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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예수 그리스도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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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소리 없이 깊어가는 9월 넷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삶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교회창립22주년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예배를 마치면 운동장에서 전교인 체육대회가 열립니다. 22년전 지하18평에서 교인 한명도 없이  시작한 작은 겨자씨와 같은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나무로 성장하였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볼 때 사무엘 선지자가 대적 블레셋을 친 후에 기념비를 세워 “에벤에셀”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라고 고백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은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등산을 즐겨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딸에게 등산을 함께 갈 것을 제의했고, 딸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며 아버지와 딸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낡고 좁은 다리에 이르자 아버지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얘야, 다리가 무척 낡았구나.  내 손을 꼭 잡아라." 그러자 딸이 말했습니다. "아니예요, 아빠, 만일 제가 아빠의 손을 잡으면 손을 놓치고 떨어질지도 몰라요. 그러니 아빠가 제 손을 잡아주세요. 아빠는 결코 제 손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딸의 손을 끝까지 강하게 잡아 주었고 그들은 무사히 계곡을 건넜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한눈팔며 딴 생각을 하다가 하나님의 손을 놓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회창립주일을 맞이하면서 또 한 가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부족한 종을 믿어주고 순종하며  따라와준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프란시스 사제단에 한 청년이 지원을 했습니다. 사제단은 이 청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거쳐서 이 청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도자인 수도사가 청년에게 말합니다. “저기 심겨져 있는 배추를 거꾸로 다시 심으세요.”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스승이 하는 말에 대해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려는 사제단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영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어제도 오늘도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묵묵히 순종과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에게 말로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읽어드린 말씀을 가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몸과 마음과 삶을 드린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 말씀에 나오는 베드로를 보면 그 마음속에 예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이 사람은 40 여년을 앉은뱅이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은이나 금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앉은뱅이는 걷기도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와 베드로를 중심으로 모일 때에 이 일을 행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도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예비하신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려면
첫째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그의 마음이 배와 그물로 가득했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는 어부였기 때문에 늘 고기잡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실패와 좌절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도 하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낙심해서 갈릴리 마을로 돌아가 다시 배와 그물을  손에 잡고 고기를 잡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여 나아갔기 때문에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한 이라크인이 미국인 신학대학 교수의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그는 기차사고로 다리의 일부가 잘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그의 친구들과 신학대학 교수의 지인들이 함께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신학대학 교수는 사무실에 들어와 기도를 마친 후에 이라크인에게 손을 얹고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리야 길어질 찌어다! 다리야 길어질 찌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리야 길어질 찌어다!“
그 교수는 그렇게 계속 5분이 넘도록 땀이 범벅이 된 채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리는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주의의 사람들은 설혹 다리가 길어지지 않더라도 교수가 마음에 낙담하지 않도록 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는 낙담하지 않고 이라크인에게 손을 내밀어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독생자 예수는 나의 구주가 되시며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는 그에게 다가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다리야 길어 질찌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길어져라!”

그 순간 믿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다리가  30초도 안되는 순간에 쑥하고 길어진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절뚝거리던 이라크인은 꼿꼿이 걷게 되었고,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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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월간교회성장의 성경공부교재에 실린 실화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기적이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적인 순간에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을 믿고 나아가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풀어 주시며 질병에서 고쳐주시며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50 여년 전에 이노센트4세라고 하는 교황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황이 로마교황청 발코니에 서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마침 성당문으로 보물을 가득담은 자루들이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교황이 말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경, 이제는 교회가 ‘은과 금은 없어도’ 라고 말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교회가 예전에 비해서 그만큼 물질적으로 풍요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아퀴나스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던 때도 다 지나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세상에 예수님의 이름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스로 주일 예배나 드리고, 헌금 얼마를 드리고, 교인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성도의 교제를 갖는다고 해서 교인이 되고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득 차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에 길을 깨우쳐주고 절망에 빠져 좌절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어서 소망과 희망 가운데 삶을 살아가도록 일으켜 세우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본질에 충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들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좋은 것들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워버릴 것들은 비워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 있는 능치 못함이 없는 능력으로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 앉은뱅이와 같이 여러 가지 염려와 낙심 속에서 절망하며 주저앉아 있는 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장 1절 말씀은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타났던 능력은 규칙적인 기도생활 속에서 얻게 된 결과입니다.

