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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들의 진정한 교제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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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시고 이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 교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예수님만 잘 믿고 교회에 다니면 되지 뭐 하러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머리 아프게 교제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내 생각에 따라 교제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와의 교제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골 3:23). 이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듯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5:2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 할지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35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양과 같은 성도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인 염소로 나누어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을 향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사코 자신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겸손히 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평소에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대접하고 돌보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주님께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주님께서“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라고 하시며, 그들이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도 교제할 때 상대편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40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했고, 요한복음 13:20에서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주님께 하듯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같이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함께 예배는 드릴 수는 있어도, 교제는 잘 할 수 없습니다. 성도의 이상적인 교제를 위해서는 그 숫자가 최대 10명을 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수의 사람을 택하시고, 12명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그룹을 만들려면 12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그룹 모임은 작을수록 좋습니다. 대개 인원이 많아지면 나 하나쯤이야 생각하고 참석하지 않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나중에 소수의 사람만 모임을 이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0명 이내로 모이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사랑방 모임, 주일학교 모임,
성경공부 모임, 기도회 모임, 그 외에도 여러 모임에도 잘 참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를 ‘큰 배’에 비유할 때 소그룹은 ‘구명 보트’에 해당됩니다. 만일 예기치 않은 사고로 큰 배가 좌초되더라도 구명 보트로 많은 사람들은 살릴 수 있듯이, 교회가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구명 보트와 같은 소그룹들이 교회 안에 많다면 그 교회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그룹 모임을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18:20). 그러나 문제는 모든 모임에서 진정한 교제가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1. 그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서로 상처를 나누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며, 실패를 고백하기도 하고 의심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며,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털어놓으며 기도를 부탁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깊은 나눔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진실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식적인 모습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은 감추고 자기 방어를 하며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고 형식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경계하고 눈치를 많이 봅니다. 이런 곳에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7~10을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을 어두움에 감추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교제는 빛 가운데 드러나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서도 죄를 감추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평소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진심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입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겸손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약 5:16). 누구나 병을 감추면 쉽게 병이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직해야 성도의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상호 의존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44~47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내 것 네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늘 평안하고 목회자들이 목회를 잘 하는 것도 사모들이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12:20~27을 보면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상호 의존하여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서로 공감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서로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실수를 했거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성도에게, 그것은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위로하하고, 실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말해줄 때 함께 그 문제를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2을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정당하다고 확인시켜주고 이해해 줄 때, 더욱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제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나눔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더 깊은 단계는 ‘섬김의 교제’입니다. 선교여행을 함께하거나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교제하게 됩니다. 가장 깊고 친밀한 단계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교제’입니다.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함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2을 보면『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곧 사랑의 법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을 때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할 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을 때입니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거나 의심에 사로잡혔을 때 그리고 믿음이 흔들릴 때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자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완전하시지만, 우리 인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만나 교제하다 보면 자연히
허물이 드러나고 실수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럴 때 판단하기 쉽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제가 이뤄지면 이 모든 것을 덮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자비를 베풀며 그 모습 그대로 받아줍니다. 고린도후서 2:7~8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라고 했습니다. 서로 용서하지 않고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3:13~14을 보면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처럼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까요.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든지 말든지 무조건 용서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계속적으로 내게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절대로 보복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보기도하며,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사랑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있을 때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점점 더 커지고 부흥해 온 것은 소그룹을 통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 과거 공산당의 핍박으로 인해 모든 교회들의 문이 닫혔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없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문호가 개방되었을 때, 지하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비록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예배는 드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하로 숨어든 믿음의 사람들이 소수의 단위로 모여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겠다는 진정한 교제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이들의 전도로 인해 성도가 계속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북한에도 지하교회에 이런 소그룹 모임들이 많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성도라면 한 분도 빠짐없이 사랑방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고 간증하며 어려운 일들을 내어놓고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간섭하시고 축복하시는지 눈으로 보면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행복을 나누며 진정한 교제를 이루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승리하는 비결이 소그룹 모임을 가지면서 진정한 교제를 가지는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정 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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