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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실된 일꾼 두기고 (엡 6: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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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다른 날보다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나실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인 체육대회로 모처럼 운동장에서 녹슬었던 몸을 움직이고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영적 신체적으로 재충전 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력은 영력입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여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충성스럽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옛날 희랍에 전제국가의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24시간 주색과 호색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쾌락과 행복을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 큰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일 다 해보았지만, 만족함이 사라져 버리고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가 다 동원되었지만, 기쁨은커녕 불만의 갈증은 날로 더 가중 되었습니다. 왕은 자기를 실망시킨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소녀가 궁궐에 찾아가 왕께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을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왕은 환영하며 요청했습니다. 그때 이 소녀는 “왕은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왕은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 일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정한 행복을 원하신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행복하게 해 보십시오. 그러고 나면 왕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왕은 숙연해지고 반성을 하며 생각하더니 “딸아! 그대 말이 옳도다. 너의 말에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크게 반성한 왕은 그 소녀에게 상을 줬으며, 왕은 그 이후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됐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행복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간구한 후에, 충성된 일군인 두기고를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보내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21절 하반절에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두기고는 어떤 일꾼입니까?

첫째, 사랑을 받는 형제입니다.
21절에 보면 두기고는 바울뿐만 아니라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형제였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일꾼상입니다. 두기고는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얻었는데 그가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데에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지는 않지만,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두기고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즉 두기고가 있음으로 해서 그 공동체가 훈훈해지고 좋은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도 내가 있음으로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바울에게 있어서 두기고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골 4:7에 보면, 바울이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두기고를 소개할 때에도 역시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를 소개할 때마다 “사랑받는 형제”라고 소개했을까요?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동안 거의 10년 가까이를 바울의 뒷바라지를 했던 사람이 두기고 였다고 합니다.

가장 젊고, 능력 있고 영향력 있을 때의 사도가 아닌, 늙고 병들고 죄수의 몸이 되어서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해 10년을 하루같이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힘들어 할 때 자그마한 사랑이라도 베풀어주면 그건 평생 잊지 못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먼저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언제부터인지 “발렌타인 데이”니, “로즈데이”니 하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날들이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5월 14일 날 저녁에 중학생 아들이 사용처를 밝히지 않은 채 용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날 그 돈으로 장미를 사서 또래 여학생에게 전해주고 오면서 엄마에게도 하나 가져 왔는데 또래 여자아이에게 좋은것을전해주고 엄마에게는  싸구려를 사왔답니다. 어린 줄만 알았던 중학생 아들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에 눈이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어떤 남자 분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아들이 엄마에게 엄청나게 매 맞고 있더랍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엄마의 목걸이를 말없이 가져다가 여자 친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느낌을 받으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두기고가 사랑을 받는 형제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속죄의 사랑을 받은 두기고를 가리킵니다. 우리 역시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느끼셨습니다. 먼저 선물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시어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사랑, 그 고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내 형제와 이웃에게 먼저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충만한 교회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사랑이 너무 메말랐다고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더 강할 때에는 내 주변에 사랑이 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사랑에 인색하지 않았나 살펴보면서 먼저 사랑하는 자로서 사랑을 받은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두기고는 진실한 일꾼입니다.
두기고는 먼저 자신에게 진실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은다고 할지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두기고의 행적을 보면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 바울과 동행하면서 선교에 힘썼던 사람입니다.(행20:14) 그리고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바울의 사정을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에 알려주고,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골4:7, 엡6:21, 딤후4:12) 또한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바울의 편지를 전달해주고 바울에 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진실한 일꾼입니다. 사도로부터 신임을 받은 일꾼입니다. 그렇습니다. 일꾼이라고 다 똑같은 일꾼이 아닙니다. 요10장 말씀에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로 비유했는데 목자와 양의 관계는 사랑과 신뢰와 순종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꾼은 믿지 못할 일꾼, 미심쩍은 일꾼, 탐탁치 않은 일꾼 등 걱정스러운 일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기고는 사도로부터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의지할 수 있는 진실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기고와 같이 무엇이나 맡길 수 있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랍비가 자기 집 대문 담벼락에 등을 비벼대는 거지를 보고 “왜 남의 담벼락에 등을 비벼대느뇨?”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거지가 하는 말이 옷 속에 이가 끓어 등이 가려워서 담에 대고 등을 긁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그 거지가 측은하게 생각되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서는 목욕을 시켜 새옷으로 갈아 입혀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음식을 잘 차려주고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내보낼 때에는 용돈까지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는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녀 거지 한 쌍이 또 담벼락에 등을 비벼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랍비가 그들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 고 물었더니 두 거지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부부인데 등이 가려워서 담벼락에 등을 비벼대서 긁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랍비가 화가 나서 거지 부부에게 “멀쩡한 사람들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오히려 랍비에게 항의했습니다. “엊그제 거지에게는 집으로 불러들여 목욕도 시켜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고 먹을 것을 주고 용돈까지 주었다던데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푸대접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랍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엊그제 그 거지는 혼자이기 때문에 등을 긁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도와 준 것일 뿐이지만, 당신들은 부부이니 서로 긁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쫓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일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미루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담당하는 것입니다. (김  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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