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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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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글에 보니까 사람이 결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접시가 엄청 낮기 때문에 코가 다 안 들어가서 죽을 수 없다는 겁니다.  둘째는, 입으로 숨을 쉬면 됩니다.  그리고 셋째는, 접시 물이야 다 마셔 버리면 되기 때문에 결코 죽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다"  이 말은 그만큼 처지가 매우 힘들고 어려워서 답답한 상황일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일어서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나라가 있습니다.  일어서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기업이 있습니다.  일어서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주저앉은 가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쾌락 앞에서 무너집니다.  술과 도박에 무너집니다.  마약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십시오.  내 자신이 무너지면 내 가정이 무너집니다.  내 자신이 무너지면 내 기업도 무너집니다.  내 자신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집니다.  내 자신이 무너지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맙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무너지면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너지면 안됩니다.  절대로 무너지면 안됩니다.  그런데 자신을 무너지게 만드는 적은 외부적인 환경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의 최고의 적은 바로 내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은 실제의 일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나를 지키려고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보다 더 주의해야 할 대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란 자기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자기만의 대 사업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가 살았던 삶의 내용을 가지고 반드시 계산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마십시오.  아침의 안개처럼 있다가 사라질 재물 앞에 무너지지 마십시오.  술과 육체적인 쾌락 앞에서 무너지지 마십시오.  결코 하찮은 일로 깊은 상처를 입지도 마십시오.  결코 일시적인 실수나 실패에 너무 간단히 자신을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절제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다시금 일어나 세움을 받으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사명의 성을 더욱 견고하고 든든하게 세우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십니까?  복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회를 잘 만나야 한다면서 기회를 탓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설치고 다녀도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것이 인간입니다.  지금 미국을 보십시오.  세계 유일의 강국이라고 말하지만 불어오는 헤리케인 앞에 추풍낙엽으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풍랑 앞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도망가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애매한 모함을 받아서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상황은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은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잘나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못나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자신의 모든 판단과 경험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십시오.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 세계 역사를 이끌고 나갔던 민족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있는 나를 다스리고 이기기 위해서 저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성질이 나를 주장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모름지기 사람이 성질대로 살면 안됩니다.  한 순간의 성질이 평생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모세는 므리바에서의 단 한 번의 성질 때문에 그가 일평생 꿈꾸어왔던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 한 번의 성질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성질을 죽이셔야 합니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육신의 성질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성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에 그의 성품을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균형 있는 성품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좋은 성품, 균형 잡힌 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습관의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습관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따라갑니다.  그래서 습관 앞에서는 자신의 의지도 한없이 무기력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습관이 바뀌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습관이 바뀌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는 습관을 가져야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의 사람은 찬양하는 습관을 가져야 능력 있는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온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나는 온갖 좋은 믿음의 습관들을 가지십시오.  시기와 분쟁과 질투와 염려와 근심과 좌절과 욕심과 탐욕과 두려움은 성질입니다.  이 육신의 성질을 다 버리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믿음의 아름다운 성품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다스리고 이기기 위해서 둘째로,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인간은 환경에 너무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인간은 역경과 고난 앞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이나 역경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역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당당하게 걸어가는 삶의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여유를 누릴 줄 압니다.  믿음의 사람은 거친 풍랑 속에서도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아십니까?  고난은 고난으로만 끝나지는 않습니다.  고난은 언제나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를 가져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고 하면 어떤 고난 속에서도 수많은 축복의 열매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한다고 하면 어떤 고통 중에서도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붙들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 능력의 비밀을 알았던 야고보는 1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지혜를 구하십시오.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늘의 능력을 덧입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능력 있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살았더니 능력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었더니 나도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승자는 믿음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일이 되도록 만듭니다.  되지 않아도 될 줄로 믿고 마음의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패자는 일이 되어 가는 대로 맡겨둡니다.  그래서 되지 않을 때에는 스스로 절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앞에는 무제한으로 널려있는 자원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성공은 결코 지능지수와 관계가 없습니다.  성공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적극적인 기대를 가지고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때문에 환경을 전혀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너무 지나치게 민감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서야 할 자리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환경을 너무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십시오.  필요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남께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약의 말라기를 읽어보면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피차에 이런 말을 합니다.  "금식하고 철야하고 기도하고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이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고.  눈가림으로 적당하게 신앙생활하고 기도도 하지 않고 전도, 봉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을 받아서 잘 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질문은 오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를 그렇게 유별나게 믿을 것이 무엇이냐?  대충 대충 믿어도 잘만 살더라.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헌신하지 않아도 잘만 되더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보라, 하나님이 정한 어느 한 날이 올 것이니 그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분별될 날이 오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이 잘되는 것은 장마철에 지붕에 풀이 난 것과 같아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의인의 고난은 하나님 앞에서는 잠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잠시 동안의 형통함을 보고 복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버림을 받았다고 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통도 형통함도 하나님의 허락으로 된 것입니다.  혹여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도 불구하고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지금 연단시키셔서 더 영광스럽고 좋은 것을 주시려고 예비 중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주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도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한 시대의 지도자, 하나님의 일꾼들은 남다른 기도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이 기도의 영역이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가고 두드러지지 않으면 결코 지도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초대교회 교인들도 전혀 기도에 힘썼기 때문에 남다른 기도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고, 이 시대의 변화의 주역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남다른 나 자신만의 기도의 영역을 넓히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자기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권능이 있어서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십니다.  무기력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더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자꾸 자꾸 커집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많이 해야 지혜가 나옵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온유함에 이르게 됩니다.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고 그 땅에서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가장 강력한 능력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끝없이 영혼의 숨을 쉬어야 합니다.  하늘의 숨, 신령한 숨을 쉬어야 합니다.  생기의 숨, 살아 있는 숨을 쉬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그 심령이, 그 영이 오염될 때에 구석구석을 청소할 수 있는 생기의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끗한 공기를 계속해서 마셔야 우리 영혼의 골방을 청소하게 됩니다.  기도해야 영혼의 오염을 진단하게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영혼의 골방들이 오염되면 무기력해져서 나라가 고난을 당합니다.  가정이 고난을 당합니다.  사업이 고난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시대의 종교 지도자가 되지 마십시오.  종교 지도자는 끝없이 사람을 모으고 자신을 배우라고 강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종교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믿음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는 나가지만 자기들이 들은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자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을 기쁨으로 압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경건의 모양도 있고, 경건의 능력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는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힘씁니다.  아십니까?  기도의 실패가 바로 지도력의 실패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의 문제는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기도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설교 보다 기도를 많이 한 설교가 곤고한 영혼을 살립니다.  그래서 잘 배운 것보다 잘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백마디의 말보다 한마디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성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서울 왕성교회에 시무하시는 길자연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자연 목사님의 부친이 병으로 소망이 없어서 이제 모든 절차가 끝나서 장례준비를 하는 순간에 하나님 앞에 히스기야의 기도를 생각하고 도봉산으로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그때가 여름인데 담요 하나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비가 올 때는 비를 맞아 가면서 바위 위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밤에는 바위 위가 그렇게 춥더랍니다.  그리고 무섭더랍니다.  아무도 없는 큰 바위 위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아버지를 살려 주시지 않으면 나 목회 안 합니다."  그리고 매어 달렸다고 합니다.  길자연 목사님은 한의사 출신입니다.  한의사를 하시고 신학을 하셨습니다.  형제들이 다 한의사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을 금식기도 했습니다.  또 일주일 더 연장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생명을 연장해 주십시오.  현대 의학으로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매 달렸다고 합니다.  바위 위에서 금식까지 하고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이슬을 맞으며 밤을 새우며 바위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보름이 되었는데 마음에 평안이 오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교회 성도들의 기도 응답 가운데 제일 좋은 응답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있어서, 아!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그리고 내려왔는데 아버님이 완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님이 꼭 히스기야와 같이 십오 년 삼 개월을 사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충 대충하지 말고 히스기야처럼 생명을 건 기도를 하십시오.  출애굽기 22장 23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시편 107편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할 때에 근심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고통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저주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흑암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시편 107편에 보면,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소원의 항구.  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게 하시는 것.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아니하면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앞에 와 있는데 도무지 잡히지 않습니다.  소원의 항구에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간구하면 넉넉히 소원의 항구로 들어갈 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기도의 훈련을 시킵니다.  우리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기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 안 하면 안 되도록 기도의 장소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너 왜 구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내 영혼에 문을 두드리십니다.  물론 지금 당장에 기도의 응답이 없을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가난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어려움이 많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좋아진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려움 없이 빨리 잘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려움은 오히려 나를 더 강한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교육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어떠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도의 용사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은 기도하고 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마치 소나기와 같습니다.  구름이 많을수록 비가 많이 내립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은혜의 기압골이 만들어집니다.  