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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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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14)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한 자들에게 주는 경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b(b. 신29:18(70인역))
(히 12:15)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히 12:16)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히 12:17)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구하였건만, c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고서적을 애호하던 어떤 사람이 마침 조상 대대로 살던 집 다락방에 있던 성경 한 권을 버린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을 수가 없더군. 인쇄한 사람이 구텐 뭐라고 적혀 있던데."라고 말했습니다. 책 애호가는 전율을 하며 외쳤습니다. "설마, 구텐베르그! 그 성경은 최초로 인쇄된 성경 중의 하나였을텐데 최근에 그 중 한권이 200만불 이상에 팔렸다네!" 그 친구는 무덤덤해 했습니다. "내 성경책은 단 1불도 받지 못했을 것이오. 마틴 루터라는 작자가 독일어로 온통 낙서를 해 놓았거든."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고귀한 것을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고 쉽게 내어주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바로 에서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에서는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그릇의 음식을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인 축복인 장자의 신분을 팔아버린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순간을 위해 영원한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한심한 거래를 되돌려 놓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어느날 야곱이 죽을 쑤고 있을 때 마침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사냥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지 몹시 피곤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팥죽을 끓이고 있었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에서는 아주 조급하게 팥죽을 달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형의 장자권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꾀가 많은 야곱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야곱은 장자권의 가치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으나 에서는 물질적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배가 고픈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라고 말하자 에서는 '그 까짓거 아무것도 아닌 것, 장자권이 있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하고 생각하고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하고 말하며 선뜻 그러마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팥죽을 한 그릇 받아 먹었습니다.

에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장자의 명분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우선 당장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맛난 팥죽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현실에 치우친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버린 것이 지상최고의 실수요 인류 역사상 가장 뼈아픈 오판임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날 우리는 이런 에서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고 에서의 행동이 흔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적으로도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경제논리보다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나 실물경제나 외환규모나 실업률, 경제정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가치가 도덕이나 윤리, 영적인 가치보다 앞설 때 나라는 붕괴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뺏겼고 결국은 야곱한테 축복이 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는 온통 먹자판입니다. 소비와 쾌락적인 문화가 가득차 있습니다. 그저 놀고, 쾌락을 누리고, 먹고, 마시는 것으로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영혼의 구원이나 하나님 나라를 경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영적 가치를 아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피폐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불행입니다. 그것이 현대판 에서를 불행하게 몰고가는 문제입니다.

본문에는 주를 보지 못하는 사람, 즉 현대판 에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지 안고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화평과 거룩을 쫓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쓴뿌리로 인해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쓴뿌리를 우리 안에 내버려두면 괴롭고 다른 사람에게 더러운 영향력을 입힙니다. 끝내는 하나님의 은헤에 이르지 못하는 후회가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가 있다고 힐난합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려야하는데 은혜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사는 것만큼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후에 그 가치를 깨닫고 눈물로 간청하였으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은혜에 도달하였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은혜에 이르면 사죄를 경험하고, 구원을 경험하고, 진리를 경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감격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예배드리고 말씀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존귀한 은혜에 이르고 날로 새롭게 되나 어떤 이는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은혜에 이르렀으나 계속 은혜안에 거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냉냉하게 식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늘 공허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에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의 가치를 모르고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팥죽 한 그릇과 맞바꾸는 아주 어리석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예배생활, 기도생활, 봉사생활을 잘 하다가도 어느날 이웃집에 놀라갔다가 시험에 들어옵니다. '아니, 세상에 저렇게 좋은 집에서 저렇게 화려하게 잘 꾸며 놓고 사는데 나는 헛 살았네, 이 나이먹도록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잖아, 교회일만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이 다 책임지는게 아니구만..' 그러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세상을 동경하며 엉뚱한 결심을 합니다. '나도 지독하게 살아서 돈을 악착같이 모아야지..' 그리고는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홀히하고 교회생활도 등한히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얻은 귀한 보물들을 하나씩 다 도둑맞기 시작합니다. 구원의 감격도 식어집니다. 예배의 감동도 사라집니다. 기도의 문도 닫힙니다. 마음의 평안도 없어집니다. 영적 축복을 다 도둑맞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값을 지불하여 선물로 주신 하늘의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입니다. 진짜 좋은 보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서 먹고 소화되어 사라질 한 끼의 음식보다도 싸구려로 취급합니다.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별 고민도 없이 물질적인 것, 화려한 것과 바꾸려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쉽게 그만둡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너무 바빠서.. 맞습니다. 바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혹 교회의 일은 돈이 나오는 일이 아니고 세상의 일은 수고한 만큼 물질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현대판 에서입니다.

