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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섬기리이다 (창 4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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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를 보면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생애는 극적인 반전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소설과 같은 재미와 가장 아름다운 결론 그리고 다양한 배경등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사랑 받는 것과 미움받는 것에 대비가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 받는 일과 미움받는 일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한 자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으로 팔려 갔을 때 보디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가정 총무로 삼고 가정의 모든 일을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라고 했습니다. 여기 은혜를 입었다는 말 가운데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헨"이라는 단어인데 사랑스러운 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서는 감옥의 책임을 맡은 전옥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했습니다. 여기에 은혜를 입게 하시매 할 때 은혜라는 말도"헨" 이라는 말로 사랑스러운 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어도 사랑 받는 자리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비록 죄수의 몸으로 들어왔어도 그 자리에서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사랑스럽다는 말이냐 하면 에스더 5: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할 때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할 때 사랑스럽다는 말이 바로 "헨"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했을 때에 요셉을 향하여 너무도 사랑이 쏟아졌기 때무네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 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소식을 듣고서 비로소 생의 의욕을 찾고서 요셉을 찾아서 애굽까지 온 것입니다. 요셉과 그 아버지 야곱이 고센 땅에서 만나서 그 목을 어긋맞게 안고 얼마 동안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만난 후에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있으니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롭다는 것은 사랑 받아야 할 대상에게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요셉을 볼 때에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커서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그 속에 불타 올랐던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사랑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요셉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항상 똑똑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중심으로 사랑하고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은 지식이나 재주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고싶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에 실패자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안 됩니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창 35:22)"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고 했습니다. 르우벤은 사랑을 받아야 할 아버지에게 근심이 된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가장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고 아버지의 마음에 못을 밖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미움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일에 대해서 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움을 받는 일에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움을 받은 이유를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창 37:2에 요셉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였고 이 일로 인하여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형들의 과실이라고 했는데 과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 인데 나쁜, 사악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의 아주 좋지 않는 그야말로 사악한 모습을 아버지에게 일렀다는 말입니다. 여기 고하였다는 말은 고자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전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이 일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을 일이었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에 요셉은 형들의 사악한 잘못에 물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형들과는 달리 아버지에게 언제나 성실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잘못에 동조하지 않는 자를 미워하게 됩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동조하지 않으므로 겪게 되는 고난을 피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인한 고난을 받아서 안되지마는 자신이 의롭게 살려고 하는데서 오는 고난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꿈을 꾼 이후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두 번에 걸친 꿈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창 37:8에 형들이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했고 두 번째 꿈으로 인하여 그 형들은 시기하되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고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인하여 미움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과 말씀을 인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미움을 받은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상황과 반대의 상황으로 연상해 본다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한 통속이 되어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미움을 받아야 할 대상에게 미움을 받은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벧전 4:15-16)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요셉의 생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섬기는 것과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가르침은 섬기는 것과 섬김을 받는 것에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셉은 섬겨야 할 대상에 대해서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릴 때에도 아버지를 속이지 않았고 나중에 총리가 되었을 때 아버지를 모셔 오기 위해서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에게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리고 암나귀 열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이런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가정에서도 그는 주인에게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때문에 감옥에 들어온 술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준 후에 이 일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섬김의 삶은 하나님이 반드시 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 섬김의 삶 보다 복된 삶이 없습니다.

이유는 주님이 세상에서 섬김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는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서로 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 생활은 바로 서로 섬기는 생활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한 몸의 지체가 서로 섬기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셉을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를 하나님 나라에서 섬김을 받는 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분명히 섬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준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기를 낮추신 주님을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이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영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섬김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이제 그 형들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형들은 자신을 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섬김을 받는 자리에서도 오히려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요셉이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어떤 지위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섬기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섬기는 자들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교회에서 가장 부끄러운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섬김을 받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중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실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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