22-23). 이스라엘의 찬송시들은 이러한 반항적인 태도를 반영해준다(시 78:18, 시 78:41, 시 78:56, 시 106:14).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본문 17:2에 외친 대로 툭하면 "여호와를 시험하였습니다." 진정 이들은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맛보았고 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하여 자신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했지만 또 다시 불평과 원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악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제 므리바에서 생수의 기적을 허락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 

은유적인 견지에서 물-물은 많은 은유에서 나오는 하나의 요소이다. 하나님, 곧 "생명수"(렘 2:13)의 근원이신 분에 대한 열망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는 것과 같다(시 42:1). 따라서 그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사 55:1-2)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을" 것이며(사 58:11),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을 것이다(시 1:3, 렘 17:8).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마르고 물 없는 땅같을 것이다(시 143:6). 결혼의 영역에서, 자기 아내와의 성적인 기쁨은 자기 자신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는 것에 비유되며(잠 5:15, 아 4:15), 반면에 매춘은 "훔친 물"을 마시는 것과 관련된다(잠 9:17).

그런고로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완악하고 무지한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으로 삼아주시고 오늘도 싫어버린바 되지 아니하시고 주의 오른손으로 끝까지 붙들어 주시사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므리바에서의 물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순종함으로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 나와 갈증을 해결하였습니다.
모든 사회 전반적인 문제 외에도 교회 부흥과 성장, 가정의 위기, 사업의 번창 등 크고 작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단정하여 오히려 불신앙인의 길에 들어서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해결해 주실 때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셋째: 반석은 그리스도요 반석을 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함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하신 말씀처럼 반석은 곧 그리스도요 반석을 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심으로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이것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며 그곳에서 인류가 마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요 7:37-38).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곳이 못됩니다. 인간의 갈증을 해결해 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과 목마른 인생들은 신령한 반석이신 우리 주님께 나아오십시오!(마11:28-29,사55:1-2) 그리고 여러분이 애써 우물을 파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반석이 되신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생수가 부족할까 염려하지도 마십시오. 온 천하만민이 다 마시고 짐승들까지라도 마시고도 남을 만큼 생수는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이 물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마실 수 있습니다(사 55:1). 이 생수를 마신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퍼서 마실수록 끝없이 터져 나오는 영생수입니다. 그야말로 신령한 반석에서 나오는 신령한 음료입니다.
       
Ⅲ. 내 속에서 반석과 같은 생수가 흘러나려면 
   
첫째 : 예수님께 나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환난을 당했을 때 모세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으시며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또한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 21:22, 막 11:24)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는 말씀처럼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나오는데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만족함이 없었던 여인으로 광야에 홀로 남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으로부터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 4:13-14)는 말씀하실 때 사마리아  여인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하며 즉시 간청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각양 각색의 크고 작은 갈증을  지니고 삽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 인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생수는 없습니다. 신령한 반석이 되신 예수 외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신령한 음료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모든 죄인들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수"를 값없이 나누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수 천만금의 재산이 있어도, 달나라를 가는 지식이 있어도,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를 가졌다해도, 절세 미인 이라 할지라도,  제 아무리 많은 선행을 쌓았다해도 예수 앞에 나오지 아니하고서는 영원한 생명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고 생명수를 공급해 주시는 예수님께 기도하므로 여러분의 삶 속에 생명수의 은혜가  넘쳐 나오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 야 합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고 방황하며 불순종함 속에 원망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저들의 삶속에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예수 믿을때는 표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십자가의 은혜는 다 사라지고 그 대신 물질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더니만 그의 영혼과 삶에 기쁨이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지난 날 주님과의 첫 사랑의 감동과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 만나가족 모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덕 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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