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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드레날린 중독증에서 벗어나 (마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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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사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엘리스를 이끄는 하얀 토끼가 등장합니다. 이 하얀 토끼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늦었어, 늦었어, 아주 중요한 일인데 늦어버렸어”라고 중얼거립니다. 이 서두르는 토끼는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표상입니다. 전형적인 도시인 샐러리맨의 풍자로 그려졌습니다. 이런 증세를 아드레날린 중독증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열병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을 찾으신 것은 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중을 들어주어야 할 여인의 형편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서로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예수님은 미안해하면서 그 집을 나와야 합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둔한 사람입니다. 장모가 편치 않은데도 예수님을 집에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문제를 기도와 능력으로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 손을 만지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즉시로 나아 그녀는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어나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병을 간단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손을 만져주었는데 나았습니다. 손을 만진 것은 잡아서 일으키는 동작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꾸짖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꾸짖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귀신을 내쫓을 때와 병을 고치실 때입니다. 특히 귀신으로 인한 병은 꾸짖을 때 효과적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이 심할 때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풍랑은 인격은 아니지만 꾸짖었을 때 순복했습니다. 이는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자연을 순복시킬 권능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열병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때 열병이 떠나고 나았습니다.

열병이란 정상 체온보다 높은 열에 시달리는 병입니다. 몸에 열이 나는 것은 몸에 생긴 문제를 열로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몸에 염증이 있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열이 납니다. 그런데 이 열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지만 우리 몸도 망가집니다. 그래서 고열이 유지되면 고막이 녹기도 하고, 기관이 파괴되거나 뇌 세포가 죽기도 합니다.

체온이 40 도를 넘으면 위험합니다. 40도는 몸속의 단백질이 변형을 일으키는 온도이기 때문입니다. 41.5 도를 넘기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목욕탕에 가면 사우나 실이 있습니다. 밖에 사우나 실 온도를 보여주는 디지털 온도계가 있었습니다. 섭씨 100 도가 넘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땀을 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 같아선 물이 끓는 온도인데 그 안에서 사람이 견딘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땀이 나면서 체온을 지켜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감기에 걸려도 체온이 올라갑니다. 모기가 옮기는 병들이 거의 열병입니다. 열병의 종류는 너무 많습니다. 열병은 체온을 유지하려는 반응이지만 다스려주어야 합니다. 열병을 고치려면 열과 함께 생긴 다른 증세들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병에 걸리면 일단 체온에 문제가 생깁니다. 베드로 장모가 어떤 이유로 열병이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랑도 심하면 열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병에 걸리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지남철에 끌려가듯이 상황에 자신을 던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것이 불륜이어도 거침없이 진도가 나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 사회도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앓고 있는 열병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부동산 투기 열병이 있습니다. 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이 작은 땅에서 일어난 투기 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또 조기교육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뛰어놀 어린아이들이 학원에 갇혀서 여러 가지 재주를 배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북한에 아리랑 축전이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어린이들이 집단 체조를 연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공연을 직접 본 목사님이 혀를 차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린 것들을 꼭두각시처럼 훈련시킨 모습이 너무 서글펐다는 겁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경쟁 속에서 크는 우리 남쪽 아이들도 불쌍합니다. 북한 아이들 교육보다 더 나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연 속에서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 다니며 커야 할 나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는 그 밖에도 많은 열병들이 있습니다. 향락 퇴폐 문화도 해결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집창촌을 폐쇄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음성적으로 숨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방탕한 문화의 열병을 어찌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의 보신문화도 문제입니다. 해외에서 정력에 좋다는 야생동물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 고객이 한국인들이라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중독이라는 위기의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안방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정서발달을 해치고 있습니다.

오늘 열병을 이야기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아드레날린 중독증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 이름입니다. 이 호르몬은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줍니다. 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심장이나 혈관의 수축력을 높입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은 긴급한 힘을 냅니다. 동공이 확대되고 주변 상황에 긴장합니다. 그리고 인슐린과 작용을 하여 혈당량을 조절해 줍니다.

예를 들면 사슴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가 맹수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면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그러면 이 긴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장과 근육과 눈동자는 비상사태에 들어갑니다. 사슴은 긴장 속에서 쏜살같이 도망을 칩니다. 아무리 발이 빠른 맹수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방영된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도 아드레날린이 만든 괴물입니다. 감마선에 노출된 주인공 부루스는 화가 치미는 상황이 되면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면서 헐크로 변합니다.

이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 호르몬입니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자연적인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급히 서두르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도전적인 상황에서 신나게 일을 합니다.

급한 성격은 이 아드레날린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디서나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두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이런 느낌들은 허상입니다.

