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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립집사의 전도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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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차를 고치려고 우리교회 강집사님 카센타에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오전 11시간대였습니다. 가게에 앉아 있는데 7-8명의 남여가 무리를 지어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더니 그 중에 2명이 집사님의 카센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파수대라는 잡지를 전해주면서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전도하는 일에 열심인줄 모릅니다. 오히려 기존교회보다 더 열심히 전도합니다. 물론 저희 교회도 목요일 오후마다 모여서 축호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건대 우리들의 열심과 비교했을때 이단들이 더 열심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종종 시내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볼때가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거나 몰몬교도들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평신도들입니다.

본래 기독교는 평신도들의 열정적인 전도를 통해서 빨리 확산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많은 평신도들 그중에는 이름이 알려진 분도 있지만 무명의 많은 평신도들이 전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초대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인 안수집사 빌립이 전도하는 활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굉장하게 부흥하였습니다. 한번에 3천명 5천명 숫적으로 부흥하였고 내적으로도 우리가 본받고 싶은 모습으로 부흥되었습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교회가 부흥되던 가운데 이제 사도행전 뒷장으로 가면서 복음이 확산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평신도 집사인 빌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사마리아로 전해지고 에디오피아까지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사마리아에서는 빌립을 통하여서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열매를 맺기도 하였습니다.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의 역사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어떻게 이런 평신도들의 전도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하면 먼저 부담이 되는 것은 나는 방법이 없다,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합니다.  먼저 전도의 “방법”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즈음의 경우 “전도방법”을 배우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방법이 필요하고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가장 잘 되는 세미나 중에 하나가 전도세미나입니다.그런데 방법보다 기술보다 오늘 빌립집사를 보면서 선행되는 전도의 비법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 소개되는 빌립집사는  전도세미나와 전도강의를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집사님은 전도의 주체이자 전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움을 힘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난뒤 40일만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이땅의 주님의 교회에 보내주신 성령님은 증거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전도하게 하시되 유대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도하도록 하십니다. 이제 성령받은 초대교회성도들은 전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를 가고 땅끝까지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그렇게 엄청난 전도가 일어나고 복음이 증거된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그 성령님이 바로 우리들에게 전도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과연 성령님께서 어떻게 빌립을 전도하도록 도우셨습니까? 빌립은 어떻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까?

1. 빌립집사는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했습니다.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그 길은 광야라

성령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에게 “일어나서” “가라”고 인도하였습니다. 여기 성령님께서 전도하도록 인도하시되 일어나서 가도록 장소로 인도하십니다.성령님께서 빌립에게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광야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빌립이 가야할 곳은 “광야”입니다. 빌립이 전도해야 할 그 장소는 고난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을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가사의 광야길로 가라고 하시고 빌립집사는 여기에 순종합니다.

여러분 본래 빌립집사는 초대예루살렘교회의 안수집사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예루살렘교회가 많은 수의 사람이 모이면서 구제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구제 때문에 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자기 파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홀이 여겨진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두사도가 모든 교회의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7명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합니다.

