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쓰임 받는 좋은 그릇 (딤후 2:20-21)

  • 잡초 잡초
  • 368
  • 0

첨부 1


하나님의 은혜로 제 5년차 키르키스탄 의료선교를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17명이 출발했습니다. 9월14일 수요일 저녁 9시에 인천공항에서 집결했습니다. 밤비행기로 출발하는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텅빈 공항에서 모든 수속을 밟고 낡은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12시 05분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가 약 30분이 지나도록 비행기는 이륙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는 앞좌석이 닿는 아주 오래된 비행기였습니다. 6시간 40분(현지시간 03시 40분경)이 걸려서 비쉬케크 마나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시간 05분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역을 위한 약품과 의료기기들을 찾는데 또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 키르키스탄 폭동으로 정권이 바뀌고 행정이 많이 까다로와 졌습니다. 그래서 새 정부가 개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항업무도 엄청나게 까다로와져서 의약품을 통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물론 우리는 한국에서 기증서류, 세금 계산서 등 많은 서류를 준비 해 왔지만 그것으로도 해결 될 수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일단 우리는 숙소를 향해 개인 짐들을 준비된 트럭에 싣고 출발했습니다. 공항에는 우리 문제 수습을 돕기 위한 현지인 한국인 선교사님이 남고, 우리는 장 선교사님 아버님 장 장로님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사역 장소인 ‘약속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벌써 약속의 땅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우리 의료진들이 가방에 넣어 왔던 ‘한방 침’이 좀 있어서 그나마 오늘 사역은 안과사역 없이, 약 조제없이 사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의 일과를 예배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서의 어려움은 오늘로 해결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도록 마음에는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오후에는 좋은 소식이 올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어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접수부에는 계속 환자들이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좋은 소식을 듣지도 못한채 마무리를 하는 우리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기대했습니다. 내일은 될 것이라고 . . . 선교사님도 내일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다음날,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수습진들이 아침 일찍부터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둘째날 사역도 아직은 남은 한방침이 있었기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에 밀려 시간이 가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입니다. 공항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에 놀라 버렸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지나간단 말인가? 만일, ‘오늘도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은 환자들을 돌려 보내야 한다.’ 그런 부정적인 환상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환자들에게 내일은 꼭, 약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 오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 . . .우리의 꼴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체면도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낮추신 것입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저는 “하나님, 살려 주세요”)
그런데 저녁 식사후 각자 숙소로 돌아 갈 즈음 10시 경에 공항에서 기쁨의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지금 문제가 해결되고 약을 싣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히 박수를 쳤습니다.

세쨋날 우리는 벼렀습니다. ‘오늘은 라면을 먹고서라도 밀려오는 그들에게 섬기리라 . . .’오늘은 약속의 땅 현장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겁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셋째날은 컵라면을 먹으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즐거웠습니다.
저는 내일 주일인데 예배 준비를 해야 하는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생각하면서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영적인 전투를 한 것입니다.
주일은 참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랑교회의 열린 예배, 찬양예배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우리는 그들의 찬양에 매료되고 함께 깊은 은혜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월요일 오후 3시40분 까지 사역을 하고 팀미팅, 예배를 드리고, 세미나 장소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너무 많아 상황에 따라 시간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1차 접수 창구인 현지인 접수 창고에서는 벌써 진통을 겪고 자기들 맘대로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진 재진, 벌써 800명이상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오전인데도 . . . 큰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걱정입니다. 저들을 돌려 보내야 하다니. . .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저들의 갈급함을 무엇으로 채워 줄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저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사역을 하면서도 저 큰 대문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라’하면 간다고 합니다. ‘내일 오라’하면 내일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번 사역을 통해 우리교회 의료팀과 현지 의료팀이 합해서 43,00명을 진료, 또는 미용, 안과(안경 - 돋보기, 졸보기) 등 섬겼습니다. 할렐루야. 오후 예배시에 우리 단원들의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 큰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한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까슈까슈라는 세미나장(천산이 3500m높이의 산입니다. 2000m에 지어진 별장)에서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간단한 소감들을 말했습니다. 그 때 할렐루야 교회에서 오신 이비인후과 의사 백 장로님이 합석하시게 되었는데 그 장로님은 20회째 오시는 분이신데 “하나님이 나를 써 주신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릅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몽당연필입니다.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이 말은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마더 테레사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봉사단을 만들어 인도의 빈민촌에서 고아와 병자,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이 사랑의 봉사단은 126개국에서 모인 4400명의 전임사역자들을 둔 아름다운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떻게 한 여인의 손을 통하여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녀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몽당연필이라 말한 것처럼 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받는 것이 그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허점과 단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마다 쓰임 받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일평생 흠 없이 얼룩 없이 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위대한 인물이오, 큰 은혜 받은 사람이었지만 술로 망신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음이 두려워 부인을 누이동생이라 속이기도 했고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 오늘날까지 민족간에 갈등의 문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도 실수가 있었고, 성군이라 불리우는 다윗에게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믿는 사람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서던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의 불완전하고 실수,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주님이 쓰시기 위하여 준비해둔 그릇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성도들
은 항상 쓰임받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그저 비치해둔 골동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오럴 로버트 목사는 말하기를 “당신이 준비한 축복의 그릇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면 주님은 당신의 모든 요구를 채워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생은 그릇과 같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그릇이냐, 얼마나 준비된 그릇이냐에 따라서 귀한 것이 담겨질 수도 있고 천한 것이 담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에게 필요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금그릇이라고 해서 반드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손에 가까이 있어야 많이 사용되고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 자기를 깨끗케 하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하다는 것은 사용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깨끗한 그릇은 속이 비어 있습니다. 채워지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더러운 죄악과 정욕으로 가득 차 있으면 주님의 일에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성결한 삶에 최선의 목표를 두고 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대기상태’에 있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의 인격, 나의 삶 즉 나의 영혼이 하나의 영적인 그릇입니다. 나의 언어, 말씨, 말투가 그릇입니다. 나의 행동, 일거수 일투족이 바로 그릇입니다. 나의 모습 자체가 그릇입니다.
좋은 그릇은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산적으로 적극적으로 선한 말로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도움이 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감사로 인사를 하고, 감사로 작별하고, 감사로 일관된 자기표현에 익숙합니다. 성령에 이끌림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나쁜 그릇은 만사를 부정적으로, 파괴적으로, 소극적으로, 악한 말로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고 비난하고 끌어내리는 사람은 그가 바로 나쁜 그릇 악한 그릇임을 스스로가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악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사탄의 노리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의 선한 일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한 옷을 입은 멋쟁이 신사 숙녀인데, 하는 행동은 예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욕설, 음담패설, 저질적 행동. . .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마15:18-20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합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것들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처음에는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에 사탄 마귀가 더러운 것을 가져다 넣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안과 밖이 모두 깨끗해야 합니다. 항상 깨끗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성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몇해전에 ‘국제 투명성 기구'에서 부정부패가 많고 적음에 따라 으냐, 적으냐 나라별로 순위를 매겼는데 그 결과 제일 부정이 적은 나라의 1위가 핀란드, 2위가 덴마크, 3위가 스웨덴, 4위가 뉴질랜드였으며 우리와 이웃하는 일본은 스물세 번째고 중국은 63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는 조금 나은 48위였습니다. 민족도 깨끗한 민족을 쓰십니다. 교회도, 개인도 . .

