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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의 비밀 (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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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서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폴 틸리히(Paul Tilich)는 이것을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뿌리, 우리의 근원이 누구인가를 찾아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능력을 얻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의 고백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엘머슨]은 ꡒ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이 세계를 향하여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그들에 의해서 세계가 지배된다.ꡓ고 하였습니다.
ꡒ능력ꡓ이란 단어는 신약교회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역동적이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역동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면 우리의 신앙이 능력이 있고, 우리의 교회가 역동적인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같이 보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능히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신비한 체험을 한 것 자체가 능력이 아니다.

바울은 십 사년 전에 있었던 신비체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자신을 3 인칭화시켜 말함으로써 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합니다. 십사 년 전은 고린도후서의 저작 시기를 AD 55-56년으로 본다면 AD 41-42년 때의 일입니다. 이 때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고향 다소에 가서 은거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 그는 낙원에 올라가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신비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비체험을 한 후 14년 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신비한 체험을 한 것을 말하는 이유는 고린도 성도들이 거짓 이단들에게 현혹되어 스스로 강한 영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신비한 체험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14년 동안 침묵을 깨고 자신의 신비한 체험을 부득불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14년 전에 셋째하늘에 가게 되었고, 많은 계시를 받았지만 신비한 영적인 체험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자신의 약한 것을 통하여 머물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12:9)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9:5)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신비한 체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요? 신앙생활에 신비체험은 주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성을 갖게 해 주고 사랑의 끈을 견고하게 맺어 줍니다.
사도 바울이 체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했기 때문에 외칠 수 있었습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또한 신비체험은 복음의 일군으로서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 줌으로써 이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거룩한 순례자로서 힘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영적인 소원을 충만히 덧입혀 줍니다. 그러나 체험자체가 능력의 비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나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바울이 지금 자신이 경험한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득불 자랑하는 것은 이런 것이 진정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신비체험은 여러 가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신비체험을 한 자는 개인 확신이 지나쳐서 자기 의가 생겨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방언 기도하는 하는 사람은 방언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합니다. 신비체험을 한 자는 말씀을 소홀히 하고 신비체험을 앞세움으로써 신앙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로 산 기도를 통해서 직통계시를 받고자 합니다. 건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우리의 믿음이 계시된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바울은 14년 동안 신비체험을 혼자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뿐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신비체험 자체가 능력이 머무는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신비한 체험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2. 능력의 비밀은 나의 약함에 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약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7절에서는 그것을 가리켜서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바울은 이것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평생을 괴로움을 당하고 고생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가, 자신의 육체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괴롭고 고생이 되는 힘든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가 그저 가시로서만 있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시를 통해서 더 큰 능력을 깨닫고 더 큰 일을 하게 되고 더 큰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원하십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약함이 있습니까? 그 약한 부분으로 인해 고생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축복의 선물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 쓰시고, 약할 때에 크게 역사하시고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1616)는 ꡒ인간은 하나님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나약한 존재이다.ꡓ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약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진흙으로,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진흙은 부서지고 갈비뼈는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절망과 좌절에 빠지곤 합니다. 어느 심리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 중에서 95% 정도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는 잘하는데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 어떤 사람은 능력은 있는데 가문이 좋지 않아 열등감이 있습니다. 또 외모는 자신이 있는데 머리가 좋지 않아 열등감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 하나씩은 다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사람은 다 걱정, 근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약함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큰 사건들이 강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 ~1546)는 1517년에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원수들의 눈을 피해 도망가던 중 발트부르크성에 숨어 있는 상황에서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존 번연의 철로역정은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밀턴의 실낙원은 밀턴이 눈이 어두워 기록한 것입니다.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위고가 나폴레옹3세 때 국외로 추방되어 5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며 집 없이 고난당하며 길거리에서 쓴 것이 바로 레미제라블입니다. 이것은 원고가 8000매 정도 되는 엄청난 대작입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1770 ~1827)은 귀머거리가 되었을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였고,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 1882~1945)는 소아마비였지만 국민들의 추앙을 받아 4선 대통령,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연약함이 곧 강함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가 약할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 질뿐 아니라 그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된 사도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약함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기뻐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후 12:9b~10)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본문말씀을 보면 가시가 있어서 아프고 쑤시고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나 가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 택한 사람, 더 크게 쓰시려고 연단을 시키는 사람에게 가시를 주십니다. 가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시가 결국 축복이 됩니다. 고통이 크면 축복도 큽니다. 그 가시를 통해서 크게 기뻐하고, 약한 것들을 자랑해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약한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약하고 부족한 것을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것만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은 약한 것을 자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ꡒ나는 몸이 약합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ꡓ 하고 자신의 약한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약한 것을 숨겼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면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약한 것을 미리 얘기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에게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원망, 불평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약할 때에 곧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은 ꡒ인생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힘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ꡓ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문제에, 나의 약한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능력으로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 때 깨닫게 되는 비밀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나의 약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약한 것을 자랑하고, 능욕 받는 것,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비밀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습니까?)
3. 기도를 통하여 능력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기도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후 12:8-9) 육체의 가시를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당신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실까? 다른 사람은 잘 되는 것 같고 형통한 것 같은데 나는 하나님도 열심히 믿고 열심히 봉사도 하는데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할까? 생각하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문제에 응답을 주실 때 까지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알 때 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사도바울처럼 평생을 육체의 가시로 고통을 당하는 약한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만족하고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며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그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능력의 비밀을 기도할 때 깨달았습니다.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약함을 놓고 기도하였을 때 사도바울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은 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한 것을 보면 몸이 연약하여 생긴 단순한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사단이 그를 시기하여 하나님의 허용하에서 그를 괴롭히기 위해서 준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몸에 가시를 주신 것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것은 영적 교만입니다.

