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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이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창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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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아버지 이삭은 유랑민이었습니다. 그는 들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머문 적이 있는 땅 가나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기를 훌쩍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엮어집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야곱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더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아들입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 형들과 함께 양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두 소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을 거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좋지 않게 일러바쳤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은 늦둥이라고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장신구를 단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아버지가 유별나게 요셉만을 더 사랑하자 형들이 요셉을 싫어했습니다. 그가 미워서 정다운 말 한 마디 건넬 생각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꿈 이야기를 무심코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형들은 그을 더 미워했습니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쎄, 밭에서 우리가 곡식 단을 묶고 있었습니다.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섰습니다. 형들이 묶은 단이 둘러섰습니다. 형들의 단들이 내가 묶은 단에게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꿈 이야기는 형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습니다. “네가 정말 우리에게 왕 노릇할 셈이냐? 네가 정말 우리에게 주인 노릇할 셈이냐?” 형들은 이것 때문에 요셉을 더 미워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또 눈치 없이 꿈 이야기를 합니다. “글쎄, 제가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 열 하나가 내게 절을 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대체 무엇이냐? 그래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너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형들은 동생을 질투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었지만 그 일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주로 요셉의 기록이 많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열 두 아들 중 제일 많이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소매 있는 긴 두루마기(채색옷이란 헬라어 번역)를 지어 입혔습니다. 이것이 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사기에 넉넉했습니다. 곡식 단 꿈 이야기로 형들의 미움을 더 삽니다. 그런데다가 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해 절했다는 꿈 이야기는 형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단에서 형들에게 잡힙니다.(37:12-17) 그리고 그는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려 갑니다.(창 37:19-21,25-27) 이를 무마하기 위해 형들은 영영히 종으로 팔려간 동생이 못 오리라 믿었습니다. 그의 옷(비단 두루마기)을 벗겼습니다.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동생을 팔아넘깁니다. 그래서 그 옷에다 양의 피를 묻힙니다. 들짐승에게 잡혀 먹힌 것으로 꾸밉니다.(창 37:31-33) 이 사건의 전체 줄거리는 한 가정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 소년의 철없는 꿈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 소년의 철없는 꿈 이야기로 빚어진 슬픈 이야기만 아닙니다. 저도 오늘 “요셉이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아버지의 실수(편애)

야곱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입니다. 편애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그는 경험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형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그 아버지의 고향에 왔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재산도 상당합니다. 아들, 딸 많이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처럼 아들 중 요셉에게 더 사랑을 했습니다. 은밀히 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띄게 그를 더 사랑했습니다. 옷도 고급으로 지어 입혔습니다. 그러니 다른 형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그는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를 아내로 맞으려고 7년을 머슴살이했습니다. 그 아내가 낳은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더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요셉의 이복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들만 편애하는 아버지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분개는 아버지의 총애만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보다 요셉이 더 영리했습니다. 더 잘 생겼습니다. 모든 면에서 더 잘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런 인기 끄는 장점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너그러웠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더 재미있고 화목한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도 해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 목표 없이 사는 형들이 요셉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형들은 거기 순응하는 대신 반발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없애 버리려 했습니다.

형제간에도 이런 무서운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가정에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에게 격려를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처음에 어머니와 동생들의 반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들의 옷자락을 뒤에서 잡고 당기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잘난 형제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를 같이 하지 않은, 형제 이상의 친구가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목숨처럼 사랑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가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친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멋진 동반자였습니다.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형제입니다.