교회의 모든 무리가 기뻐하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명을 선택합니다. 오늘 본문의 빌립집사님도 바로 그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이렇게 7명의 안수집사를 세우고나서 초대예루살렘교회는 점점 왕성하게 부흥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부흥 속에서 핍박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안수집사였던 스데반 집사님이 많은 유대인들이게 복음을 증거하다가 결국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초대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의 빌립집사님도 그  핍박을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흩어져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우선적인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가장 우선으로 삼고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교회 내적인 일에 너무 집중하다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내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교회가 예배드려야 하고 구제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로 인해서 전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교회 내적으로 자꾸 구제와 같은 문제로 인해서 전도와 선교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해서 초대예루살렘교회를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명심할 것은 교회가 외적으로 선교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으면 내적으로 교회는 거의 싸우거나 문제가 일어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초대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던 빌립집사님은 환난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했습니다. 27절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합니다. 전도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전도가 왜 어렵습니까?
내 마음에 핑계를 찾고 이유를 찾으면 전도는 벌써 힘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환경”에 대한 상황의 핑계를 될 수 있습니다. 가령 빌립이 “하나님 광야에 무슨 사람이 있다고 거기서 전도하라고 합니까?” 이유를 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 요나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불순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생각에 죄악의 니느웨성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면서 불순종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강릉지역에 복음을 증거해야합니다. 그러나 사실 환경과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보니 이유와 핑계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이유를 내려놓고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면 반드시 예비되어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빌립이 순종하자 누가 예비되었습니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이런 큰 사람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이런 큰 벼슬의 사람에게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굉장히 인간적으로 두렵고 떨려서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할 때 나보다 좀 나은 사람들을 만나면 굉장히 힘들 수 있습니다. 학식도 많고 권세도 높고 돈도 많은 조건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사실 인간적으로 빌립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성령께 순종했습니다. 

29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순종할 것은 ‘가라’는 명령에 먼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이런 예민한 귀와 마음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소욕을 소멸하지 말고 인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때로 광야의 길로 가라고 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물론 평신도인 빌립 집사에게도 가정이 있엇을 것입니다. 생업의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경로이든지 우리 앞에 전도하는 기회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 앞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봄 가을로 이웃초청축제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먼저 태신자작정을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 먼저 마음에 전도대상자를 엄마가 아이를 잉태하듯이 기도로 잉태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라고 기회가 주어지면 먼저 이것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늘 내가 마음에 전도하기로 작정을 하는 일부터 여기 먼저 마음과 생각부터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전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10월달 독후감 공모대회를 하는데 이 책도 속해 있습니다. 한번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조목사님이 그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현실 세상은 3차원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이제 이땅 3차원에서 4차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3차원과 다른 4차원에 계십니다. 우리 3차원의 인간들이 어떻게 4차원이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가? 4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첫째 생각이 4차원의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둘째 믿음이 4차원의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셋째 꿈이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넷째 말이 하나님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십니다.

자신이 47년 목회를 하면서 ‘교회가 안된다’고 생각한 적이 단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된다’‘전도는 된다’‘기적은 일어난다’고 생각햇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대로 그는 3차원의 현실에서 4차원의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이 분의 말에 긍정하고 동의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먼저 순종하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먼저 지금 전도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빌립은 열정을 갖고 전도했습니다.

30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빌립이 전도를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빌립은 내시에게 “달려가서”라고 합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에게 담대하게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내시에게 담대하게 질문합니다. “읽는 것을 깨달았느뇨”라고 질문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우리 성령님은 열정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성령님을 모신 분들을 보면 적극적입니다. 성령의 열정을 갖은 사람은 담대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전도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친짓과 같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귀와 죄를 따라 종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갖고 하나님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180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낮아지라고 합니다. 세상은 물질의 부자가 부자되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부자라고 합니다. 세상은 나를 알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나를 죽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할때에는 모든 것이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누가 이렇게 부딪히는 인생과 세계관과 싸우면서 전도할 수 있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우리의 발길을 담대하게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귀도 열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마귀가 열정을 갖고 우리를 향해 역사하는 지 모릅니다. 쉬지 않고 자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열정을 갖습니다.