2. 주인이 쓰실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것이 준비되었을 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향력을 많이 끼친 사람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두 가지 종류의 자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부수적 자질(Auxilliary Quality)과 본질적 자질(Primary Quality)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수적 자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학벌, 재산, 외모와 지위, 배경 등 외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 많이 했다, 돈 많다, 잘생겼다 그러면 이러한 것들로 그 사람의 위대함과 성공을 판단하여 버립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인생에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부수적 자질이 있어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인 자질이 좋은 사람이 영향을 미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질적 자질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성숙한 인격의 요소들입니다. 인내심, 사랑, 이해, 비젼, 결단력, 포용력, 믿음 등입니다.

이러한 본질적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인격의 깊숙한 곳에 자극과 감동과 변화를 일으킵니다.
히딩크 감독의 경영 가운데 첫 번째가 기본적인 것을 잘해라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체력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도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조에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지으셨는데 진흙으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혼을 부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예레미야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는 그릇은 멋이 없을지라도 쓰기에 편해야 합니다.
멋있는 그릇은 보기위해 장에 넣어둘지는 모르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멋은 없을
지라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쉬운 그릇은 주인이 언제나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은 모난 구석이 없어야 합니다. 군데군데 뽀족하게 나와 있는 그릇은 항상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래서 사울 같은 사람도 고쳐서 쓰십니다. 베드로 같은 괴팍한 성품의 사람도 고쳐서 쓰십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나를 쓰시라고 내버려 두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뾰족하고 거친 나쁜 성격을 제하여 버리도록 애쓰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은 쓰십니다. 순종을 잘 하는 사람. . 교만한 사람은 쓰기가 불편해요.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쓰기가 불편합니다. 겸손히 순종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친절한 사람입니다. 일을 좀 시키면 언행이 불손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은 쓰기가 불편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나 버림을 받게 마련입니다.

3. 선한 일에 사용되도록 준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써 주신다고 할 때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에서는 40대만 되어도 명퇴를 당합니다. 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죽을 때까지 퇴직이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 . . .우리가 일할 곳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 선교지에서 . . .
전10:10-11 “무딘 철 연장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방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무용하니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쪼개려고 할 때에 지혜로운 자는 먼저 도끼를 잘 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마술사가 먼저 뱀을 잘 길들인 뒤, 혹은 기술을 잘 터득하고 뱀을 다루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전에 계획과 준비가 없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선한 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영광 돌리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남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합니다. 학생은 세상 사람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여러분이 사용하는 재능 모두가 하나님께 쓰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주님 앞에서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정들이,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좋은 그릇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임 경 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