부모는 나 때문에 자식이 손해 보는 것이 없나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좋은 아버지, 어머니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부모이든지 자식이 부모보다 낫다고 하면 신이 납니다. 그런데 형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나 때문에 형이나 아우가 손해 보는 것이 없는지 자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형제를 중상모략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야곱 가정이 살만하니 이런 어려움이 왔습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저 때문에 우리 자식들이 손해 보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아들도 자식입니다. 딸도 자식입니다. 사위도 며느리도 다 자식입니다. 아마 자식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식 사랑은 남다릅니다. 그러나 사랑을 잘못하면 그게 병이 됩니다. 가정에 슬픔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곱 가정이 바로 그런 예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 길이, 넓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의 사랑고백입니다. 우리 가정은 가정다워야 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합니다. 가정이 작은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가정을 돌보는 데는 등한히 합니다. 야곱도 그런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곱 가정의 비극의 역사를 잘 지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왜 가정이 흔들립니까? 돈 문제, 자녀 교육문제, 어느 한쪽의 불륜관계, 성격 문제 등 문제는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야곱 가정은 야곱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것이 발단입니다. 또 요셉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야곱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 편이냐? 인간 편이냐? 가 문제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편에 선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런 중에서도 가정의 소중함을 늘 느꼈습니다. 지금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불확실한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자기에 대해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신만만합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이 1835년 미국에 갔습니다. 그는 “프랑스에는 정부가 있고 독일에는 계급이 있고 미국에는 협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조상이 청교도입니다. 개척자입니다. 뉴프런티어입니다. 허허 벌판에 마을을 세웠습니다. 농토를 일구었습니다. 그들은 개척사회입니다. 믿을 건 하나님과 자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믿고 살아온 야곱이 잠깐 졸고(영적으로)있는 동안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Ⅱ. 꿈 쟁이 요셉

성경에도 “젊은이는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았습니다. 미국인 교수가 호가이도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본국으로 떠나면서 남긴 말 “청년들아 야망을 가져라.” 했습니다. 야망은 꿈입니다. 이상입니다. 일찍 철부지 요셉은 꿈을 꾼 것입니다. 소년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는 이미 세계를 지배할 사람인 것을 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혹시 “Big man Big voice”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토마스 크리스토프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키가 132cm인 그는 손가락이라고는 양손 다 합해서 7개 뿐입니다. 1950년대 유럽의 임산부들이 입덧을 없애는 약을 복용했답니다. 그 약이 탈리도마이드랍니다. 크리스토프를 가진 어머니도 이 약을 복용했습니다. 이 약의 부작용으로 크리스토프는 태어날 때 손과 발이 제대로 뻗지 못합니다. 물개처럼 뒤로 꺾였습니다. 그는 의족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가 성악가가 되려고 독일 하노버음대 학장실에서 면접을 봅니다. 이 크리스토프는 성악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학장은 냉정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독일의 교육법상 성악과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한 가지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라든지…….” 그는 보기 좋게 불합격 딱지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난장이, 불구자인 그가 그래미상을 두 번 받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콜린데이비스, 정명훈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협연했습니다. 2010년 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 있는 세계적인 바리톤 성악가입니다. 그는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저돌적인 사람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왕따를 당했습니다. 늘 외톨박이였습니다. 끝내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렸습니다. 또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오뚝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를 보고 사는 불사조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런 소질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 누구에게서도 절망이 있습니다.

보리쌀이 우리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겨울 눈보라를 견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온상에서 키운 농작물 보다는 자연 그대로 키운 채소가 더 좋답니다. 비바람 맞고 견딘 나무가 곧고 결이 좋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여러 시련을 버틴 사람이 더 세상을 잘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어둡고 답답한 곳으로 이끄십니다. 질식할 것 같지요. 지나고 보면, “아,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연단시키시는 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셉도 힘든 일을 당할 때는 잘 몰랐을 것입니다. 먼 훗날 그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꿈을 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더 현실적으로 와 닿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문제는 내가 진실 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설 ‘띠보가의 사람들’ 주인공은 쟉끄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가톨릭을 믿는 띠보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4세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이란 친구와 남몰래 기록한 “회색의 노트”를 선생님께 발각됩니다. 그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소년원에 보내집니다. 그는 20세 때 “에꼴 노르마르”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말다툼으로 가출합니다. 그는 3년 동안 소식이 끊어집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젊은 의사로서 성공해 있습니다. 그의 동생이 스위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임종을 같이 지킵니다. 그는 결국 사회주의에 물든 사람이어서 또 다시 거기 빠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꿈이 어떤가를 잘 압니다. 요셉은 앞으로 애굽과 주변의 나라를 먹여 살리는 힘 있는 정치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꿈대로 된 것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야곱은 아들이 열 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비단으로 긴 옷을 입혔습니다. 야곱의 편애로 인해 요셉은 그 형들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두 가지의 꿈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는 곡식 단 이야기이고 하나는 해와 달과 별에 대한 꿈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에 대한 섭섭함도 억울한데 엉뚱한 꿈 이야기는 더 큰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일로 인해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야곱에게는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속이고 요셉의 채색 옷에 양의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앞으로 요셉에게 되어질 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그는 앞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늘 소망 중에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 안에서 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10.2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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