삶의 속도를 늦춰야 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보면 아드레날린 중독증에 걸렸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드레날린 중독증은 할 일이 없어졌을 때 나타납니다. 일을 천천히 해야 할 때, 혹은 일을 놓고 휴가를 보내야 할 때 평정심을 무너집니다. 다시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생깁니다. 아직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집착,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죄책감, 경미한 우울감, 조바심, 흥분, 다리 떨기, 손가락 두드리기, 껌 빨리 씹기, 쉽게 화를 내고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납니다.

큰 경기를 치른 스포츠 선수와 관중들이 열광하다가 다음 날에 이런 증상을 보입니다. 목회자들은 주일에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다가 월요일에 쉬면서 이런 증세를 느낍니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몸이 아주 비대합니다. 그가 뚱뚱한 이유는 아드레날린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는 공연을 마치고 나서 나타난 금단 증세 때문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무대 뒤의 공허함을 먹는 것으로 달래다가 뚱뚱해진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이 아드레날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 집니다. 아드레날린 금단 증상은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다시 아드레날린 수치를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기분 좋은 상태를 다시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카페인은 아드레날린 촉진제입니다. 매일 커피를 몇 잔씩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은 그 만큼 스트레스도 빨리 받게 되며 심장 질환도 일찍 발생합니다. 이것은 스트레스가 계속되면서 심장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아드레날린 수치가 높아지면 노화 현상이 촉진됩니다.

아드레날린 중독은 그 자체가 파괴적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드레날린이 한없이 분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드레날린 분비선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분비선도 차단됩니다. 그러면 아드레날린 고갈이라는 심각한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이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아드레날린 중독증이 분명합니다. 운전하는 습관을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앞에서 차가 밀릴 때 옆 차선이 비어있으면 거의 어김없이 차선을 바꿉니다. 교차로에서는 신호등에 걸릴까봐 급하게 속력을 냅니다.

이렇게 성격이 급하다고 해서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급한 사람이 오히려 지각을 잘합니다. 다른 분주한 일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을 쉽게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급합니다. 참고 기다리질 못합니다. 현대의 성공지향적인 경쟁 사회를 살다보니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옛날에 농사를 짓고 살 때는 느긋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를 가져오는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활방식과 성품을 바꿔야 합니다. 내면의 평안과 고요함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열병을 치유 받아야만 합니다.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휴식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곱 째 날은 거룩한 날로, 다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배드리는 날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실 주일에 교회에 오면 아드레날린 분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봉사라는 미명하에 또 다량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하루를 보내고 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성품의 변화입니다.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화내지 말고 여유를 찾아야 합니다. 빨리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기질을 네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다혈질, 신경질, 담즙질, 점액질. 그 가운데서 열병에 쉽게 걸리는 기질이 다혈질과 담즙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혈질은 휴식 없는 활발한 움직임과 흥분을 잘합니다. 시작은 잘하는데 끝마무리를 못합니다. 쉽게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급하게 결정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잘 주면서도 자신은 건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담즙질은 목적을 추진력 있게 진행합니다. 직감에 의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험적이고 중간에 함정을 보기보다 목표에만 중점을 둡니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하고 오만합니다.

이런 기질은 타고 난다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B 형 남자는 다혈질이 많습니다. 체질이 그러니 쉽게 바뀔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성품에 대한 변화를 원한다면 영적인 삶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정으로 예수님의 정신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드레날린에 끌려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분주해도 시간을 정해놓고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기도하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 쫓겨 다니지 않습니다.

이 열병에서 치유되려면

첫째 몸을 건강하게 간수해야 합니다. 몸이 피곤하고 병들면 마음이 쫓기게 됩니다. 몸 건강을 위해서 식사 조절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합니다.

둘째 실망스러운 일을 용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일이 안 될 때도 있고, 사람들 때문에 좌절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내 계산대로 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셋째 거리를 두는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신경이 쓰이면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말을 나누는 빈도를 줄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가치관을 점검하십시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지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사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우선순위, 목표, 헌신, 교제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시간이 가면 바뀝니다. 예수를 오래도록 믿고 있는데 아직도 혈기 왕성한 분별없는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다듬어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옛날 같으면 벌써 어찌 했을 텐데 나도 성질 많이 죽었다.” 이런 말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베드로 장모처럼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열병 환자들입니다. 오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주님께서 우리도 다듬어 주십니다. 나의 열병을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이 손잡아 주시면 그 열이 몸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열병들을 주님께 맡깁시다. 우리 사회가 투명하고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 또한 주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소금과 빛 된 우리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열병이 나은 베드로 장모는 바로 주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모시면서 기쁨과 평화를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건강한 몸과 심령으로 이 사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합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황 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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