구름이 서서히 그 집으로 찾아옵니다.  은혜의 구름이 그 위에서 만들어지고 하나님이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십니다.  내일 새벽부터 여리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시작합니다.  새벽기도에 나오고 안나오고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 순간에 이미 특새하고는 상관없다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없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는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 기간에 히스기야처럼 생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던 모세처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놀라운 하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은혜는 가만히 앉아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이 사모하셔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은혜 받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행동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은혜 받는 일을 주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그러나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더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육신이 한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육신이 피곤하여도 기도하면 새로운 힘을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육신이 피곤하여도 기도하면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과 같은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특새 기간에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한 번 새벽을 깨워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해야 큰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큰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내가 너희를 향하여 에덴동산같이 만들어 주는 큰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네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기도하지 아니하면 창고의 문을 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엄청난 큰 일, 큰 계획, 큰 축복을 가지고 계시지만 기도하지 아니하면 이루어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나와 내 가정을 향한, 그리고 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계획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을 걱정하거든 기도하십시오.  내일이 염려되면 기도하십시오.  내년, 10년 후에 어떻게 될는지 불안해한다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다 이루어 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해 놓은 것을 이루는 성취의 통로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실 것이 있어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도란 내가 소원을 구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소원을 주셨고 하나님이 주시고 예비하신 그 소원을 따라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의 감동에 대한 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시작했다면 이미 여러분은 축복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싶어졌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왔을 때에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지 마십시요.  예비하신 축복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는 공동체를 향한, 이 민족을 향한, 각 가정을 향한,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을 하셨는데 왜 회복되지 않는 것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역사 한 가운데 펼쳐져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지금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며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유대인들은 종종 기도할 때에 서서 기도합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에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영광스런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들은 일어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감사할 때에, 찬양할 때에, 삶이 평범하게 잘 펼쳐져 갈 때에 우리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낭만적으로 안일하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절규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1절에 보면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의 자리가 너무나도 장엄하여 43절에 보면 "천사를 보내 기도를 도왔다"고 말씀합니다.  이어지는 44절에 보면 얼마나 처절하게 매달려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기도했던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어서 뚝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생명을 거는 기도,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자신을 위하여, 내 가정과 사업 앞에서, 우리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민족의 운명이 중요한 기로에서, 찢어져 가는 이 땅의 가정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냥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걸핏하면 목을 매다는 사람들, 자살의 영들이 우글거리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요청하고 있지 않습니까?  청소년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정말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인가?  내 부모들처럼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방황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내 자식을 축복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라고 느끼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비범한 상황은 비범한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필사적인 기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자들이 잠들어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소리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절규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잠 속에서 언뜻언뜻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잠 속에서도 예수님의 절규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절규하시던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분이 있다고 하면 바로 예수님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기도하셨습니다.  매달려 기도하셨습니다.  피를 토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잠들면 민족이 잠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민족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가정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자식들이 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쓰러진 그 자리, 절망했던 그 자리, 낙망했던 그 자리에서 용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절규하며 기도하던 그 밤의 비극적인 기록을 본문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잠자는 자는 말이 없습니다.  대화가 끊어집니다.  영적 대화, 기도가 단절된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잠자는 자란 죽은 자와 같은 말입니다.  그 영혼이 병들어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잠자는 자는 행동이 없습니다.  사역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라!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은 잠잘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깨어서 기도해야 할 사람입니다.  길이 막혔다고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길이 보입니다.  길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포기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절망하십니까?  이웃 탓에 불평이나 하고 있지 마십시오.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가면을 쓴체 왜 당신의 문제를 숨기려고 하십니까?  어디로 도피해 버리려고 하십니까?  에라 잠이나 청하자.  망각으로 도피해 보니 해결책이 보입니까?  길이 보입니까?  이제 접어두었던 기도의 제목을 다시 펼치시기 바랍니다.  덮어두었던 성경책을 다시 펼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길이 막혔다고 절망하지 말고 하늘 문을 두들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오 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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