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로운 세대를 향하여 (창 12:1-9)

  • 잡초 잡초
  • 199
  • 0

첨부 1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숫자가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하루 평균 30명이 자살을 한 것으로 집계가 되었는데 특별히 20대와 30대에서는 사망의 원인 가운데 1위가 바로 자살이었습니다. 병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사망 원인의 1위였다는 말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의 사망 원인 가운데 1위는 암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 가운데 사망 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었다는 말입니다.

한창 삶을 시작해야 할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끝장 낸 사람이 많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광성씨가 쓴 두 번째 서른 살이라는 책을 보면 인생은 어느 나이를 살더라도 다 새롭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대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스므살은 스므살 대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노년은 노년대로 그 삶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인생은 한 번을 살기에 모든 세대가 다 새로운 세대라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떤 사건에 시간이나 나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인간적으로 볼 때에 75세는 희망이 사라지는 나이임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 그 아버지 집에서 소망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출발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75세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표현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해서 보면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나이가 매우 많습니다. 100세도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시작을 설명하는 나이였습니다. 조카 롯이 떠나 간 사건은 분명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마지막 사건이 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생에게 새로운 출발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새로운 출발이요 새로운 삶입니다. 새 삶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인 갈대아우르를 떠나는 장면을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갔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라 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이 말씀을 따라가면 새로운 삶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출발이 되었던 사건은 항상 말씀을 좇아가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살아 갈 때는 결코 새로운 세대를 열 수 없습니다. 말씀은 이렇게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인생에게 새 것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의 삶을 반복의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삶은 반복의 삶입니다(전 1:9)『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 것도 새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낡아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다 새로운 것이며 항상 새로운 것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옥은 영원히 과거에 매여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자신의 과거에 붙잡혀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새 것이 없습니다. 영원히 반복이며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태리의 문호 단테가 쓴 신곡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지옥을 방문하게 되는데 지옥의 문패에는 이런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을 들어서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새로운 세대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묘사할 때마다 새 것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천국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부르는 노래를 새 노래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이름을 새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새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새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새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도 언제나 새로운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새로움이 담겨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은혜가 떨어지면 그 사람에게서 새로움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은혜를 받으면 새 사람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순종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서 새로운 출발점이 된 사건을 보면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이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서 지금까지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 아들을 바치는 일에도 순종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요구하셨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순종하는 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순종의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이적을 보면 순종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세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같이 잔치 자리에 있었어도 순종한 사람만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평생을 믿어도 순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새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잃어버리고 쫓겨난 것입니다. 그 삶은 수고와 고통이 반복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순종하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신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삶을 불순종의 삶으로 주님의 삶을 순종의 삶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서 처음 머물게 되는 장소에서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한 것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카 롯이 떠난 후에도 헤브론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내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예배를 통해서 새로운 세대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수가성 우물가에 여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인생이 새롭게 자기 인생을 시작해야 할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생이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이 되지 않는 인생에게 새로운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그 백성들이 죽어 갈 때에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므로 심판의 역사를 끝내고 용서와 치유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큰 실패는 예배에 실패한 것입니다. 창 15:18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후손이 400년 동안 종살이 하리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