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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날을 기대하는 자들에게 (벧전 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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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명절이라  모처럼 오후 두 시에 저녁 예배를 대신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시면서 여러분의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예배를 마치면 어디로 가야지? 무엇을 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에배할지니라”고 했는데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졸업반 학생들이 다음 날 설교 시험을 보기 위해 기숙사에서 밤을 새워 설교준비에 골몰하였습니다. 다음날 한 학생이 실교시험 시간에 그냥 성경을 들고 강단에 올랐는데 앞이 캄캄하고 할 말이 없어서 회중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슨 말씀을 전할는지 아십니까?” 회중은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나도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모르니깐요”라고 말하고는 강단에서 내려갔습니다.

설교학 교수는 다음날 그 학생에게 다시 설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학생이 밤이 깊도록 설교문을 써보려고 했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도 강단에 섰으나 앞이 캄캄할 뿐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또 다시 “여러분, 내가 무슨 말씀을 전할지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회중은 ‘어제와 같이 오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겠지’ 라고 기대를 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알았으면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하며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교수는 화가 나서 다시 다음 날 설교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교문을 작성하지 못하고 단 위에 선 학생은 똑같이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슨 말씀을 전할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일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고, 일부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알고 계신 분이 모르는 분들에게 가르쳐 주시면 되겠습니다”하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신학생이 후에 목회를 잘 했을까요? 모르시면 알고 계시는 분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읽어드린 말씀을 가지고 ‘좋은 날을 기대하는 자들에게’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날 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은 시편 34:12-16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가 이야기하는 좋은 날이란 장수하여 복 받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악에서 금해야 하고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째, 혀를 악에서 금해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세치 혀가 언제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혀를 잘못 놀리면 좋은 날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혀는 작은 지체로 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에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3:5-6)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실수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수가 많아도 말에만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 한마디를 하면 오늘 씨를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다른 일을 하여도 밭에서는 씨가 싹이 나고 자라는 것처럼, 오늘 내가 한마디 하고나면 나도 모르게 씨가 되어 자라나는 것입니다.

수도사가 수도하면서 10년 침묵을 지키다가 한마디 하고, 또 10년을 수도하여야 하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한 수도사가 10년 수도를 하고 한마디하고 또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수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밥맛이 없어요.” 그리고 또 10년을 수도하고는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대가 너무 딱딱해요.” 그리고 또 10년을 수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도를 못하겠어요.” 그랬더니 원장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 수도사는 결국 수도를 포기하고 수도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기대하는 자는 긍정적이고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악한 말을 금해야 합니다.

일산에서 어느 고등학생이 시내버스에서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데 날씨는 춥고 시간은 급하고 그래서 발로 앞좌석을 톡톡 차면서 운전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똥차 언제 가요?” 그랬더니 운전기사가 씩 웃으면서 “똥이 차야 가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언어는 나의 인격이요, 내 삶의 평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 째,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악에서 돌아서서 선을 행하는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36에 보면 베드로가 어느 날 욥바에 갔을 때 다비다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행에 모범적이며 평생 남을 돕는 일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욥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를 죽은 다비다가 있는 그 가정으로 초대했습니다. 평소 도움을 받은 동네 과부들이 다 모여 있었는데, 다비다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향해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다비다가 드디어 살아났습니다. 다비다는 선을 행하고 마지막에 좋은 날을 보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외과 의사 차남수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88세로 장수하다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 분의 간증이 있습니다. 6.25때 공산당들이 몰려와서 소위 부르조아들을 산에서 붙들어놓고 죽이려 할 때 동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의사는 우리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편입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악에서 돌이켜서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이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사람,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아는 사람이, 남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이 겸손히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기대하는 자는 혀를 악에서 금해야 합니다. 말로써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입은 자임을 기억하면서 선을 행하므로 좋은 날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여러분 모두 위에 이 모든 것들을 감당 할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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