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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을 위하여.... (합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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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우리 교단 총회세계 선교회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교단 전체교회 수는 7,259 교회입니다. 그 중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350여개 교회에 불과합니다. 350여 개 교회에서 709 가정 1,283여명의 선교사가 파송 되어졌습니다.
  우리 교단 내 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교하는 교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재정수입의 30% 이상을 선교비로 사용하여 전체 7 가정(부부5,싱글2)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금년 설립 19주년을 기념하여 파송하는 3명의 선교사를 합하면 공식적으로 파송 선교사가 10명이 됩니다. (부부6, 싱글4) 

  숫자 면에서 우리 교회는 규모로 볼 때 10배 정도 되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선교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색내기 위한 선교는 절대로 자기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습니다.
  교회가 어려워지거나 힘들어지면 선교사를 지원하는 선교비부터 줄이는 것이 생색내는 선교입니다. 선교 정책이나 철학과 비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는 선교는 힘들고 어려워도 감당합니다. 자신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울면서 감당합니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요, 교회의 존재의 이유이며 교회가 부여받은 절대 절명의 사명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사항입니다. 복음의 빚을 졌기에 해야 하고 주님의 명령이기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는 일도 이 일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IMF 때에도 선교비를 줄이지 않았고, 교회당 건축 중에도 선교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듦은 행복한 힘듦이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었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부흥이라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19주년 설립 기념 주일을 맞았습니다. 
  19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키르키즈와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필요한 것이 부흥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부흥을 위하여 라고 정해봤습니다.
  본문을 한번 더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간절하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수년 내에 부흥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오래가지 않고 빨리 부흥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할 시대는 아주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애굽의 군대의 침략을 받은 유다왕 요시아는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 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아하스도 왕도 애굽 군대에 의해 납치되어 가자 동생 여호와 김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호와 김은 왕위에 오른 후 애굽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였으며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국력은 쇠퇴 해지고 사회는 온갖 불의와 악행이 가득하게 되어 그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곤핍하고 힘들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고 더 성공하는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쳤고 낙심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지치고 낙심한 백성들에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외치면서 (2:4) 하나님께는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는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부흥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1. 부흥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영어로 리바이벌(revival) 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의식이 회복된다든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고 침체 상태에서 다시 활기를 띠고 번성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이 부흥을 의미하는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산다는 의미입니다.
  부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예후” (והייה) 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겔 37 장에 보면 에스겔 골짜기의 부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골짜기로 가서 수많은 마른 뼈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죽은지 아주 오래된 사람들의 뼈다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뼈들에게 말씀을 대언하라고 했습니다. 겔 37:10절에 보면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라고했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서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다 죽어서 말라 버린 뼈들이 하나님의 생기로 인해 살이 돋고 힘줄이 생기고 호흡이 시작되어 다시 살아 숨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33:4절에서도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었던 자리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 부흥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이 하신 탕자의 비유 말씀 가운데 이 부흥의 뜻이 나타납니다. 탕자가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가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라고 선언합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 그 아들은 죽었던 자나 다름이 없었고 그가 돌아왔을 때 그를 받아 줌으로서 그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2) 번성하는 것입니다.
  시92:13절에 보면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 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겼기에 흥왕할것이라는 것입니다.
  흥황이란 침체 상태에 있던 것이 다시 일으킴을 받아 활기를 띠고 번성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딤후 1:6절에서 디모데에게 안수 기도를 하면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침체 되었던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디모데는 은사가 침체되어 용기를 잃고 있을 때 바울 사도가 안수해 줌으로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 흥분되는 것입니다.
  학 1:14-15절에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군들의 마음을 크게 흥분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오늘 우리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흥분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의 일을 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감격 때문에 흥분해야 합니다. 오늘 목회칼럼에 지난 송구영신예배 설교 때 했던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는 증거 일곱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를 보면서 마음이 흥분되었었습니다. 그 흥분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었습니다.
  다음 날 꼭 두 분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증거라고 해도 전혀 흥분되지 않는 사람들 여러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삽니까? 물론 속으로야 다 느끼겠지만......
   
  2. 부흥이 일어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①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여야 부흥이 일어납니다.
  사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②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역대하 7:14절을 보면 회개할 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창3:8절에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라고 했습니다.
  욘1:3절에 보면 요나도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장면을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아담이나 요나는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여호와의 낯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얼굴은 은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해 비는 기도문에서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5-26) 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진정 우리가 온갖 악한 것과 불의 한 생각을 다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진정한 의미에서 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③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부흥의 원동력은 성령입니다.
  요엘서 2;29절에 보면 말일에 하나님께서 성신을 만민에게 부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부은바 되면 심령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신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고전 12:3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부흥이 일어납니다.
 
  ④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든 개인이든 말씀이 충만하고 말씀이 풍성해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12:24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행19:20절에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내 안에서 흥왕 하여야 심령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는 말씀이 없어서 기갈이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묻혀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많은 말씀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성도들은 기근이요 기갈입니다. 왜 그렇까요?
  먹을 양식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먹지 않으니 기갈입니다. 없어서 못 먹는 시대에는 우리의 소화 기관은 정말 튼튼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것이나 먹어도 소화가 어찌 그리 잘 되었는지. 그런데 요새는 그렇게 좋은 것 잘먹어도 왜 그렇게 위장병도 많은지 ...

  너무 좋은 것 만 먹어서 소화 기관이 약해져서 그렇습니다.
  잘 먹어도 소화를 못시키고, 체해 버립니다. 그러니 결국 병든 위장을 가지고는 산해진미가 소용없는 것처럼 성도들의 영적 위장 기관들이 병들어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전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부흥은 말씀이 내 안에 떨어질 때 그 말씀이 내 인격을 지배하고 나의 삶을 주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 부흥이란 말씀 실천 운동입니다. 이번 부흥회는 말씀이 흥왕해지는 부흥의 역사가 우리 성도들의 심령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제 19주년을 맞는 우리교회에 성도들의 모든 심령과 환경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악한 것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갑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심령을 고치실 것입니다. 심령의 부흥으로부터 삶의 부흥이 시작됩니다. 가정도 경제도 국가도 우리의 심령이 죽으면 다 죽습니다.
  말씀의 충만을 받읍시다.
  심령 부흥에서 모든 부흥 시작됩니다. 한 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신을 주옵소서. 나의 영혼에 말씀을 허락 하소서, 주의 얼굴 빛을 내게로 비치소서.
(박 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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