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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교회 순례(6): '빌라델비아 교회'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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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 「열린 문을 가진 교회」

<'빌라델비아.' 형제 사랑의 도시>
오늘 우리는 7교회 중에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 볼 차례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말은 '형제 사랑'(brotherly love)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형제 사랑의 도시가 빌라델비아였던 것입니다.

'형제 사랑'하면 눈물겨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1992년에 미국의 유명한 일간지 『USA Today』기자들이
소말리아의 기근 상태를 취재하기 위하여 그 곳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기자들은 여러 날 동안 굶은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기자 한 사람이 자기가 들고 있던 '자몽'(grapefruit)이란 과일을
소년에게 주었지만 힘이 없어서 지탱하지 못했습니다.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 얼마 안 되는
과일 한 개를 들 수 있는 여력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기자는 자몽 한 개를 반으로 잘라서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자몽을 자기 입에 대지 않고 자기 마을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해서 몰래 소년의 뒤를 쫓아 가보기로 했습니다.
소년이 돌아간,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집안에는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이는
또 한 명의 소년이 누워있었습니다.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자몽 반 개를 힘겹게 들고 온 소년은 자기 동생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소년은 이내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물어뜯어 씹기 시작하더니만
동생의 입을 벌려 그 과일을 먹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기진맥진해서 다 죽어 가는 형편이었기에 자기 스스로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형이 동생의 턱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자기가 씹은 과일 조각을
입에서 입을 통해 먹여주어야지만 간신히 삼킬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나중에 알아보니 이 소년은 2주 동안이나 자기 동생을 위해서 이렇게 해왔습니다.
몇 일이 지난 다음 그 소년은 결국 영양실조로 죽고 말았지만 동생은 살아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요 15: 13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진정한 '형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칭찬의 전범이 되었던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책망은 하나도 받지 않은 교회는 두 교회,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
주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셨던 교회였습니다.
한 마디로 '칭찬받는 교회'(ecclesia fidelitas)의 전범이었던 것이지요.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라오디게아로 가는 도상에 서 있는 도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빌라델비아는 동방으로 가는 관문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 인천이 관문 도시로서 모든 문화 문명 물류가 이곳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유통되듯이
동방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빌라델비아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델비아는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난, 개방적인 관문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 중에 유독 '문'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빌라델비아가 국제적인 관문 도시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빌라델비아 하면 큰 지진이 일어난 지역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주후 17 년경에 이 지역이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빌라델비아와 사데를 비롯한 인근의 10개 도시들이 붕괴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도 여진(餘震)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빌라델비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교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지진도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
빌라델비아 사람들의 큰 꿈이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기둥'이라는 말이 출현하는 것도 내진(耐震)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빌라델비아 사람들의 특수한 형편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들에 의해서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린 문을 가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어떤 점을 주님은 높이 평가하셨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의 전범이 되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제일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될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교회라는 뜻이지요.

본문 8절 말씀을 보세요.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 주님께서 왜 빌라델비아 교회를 귀하게 여기셨는가 하는 이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활짝 열어 두셨는데 아무도 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이 열려진 교회,'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축복 중에 이보다 더 큰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항상 문이 열려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구주를 영접할 수 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아닙니까? 

문이 닫혀져 있는 교회, 이 교회는 가장 비참한 교회일 것입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가 놓아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교회, 그런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마치 웅덩이에 고인 물에는 어떤 물고기도 살 수 없듯이 문이 꽁꽁 잠겨져 있어서
세상 밖에 사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면 그 교회는 절망적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을 가졌는데 아무도 그 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성령이 충만해서 복음의 능력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열린 문과 관련해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교회마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본문 7절 말씀을 보세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

여기서 주님은 먼저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죄가 없으시며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주님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사야 22장에 보면 그 당시 왕의 국고를 맡았던 셉나가 불의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정직한 사람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열쇠를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 22: 20-2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의 열쇠'라는 표현은 의로운 종 엘리아김과 관련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고 의로운 종 엘리아김에게 이스라엘 왕의 국고를 맡아
관리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주셨습니다. 
엘리아김이 문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었고, 문을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었습니다.

엘리아김은 장차 나타나실 예수님의 예표(豫表)였습니다.
다윗의 보좌 위에 앉으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천국과 지옥의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열어둔 천국문을 닫을 수 없으며,
아무도 예수님이 닫아둔 천국문을 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셨다는 말씀이지요!

바로 이런 주님, 거룩하사 한 점 죄가 없으시며 말씀하신 것은
어느 것 하나 어김없이 지키시는 주님,
천상천하의 모든 주권을 한 손에 쥐고 계시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문 하나를 열어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은 틀림없는 문이며, 아무도 주님의 허락 없이
자기 맘대로 닫을 수 없는 언제 열려 있는 문인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책임져주시는 열린 문이라는 것이지요!

