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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살리는 것은 영이다 (요 6: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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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찰스 헨리]라는 경영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 학술원장을 지낸 분이며 영국 정부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아주 능통한 사람입니다.
찰스 헨리 지음 ‘배고픔에서 나오는 정신’
그가 97년에 ‘배고픔에서 나오는 정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그는 여기서 이 ‘정신’을 다른 말로 ‘믿음’, 영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본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가치를 성공, 돈, 명예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추구하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평생에 아버지가 큰 욕심이 없이 묵묵히 어려운 생활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가 혼자 고생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이에 임종을 지키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향해 성경말씀으로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임종 후 찾아오는 많은 조문객을 맞으면서 그들이 고인을 애도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는 인생을 살면서 성공이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삶과 삶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 중요합니까?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중요합니까?
무슨 정책이니 방법이니, 차원이니, ....이러한 것이 중요합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위하여 이것을 찾고 저것을 찾습니다.
먹는 것을 해결하면 입는 것을 해결하면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면 다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봅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방법이 없어서 세상이 이렇게 어둡습니까?
정책이 없어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문제는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살리는 힘이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1.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이라는 것은 영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곧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 그분 안에서 되어지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는 모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생명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한적한 곳에 이르시고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맛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면 가난의 문제, 베고픔의 문제, 로마로부터 압제의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저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다가 주님께서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신 줄 알고 그리고 쫓아 왔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저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썩는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곧 예수님 당신이 그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양식을 얻는 것, 곧 믿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살리는 것이 영이라고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안전히 거하고, 세상을 잘 살게 변화시키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저들에게 ‘너희를 진정으로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들을 살리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인간의 먹고 마시는 것, 방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왜 행하셨습니까?
벳세다 언덕에서 종일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 무리들이 저녁이 되어 시장해 하실 것임을 아시고, 일용할 양식이 필요함을 아시고 저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영의 약식만 아니라 육의 양식까지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높은 시각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구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현재적 가치, 세상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삶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2. 이것을 알지 못할 때 떠나게 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왜 맨날 영이니, 하나님의 가치니, 하나님 나라를 말하느냐? 우리에게 실제적인 것을 달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실망하고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내 중심입니다
내 생각과 같아야 하고, 내게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행여 내 귀에 거슬리는 말, 내 구미에 맞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 내 의도,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고 의문하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마치 오늘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같이 말입니다.
포기하지는 않아도 끝없는 의문과 불신 가운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름대로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고 의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닙니다.
주님의 생각,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것을 구하고 찾고 얻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을 알 때 주님을 온전히 따르게 됩니다.
그것을 따라갈 때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천국을 얻게 됩니다.

3.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영적인 것을 택하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완전한 이해가 있기 때문인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 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68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제자들 가운데서도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따릅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고 그리고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한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60절에 보면 제자 중에 여럿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듣고 이해할 수 있겠느냐”(60절)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보세요. 제자들이 이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삶과 그 분의 일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따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내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그 분과 함께 했기에 그분으로 인해 이제 나는 믿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 아름다운 삶, 더 나은 삶, 더 높은 차원의 삶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즐거움은 지혜보다 똑똑합니다.’라는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터]라는 아버지가, [피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난히 말씀이 없는 분이어서 옛날 예기나 어린 시절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버지는 문득 그를 부르시더니 당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비지가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한참을 거서로 말없이 걷다가 증조할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으셨습니다.
“얘야,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 참 기쁜 일이다. 이제 글씨도 읽을 줄 아니까 이 말발굽 자국에 무엇이 쓰여 져 있는지 살펴보고 할아버지에게 말해 줄 수 있겠니?”
“할아버지, 말발굽 자리에는 글씨가 없어요.”
“얘야, 그 안에는 분명히 무어라고 글이 씌어져 있단다. 너는 그것을 읽는 법도 반드시 알아야 한단다.”
“전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네가 만일 좀 더 자세히 본다면 너는 이 말발굽 자국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자세히 보아라. 이 말발굽에 박혀 있는 못이 이미 세 개나 떨어 졌단다. 만약이 말이 내일도 그냥 이대로 읍내로 들어간다면 돌아올 때는 분명 말발굽이 떨어져서 발에 상처를 입고 돌아올 것이다. 알겠지? 어떤 것은 글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단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런 것을 읽어내는 눈이 반드시 필요하단다.”

글을 읽게 되면 글이 기록되지 않은 사물을 보고도 우리는 그 사물이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설사 글을 모른다 해도 경험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되면, 사물을 통해 언어를 들을 수 있고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작은 믿음이 있게 되면,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깨닫게 되고 따르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완전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진리이시기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을 얻고, 그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하나님의 일을 보고, 그 분의 말씀과 진리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가 점점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더 큰 경험과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능력의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김포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오늘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
이러한 믿음 가운데 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의 영이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물질과 육신과 일, 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사모하며 이것을 추구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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