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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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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교 교과서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영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야말로 궁전처럼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사랑하는 자녀들과 그 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다 쏟아 부었는데도 사업은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으로 자기의 집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막 새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을 내놓으려고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으로 인하여 낙심할 자녀들을 생각할 때에 나쁜 집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앞으로 어지간한 집을 얻는다고 해도 자녀들이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어떤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집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과 같은 집이었습니다. 문도 없고 바닥도 먼지가 가득하고 어느 한 곳에도 앉을 만한 곳조차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런 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서글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이사 갈 우리 집을 내가 잘못 찾은 것 같구나 차를 타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 집이 자기 집이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면서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이 이것 비슷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이 집을 우리 집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번에 도착한 집은 조금 전의 집보다는 훨씬 나은 집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조금 전의 집을 생각하고 이 집이면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짐을 내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애들아 내가 또 우리 집을 잘못 찾은 것 같구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이번에는 걱정을 합니다. 혹시 먼저 본 그 집과 같으면 어찌할까를 생각하고 아빠 이 집에서 살면 안 될까요 했습니다. 아니다 우리 집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도착한 집은 두 번째 집보다 훨씬 더 좋은 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이 집이 진짜 우리집이 맞는거야 하고 좋아하면서 자기의 짐들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자기들의 좋은 집에서 바로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왔으면 그 집도 자기 집보다는 훨씬 못하기 때문에 불평을 했을 터인데 첫째 둘째 집을 보았기 때문에 세 번째 집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장 먼저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무엇을 가장 먼저 보느냐 하는 것은 다음에 보는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선을 보는 청년이 먼저 너무 아름다운 자매를 보게 되면 다음에는 어지간한 사람을 만나도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 좀 개성 있는 자매를 만난 사람은 다음에 어지간한 사람만 만나도 만족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무엇을 먼저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탄은 인생에게 세상을 먼저 보여 주려고 합니다. 세상을 먼저 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롯의 처와 같이 세상을 뒤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롯의 처는 소돔 성의 도시 문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먼저 보아야 그 사람이 세상을 보아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먼저 보아야 사람을 보아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먼저 보아야 자신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먼저 보아야 가족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보다 물질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보는 일에 실패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먼저 보면 안됩니다. 나 자신은 약합니다. 죄에 약하고 유혹과 시험에 약한 자신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나를 바라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보면 두 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는 낙심하기 쉽고 다음은 교만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의 시각이 자기 밖에 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을 보면 예수를 믿다가도 낙심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을 보다가 시험을 받게 됩니다. 교회생활에서 주님을 먼저 보지 못하고 사람을 먼저 보다가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은 임금의 명령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보았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먼저 보아도 안 됩니다. 베드로가 파도를 먼저 보면 파도에 빠져 들어가지마는 주님을 먼저 볼 때에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홍해 바다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의 차이점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모세는 하나님을 먼저 보았기에 홍해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이 낙심에 빠지는 것은 사람을 보면 그 원리가 항상 상황이 그 마음 속에 주인이 되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가나안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 정탐군은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 환경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주님을 본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먼저 보면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 주님을 먼저 보면 베들레헴 마구간에 누우신 주님이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태어나면서 먼 애굽으로 피신을 가신 주님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본다면 우리는 고난까지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집이 작아서 불평이 나올 때도 주님을 바라보면 산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들려 질 것입니다. 이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집에 살던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괴롭고 힘들다면 제자에게 배신당하신 주님을 먼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목회자가 사람 때문에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이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자에게 팔려서 고난을 받으신 모습을 생각할 때에 자신은 그래도 돈에 팔리지는 않았다면서 감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갈등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오셔서 목수로 사신 주님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알아주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목수로 일을 했고 몸으로 일을 하신 분이십니다. 나사렛에서 땀을 흘리시며 일하시던 주님을 깊이 묵상한다면 일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감사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용서가 되지 않아서 힘든 상대가 있다면 이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말고의 귀를 붙여주시면서 사람이 검을 사용하면 검으로 망한다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가 안 되면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은 경험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면 이 때에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 번은 사마리아 동리에 갔다가 유대 사람이라는 이유로 주님이 내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자 중에 하늘로 불을 내려서 이런 동리를 멸하지고 말했습니다. 이 때도 예수님은 책망하시고 말없이 다른 동리로 발길을 돌리신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작게는 한 가정에서부터 회사나 여러 관계에서 신분으로 인한 상처가 많습니다. 남편에게 상처받는 아내들도 있고 자식에게 상처받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친히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온전한 사람이 되어 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새 사람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을 예수님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놋뱀을 처다 보면 살 수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놋뱀 대신에 처다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본다면 그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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