저는 세상사람들의 열정있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때로 회개합니다.
얼마전에 저희 아파트 옆에 새로운 마트가 들어왔습니다.그 마트가 개업하는날 특별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비가오는데 그 마트 마당에서 어디서 왓는지 각설이분장을 한 부부인지 젊은 사람 한 커플이 열심히 엿을 팔고 공연을 하는 모습을 지나가다가 보았습니다. 한 이틀간 그 마당에서 열심히 장사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랬는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는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열정을 다해 노래하고 장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저들은 물건 하나 팔려고 저렇게 열정적인데 과연 우리는 복음을 장사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정을 갖았는가 생각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열정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열정을 갖고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구령의 열정을 갖고 우리의 삶을 드릴때 거기에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많은 경우에 현대교회가 점점 건물도 좋아지고 지식도 더 알아가고 모든 것이 더 세련되게 더 우아하게 보기 좋게 성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복으의 야성미입니다. 사실 복음은 우아함으로 세련됨으로 전파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열정의 가슴과 열정의 발이 있을때 증거될 수 있습니다.
누가 전도의 열정을 갖을 수 있고 누가 전도의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뜨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보는 것은 이전의 제자들과 사도행전 2장이후의 제자들이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입니다. 사복음서까지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복음에 대한 열정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을때 전부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나자 가장 회복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도 틀렸습니다.
여러부 베드로를 보십시오. 얼마나 열정있는 복음의 사람이 됩니까?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공회 앞에서 기탄없이 복음을 전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위협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면 가만히 견딜 수 없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줍니다. 영혼들을 향한 간절한 열정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서 고난 속에서도 흩어져 전도하는 것입니다.전도의 열정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고 나니까 너무 마음이 뜨겁고 기뻤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까 생각하다가 교사가 없어서 여름성경학교를 할 수 없는 시골교회를 돌면서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었습니다. 그때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많은 땀을 흘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고생을 했지만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시골교회를 여름성경학교를 사흘간 했는데 점심시간에 전도사님 사모임이 특별한 메뉴를 준비했다고 하면서 식사를 대접해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게 바로 보신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보신탕 먹는 것을 배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 자신부터 점점 복음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곳 교회에 올때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개척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 감격은 아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담임목회를 하면서 지금까지 10년동안 반드시 내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현장전도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정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지이든 직접 사람을 만나서 전하든지 자꾸 반복해서 계속해서 증거하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 전도의 열정을 갖고 전도의 현장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자꾸 그 기회를 우리가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귀한 기회를 갖으시는 삶 속에서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3. 빌립은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35절 빌립은 구약 성경의 내용이 복음 즉 예수님이심을 핵심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빌립이 만난 이디오피아 내시는 병거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시는 성경은 읽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경은 이사야 본문 이사야 53장 7절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깍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의 잠잠함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 오실 메시야는 종으로 와서 마치 어린양과 같이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여도 어린양의 잠잠함같이 입을 열지 않고 친히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33절에 보면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땅에서 공정하게 판별되는 판단을 받지 못하고 결국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나를 위해 잠잠하게 십자가위에서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신 어린양이십니다. 죄없으신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내대신 고난받으시고 내대신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믿을때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복음에 대한 감격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오늘 본문 빌립집사처럼 먼저 예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소개할수 잇어야 합니다. 여기빌립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빌립은 어떤 일상적인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앗습니다. 어떤 날씨나 다른 인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대해서 말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내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증거하고 소개하고 전파하시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전도를 하면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목사님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짜 복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려고 하다가도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과연 이 사람이 믿을까 안믿으면 어떻게 될까?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명확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믿고 안믿고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고전3장 6절-7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역할은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뿌리고 자라도록 수고한 그곳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빌립집사가 이렇게 예수님을 증거하자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36절에 보십시오. 길을 가던 내시가 물을 보자 “내가 세례를 받음이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마음에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빌립집사가 구약의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수님을 소개하였고 그 죄짐을 지고 잠잠한 어린양같이 죽으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배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노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빌립이 전도하자 내시가 예수님을 알고 믿고 스스로 세례받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물에서 물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를 통해서 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으시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빌립을 통해서 이디오피아 내시가 구원을 받습니다.오늘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 많은 평신도들 특히 우리 집사님들 교회 속에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초대 교회의 빌립집사님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전도란 성도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전도란 인간의 방법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는 것입니다.
빌립은 성령을 따라 전도했습니다. 빌립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절대순종했습니다. 빌립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내가 만난 예수님 구원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빌립집사로 인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고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지금 여기에서 또 한 사람 빌립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시고 소중한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도구 생명의 도구로 우리 모두가 드려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 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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