<빌라델비아 교회가 열린 문을 가진 까닭은?>
자,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열린 문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8절 후반부를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힘은 적으나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며,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힘이 적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교인 숫자나 예산이나 건물이 빈약했다는 말이 아닐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적으로 볼 때 결코 능력있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교인 숫자가 많은 대형교회도 아니었고, 예산이 풍부한 교회도 아니었고, 
교인들 중에 유명한 사람 높은 권세 가진 사람 부유한 사람도 별로 없는 빈약한 교회였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에 있던 사람들이 교인이 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믿음에 있어서는 무능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작고 가난했지만 내적인 믿음에 있어서는 크고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황제숭배의 위협 앞에 숱한 교회들이 무너져갈 때 빌라델비아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가지가지 이단 사상에 많은 교인들이 무릎을 꿇었을 때,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믿음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세속화의 거센 물결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말씀만 붙들고 다른 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도록 강요하는, 무서운 피바람이 불어 닥쳐와도
주님의 이름을 목숨 다하도록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교회였던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빌라델비아 교회가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된 교회였든지,
본문 9절 말씀에 보면 가장 하나님 잘 믿는다는 교만에 빠진
자칭 유대인이라는 사람들까지도 빌라델비아 교회에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람들까지도 들어오는 열린 문의 교회가 된다는 약속이지요!

여러분, 오늘 우리 내리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열린 문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교인 수에도 있지 않고, 풍부한 예산에도 있지 않고,
화려한 건물에도 있지 않고, 교인들의 사회적 신분에도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세속적인 자랑입니다.
세상의 허탄한 자랑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내리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이름에 생명을 거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10절 말씀을 보면 인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기 때문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주님의 인내의 말씀"이라는 표현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인내입니다.
고전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쭉 설명하는데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랑의 제일 가는 속성이 '인내'에 있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한 것마다 척척 다 이루어지면 그 하나님은
동전만 넣으면 마실 것 먹을 것을 척척 내놓는 자동판매기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성품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옛사람, 오래된 성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기도는 척척 이루어진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연단하시기 원합니다.
정금과도같이 단련하시기를 원합니다. 
연단받는 과정 중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장차 온 세상에 불같은 시험이 닥칠 때
빌라델비아 교회를 반드시 지켜주시마 약속하십니다.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빌라델비아 교회만큼은 눈동자같이 지키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우리 내리교회도 인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인격이나 나의 중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만 변하길 바라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인간성이 변하고 우리의 인격 중심이 새로워질 때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 주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성전 기둥이 되기를 염원하며>
이제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부탁과 약속을 겸하심으로서 결론을 맺습니다.
11-12절 말씀을 봅시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이 위에 기록하리라."

첫째로,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성경은 '의의 면류관'(딤후 4: 8), '생명의 면류관'(약 1: 12),
'영광의 면류관'(벧전 5: 4)을 약속합니다.
모두 장차 성도가 얻게 될 영광과 축복을 상징하는 표현들이지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어떻게 해야지만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미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킨 것과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내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교회라는 면류관을 빼앗기기 말아야 합니다.
세상 자랑, 인간적인 것, 세속적인 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리교회는 힘있는 교회가 되고자, 부흥하는 교회가 되고자 세상적인 방식을 취해서 안됩니다.
오직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신 주님의 말씀을 힘써 듣고 지키는 교회,
세상 자랑이 아닌 주님의 이름만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지 못하도록,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유혹과 장애물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이제 어떤 축복이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데 다시는 성전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는 축복입니다.
"성전의 기둥이 된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빌라델비아와 같이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은 집을 튼튼하게 지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내진성(耐震性)이 강한 기둥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기둥만 튼실하면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기둥같은 일꾼들이 있으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런 기둥같은 일꾼들은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세상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해도 절대로 성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우리 내리 성전의 기둥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기둥에는 세 가지 이름이 기록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새로운 도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 기둥 위에 새기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건물을 완공했을 때 집주인의 이름과 건물이 지어진 장소 이름과
시공업체의 이름을 기둥이나 머릿돌에 새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영광스러운 이름을 우리의 기둥 위에 새겨주신다는 약속이지요.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한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주 예수님 앞에서
우리를 인정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구원과 영생 얻었음을 확실히 보증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앞으로 우리 내리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주님의 이름을 끝까지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서
항상 전도의 문이 열려진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여는 문이 아니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열어 놓으시는 문이 되어서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생명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기둥 위에 세상의 이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천국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 흥 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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