베트남 전쟁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전투 중에 미군병사가 총에 맞아서 부상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그 병사를 구해낼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한 병사가 시계를 쳐다보더니 부상당한 병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이 깜짝 놀랍니다. 지휘관은 순간 두 명의 병사를 잃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상당한 병사를 동료병사가 구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명이 모두 살았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지휘관이 총에 맞은 병사를 구출해온 동료병사를 불러서 묻습니다. “자네는  왜 전투 중에 시계를 보고서 그 병사에게 달려갔는가?” 그러자 이 병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제가 전쟁터에 나가려고 할 때에 저희 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위해서 매일 같이 12시가 되면 정기적으로 기도할테니 안심하고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시계를 보았을 때가 바로 12시 였습니다” 그 병사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어머니를 믿고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동료를 구하러 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규칙적인 기도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주의 손길이 그를 돕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들이 능력 밖의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만한 실력이나 재력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누구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오던 사람을 일으킬만한 어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요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는 어부출신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는데 그는 잤습니다. 성격도 아주 급하고 다혈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앉은뱅이를 고칠 수 있었습니까?

그 해답은 본문 3장 1절에 있습니다.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즉, 그는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경건한 유대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과거의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없었지만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에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 후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탁월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마다 중심에 서있는 사도가 되었고 교회의 귀중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어느 상가 건물에 있는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교회는 비록 상가 건물에 있는 개척교회이지만 꾸준히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상가 건물에 바로 옆 건물에 나이트클럽이 들어섰습니다. 보기에도 민망했지만 교회적으로도 타격이 컸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떠드는 소리 때문에 생각이 흐트러져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저녁예배를 마치고 나면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성경책을 들었음에도 호객행위를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성도들을 모아놓고 40일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그 나이트 클럽을 좇아내 주시든지 아니면 아예 불이 나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40일 작정기도가 시작된지 40일째 되는 날 전기의 누전으로 나이트 클럽이 완전히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나이트 클럽 사장은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이유인즉 교인들이 작정기도를 했기 때문에 불이 난 것이니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나이트 클럽 사장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교인들이 기도를 해서 나이트 클럽에 불이 났다고 생각을 생각합니까?” “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불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판사가 다음에는 교인대표인 장로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교회의 교인들이 기도했기 때문에 불이 났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뇨!,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단지 기도한다고 불이 납니까?”

판사가 판결을 내립니다. 나이트클럽 사장은 믿음이 있고, 교인들은 믿음이 없음. 그래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이트클럽 내부수리비를 다 물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정하여 드리는 작정기도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고전 10장 31절 말씀에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고, 시험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예비하여 주신다고 했는데,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고양이에게 좇기다가 코너에 몰린 쥐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피할 길이 없이 코너에 몰렸습니다. 고양이 앞에서 공포를 느끼며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너에 몰린 생쥐는 교회지붕에 올라갔다가 예배시간에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려울 땐 기도하라고 하셨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양해를 얻어 잠시 기도시간을 갖고 기도를 드리는데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으니 귀 좀 대보라고 했습니다. 생쥐로부터 한 마디를 들은 고양이는 사시나무 떨 듯이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쳤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가 바로 “ 고양이야 네가 나를 잡아먹든지 안잡아 먹든지는 네 자유야 그런데 나 조금 전에 쥐약을 먹었거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위기의 순간에도 평온함과 침착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참 멋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는 일이 있을 때마다 회막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교회로 갔다는 말이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루에 세 번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마다 갔으니 얼마나 많이 갔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투정을 많이 부립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밷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출애굽했으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실 텐데, 홍해가 앞에 놓이면 우리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한다고 하고, 물이 없으면 우리를 목말라 죽게 하려고 한다고 야단입니다. 성경에 모두 기록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사건건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럴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생활이 모든 난관을 이기고 훌륭한 지도자로서 쓰임 받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줄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문제만 주시지 않고 아울러 해답도 주십니다. 정기적인 기도생활을 통하여 기적을 이루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변화되는 것이며, 가장 큰 기적은 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세상일로 지치고 낙심하고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서 쓰임 받는 복 있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 명 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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