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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제물 (히 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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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0:22절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는 말씀에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나오는데 이 절기는 구약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절기로, 이 절기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주전334년경에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 인도까지 점령하여 그리이스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는 그만 향년32세에 열병으로 죽게 됩니다. 이때에 그의 부하들이 세력다툼을 일으켜 4개의 세력으로 분할되고, 유대 땅은 처음에는 프톨레미왕조에 속하였다가, 후에 다시 안티오커스3세에 의해 셀루시드왕조에 속하게 되고, 주전175년에는 안티오커스4세는 자기가 현존해 있는 신이라 하여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유대를 괴롭힙니다, 그는 169년에 이집트원정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에 와서 그 분풀이로 하나님의 성전에 제우스신상을 세우고 돼지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예루살렘 성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날이 되게 하였습니다. 167년 유대의 하스몬가의 맛다디아스라는 제사장에게 아들5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유다 마카비’라는 아들이 혁명을 일으켜 그들에게 대항을 하였습니다. 이때 마카비 혁명군은 안티오커스 4세의 군대에 비해서 수적으로나 장비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지 지형과 지리에 익숙하다는 강점을 살려 게릴라식 기습공격으로 승리의 전기를 잡아나갔고, 3년간의 투쟁 끝에 ‘유다 마카비’가 이끄는 혁명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주전164년 10월에 성전을 탈환하고, 더럽혀진 성전의 제단을 씻어내고 새로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였는데 바로 이 날이 하누카절 즉 성전을 봉헌한 날로 정한 것이 바로 이 수전절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수전절’(修殿節)이라 뜻은 성전을 씻었다. 즉 깨끗이 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달력으로 12월 중순쯤이 되는 하누카 절기에는 유대인 가정이나 회당에서는 ‘하누카 촛불’을 켭니다. 8개 촛대에 매일 저녁 하나씩 촛불을 켜 나가서 마지막 여덟째 날은 8개 촛불이 모두 켜지는데, 이러한 촛불의식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유다 마카비’가 혁명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성전을 밝히는 등불의 기름이 하루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성전에서 사용하는 성유를 만들려면 여러 날이 걸리는데 기름이 하루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유가 만들어질 때까지 하루치 기름은 기적적으로 8일간이나 성전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하누카 절기에 촛불을 켜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하누카를 일명 ‘빛의 축제’(Feast of Lights)라고도 부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는 성전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다양한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표시하고, 죄를 사함받기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필요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주보 찹살떡에 구약에 5대 제사에 대하여 올려놓았는데, 보세요.

제사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는데, 번제, 소제, 화목제는 자발적으로 드리는 자원제이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의무적인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다 그 목적에 따라 지내는데, 제사때 드려지는 제물이 대단히 중요한데, 소제를 제외한 모든 제사의 제물은 정해진 짐승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짐승 제물에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제물의 종류는, 반드시 수소,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로 제한되어져 있으며, 둘째는 이 짐승에는 절대 흠이 없어야 합니다. 병이 들었거나, 무슨 이상이 있거나, 상처 하나라도 있으면 제물에 쓰여 질 수 없습니다. 셋째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 따라 제물이 달라집니다. ‘생활형편에 따라서’ ‘신분에 따라서’ ‘범죄한 대상에 따라서’ 다르게 드립니다. 생활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수소, 그 다음 수염소, 수양,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 그중에 당시에 생활능력이 없는 고아나 과부 같은 극빈자는 짐승대신 고운가루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비둘기를 드리거나 가루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 원리는 우리가 헌금할 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에 부정한 돼지를 잡아 바치며 짓밟은 날을 최대의 수치의 날로 기억하고, 회복된 날을 절기로 삼아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이런 제사는 더 이상 드리지 않지만, 그 제사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필요한 은혜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그 은혜로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되기에 예배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제사를 잘못 드리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큰 화를 당한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아 감격하고, 기쁨과 감사하가 넘치는 삶을 살아, 하는 일들마다 잘 되어 복을 받은자도 있지만, 수십년 예배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여, 기쁨도 감격도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를 못 받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신기하지요! 같은 예배에 참여해도 은혜 받는 자가 있고, 못 받는 자가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구약에 제사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은혜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드려지는 제물이 흠 없는 제물이 되어야 하듯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도 흠 없는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늘 우리의 예배에 구약에서 흠 없는 짐승제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흠없고 완전한 제물이 드려지고 있음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송아지같은 불완전한 짐승의 피로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제물이 되셨고, 이 제물은 단 한번으로 영원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제는 예배드릴 때마다 짐승의 피를 흘려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고,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으니 제사의식이 필요없습니다. 예수께서 한번으로 영원한 효력이 있는 제물되셨으니 우리의 모든 예배에는 언제나 흠없는 완전한 제물이 드려집니다.

  이제 우리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기 위해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완전한 제물이 되셨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 예배드릴 때 나의 행위나 마음이 온전하여야 은혜 받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 가운데, 한 주간동안 나는 정말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화 한번도 안내고, 나쁜 소리 한 마디도 안하셨다는 분 있습니까? 그러면 예배에 은혜 못 받습니까?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제물 되심을 믿고 예배하면 은혜 받습니다.

13-15“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행위로 받지 않습니다. 행위로 받으면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아무런 대가없이 공짜로 받는 것이니까요! 은혜는 흠없는 제물 되신 예수를 온전히 믿을 때 거저 주어집니다. 부족해도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세요. 잘못한 일 있어도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세요! 못된 짓해도,‘나 같이 못된 것이 어떻게 예배드리러 가겠는가!’하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못되지 않아서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 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니 은혜가 임하고, 예배를 드렸으니 은혜가 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일천번 제사를 드려도, 온전한 제물이 없으면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처럼, 일천번 예배를 드려도 온전한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고백하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온전한 제물 되신다”고, 이 고백이 분명할 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여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쁜 짓 한 것 회개하고, 담배 끊고, 술 곤조 끊어집니다. 못되고 더러운 성질 변화됩니다. 인색한맘 깨어집니다. 불뚝 성질 죽습니다.

행실을 고쳐 은혜 받는 것아 아니라, 은혜 받아야 행실이 고쳐집니다.
(강 재 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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