인간적인 교만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영적 교만에 빠진 자는 돌이키기가 힘듭니다. 교주가 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산에 가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비체험을 통해서 영적교만에 빠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쉬운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시기 위해 사단으로 하여금 몸의 가시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원수는 외적인 원수가 아니라 내적 원수인 교만입니다.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못쓰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겸손이 몸에 벤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신약성서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능력 있는 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교만하게 되지 않도록 질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 때문에 육체의 가시 때문에 평생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그 의미를 기도를 통하여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고, 기도 응답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질병을 놓고 기도하였을 때 고침을 받지 못하고 평생 고통을 당하며 짊어지고 가야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통하여 그것의 의미를,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내가 영적인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영국의 정신적인 혁명가 존 웨슬리(John Wesley ; 1703~1791) 목사님은 전국 각지를 다니며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80세 까지 살면서 영국을 복음화 시킨 정신적인 지도자,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웨슬리의 부인은 얼마나 사나운 여자인지 날마다 바가지를 긁고 심지어는 남편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에게도 부인이 가시였습니다. 부인과 날마다 싸움을 해야 하니 지쳐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부흥강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가시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후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난이 없어지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고난을 받는 것도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몸의 가시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또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으므로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난이 없어져야 행복하고, 고난이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셉과 같이 고난을 통해서 인격의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쓰실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19:7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세 번째는,ꡐ약할 그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러 강해진다ꡑ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자신의 약점을 겸손히 아뢰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강해지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이 약한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함을 통해서 강하게 하시고, 풍족하게 하시고, 축복을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약한 것은 우리에게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약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 능력의 비밀을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깨달은 것입니다. 약한 것이 있습니까?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 의미를 여러분은 깨달아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깨닫지 못하여 약한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비밀을 깨달아 은혜 충만한 삶, 기쁨이 충만한 삶,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송명희 시인은 뇌성마비로 인해 전신이 마비되어 육체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하나님과 부모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에게 가시와 같은 육체의 고통이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는 은혜가 되어 주옥과 같은 많은 시를 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의 고통 생각하면
나의 당하는 아픔을 참을 수 있고
주 예수의 하신 일을 생각할 때에
나의 하는 모든 일이 피곤하지 않으며
주 예수님의 낮아지신 모습을 기억하니
높은 데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주 예수의 맛보신 고난을 느껴볼 때에
내게 있는 고난이 자랑스럽게 보이며
주 예수의 찔리심을 기억을 하면
나를 괴롭게 하는 가시가 괜찮아 진다. …"

기독교 역사에 바울같이 일 많이 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 같이 능력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고난에서 왔습니다.
고난은 큰 뜻이 있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움이 많이 왔지만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거기에서 훈련을 받으면 좋은 지도자가 되고, 큰 일을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줄 믿습니다. 성도의 능력 한 손에는 기도, 또 한 손에는 고난, 이것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약할 때 강함이라."

고난이 축복으로 해석되어 집니까? 나에게 있는 약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축복의 선물이라는 것이 깨달아집니까? 아직도 그런 비밀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기도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ꡒ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ꡓ  (숭인교회 고도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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