여러분, 에서가 배가 고플 때 고소한 팥죽 한 그릇의 유혹이 얼마나 마음을 흔들었을까요? 에서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유혹이 여러분에게도 있습니까? 장자권은 먼 훗날의 문제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반면 팥죽은 당면한 현실문제입니다. 그런가운데 팥죽을 향해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것을 절제하기가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권이 넘어가자 곧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 주시는 축복도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스포트 라이트도 야곱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씩 하나씩 그에게서 멀어져갔고 장자권의 주인인 야곱의 생애는 부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자권의 가치를 경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유혹이 올 때 잘 절제합니다. 영원을 바라보고 순간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진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현실의 쾌락을 미끼로 수없는 유혹의 손길이 뻗칠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굶주려 있는 에서를 유혹하는 팥죽 한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천원짜리 팥죽 한 그릇을 시장한 우리들앞에 흔들며 장자권과 바꾸자고 유혹하고 잇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거래가 아닙니다.

1700년경 한 무리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금의 뉴욕에 속한 매해튼(Manhattan)섬 남부에 이주해왔습니다. 다시 맨해튼 섬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 외국인들에게 "여기는 우리의 땅이니 나가라"고 텃세를 부렸습니다. 오갈데 없는 따한 처지에 놓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땅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간곡히 애원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섬은 별로 쓸모 없는 땅인데 저 백성들이 애처롭게도 목을 매는구나 이 기회에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아야지"이렇게 해서 흥정이 시작되고 얼마후 맨해튼 섬은 대서양을 건너온 네덜란드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섬의 땅값으로 인디언들이 받은 것은 고작 양주 2병이었다고 합니다. 그 흥정이 있은 후 300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날 맨해튼은 세계의 중심지로 웅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외교,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 「미국중의 미국」이 되었습니다. 그 옛날 양주 2병과 쓸모 없는(?)땅덩어리를 맞바꾼 인디언들이 오늘날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맨해튼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울까요?

현재에 사로잡혀 미래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너무나 억울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영원한 천국을 찰나적인 쾌락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칭찬을 사람들의 자랑으로 맞바꾸는 사람이 많은데 얼마나 안타까운 것입니까? 그 외에도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누리며 살고 하나님께 붙잡혀 존귀하게 쓰임받는 등 하나님 나라의 보물을 세상의 물질이나 쾌락 등 화려함과 바꾸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합니다. '에서는 후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눈물까지 흘리며 구하였건만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라고 말입니다. 거래가 끝나면 "다시 팥죽 한 그릇 돌려줄테니 나의 장자권을 돌리도"한다고 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팥죽 천 그릇을 가져와도 이미 늦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영적 상속권을 시시하게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죄사함과 구원, 영생이 있습니다. 그 안에 하늘나라를 상속하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온갖 복을 받을 수 있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역으로 쓰임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세게에서 악한 권세를 결박하는 결박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이 되는 특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배가 고파도 인내하십시오. 핍박을 당해도 견뎌내십시오. 유혹이 와도 뿌리치십시오. 시험이 와도 승리하십시오. 그래서 믿음의 거인으로 성장하여 우뚝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적 부자로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큰 능력을 경험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문 기 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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