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은총 (출 33:12~23)

  • 잡초 잡초
  • 485
  • 0

첨부 1


  오늘 본문 말씀은 아론의 금 송아지 사건이 있은 후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아론의 금 송아지 사건이란 어떤 사건입니까? 출애굽기 24장 이하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 24:12) 그래서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라 사십 일 동안 산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나치게 더딘 것을 보고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청했습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 32:1)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이 모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론에게 신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백성들의 요구를 듣고 아론이 보여 준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을 엄하게 꾸짖었어야 옳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금 고리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들에게 그 금 송아지가 바로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하여간 그런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 산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앞서 가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올라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도중에 목이 곧은 그들을 진멸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매달렸습니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하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다면 은총을 입은 자의 요구를 거절하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에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까지도 들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 일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성령은 기구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임하신다. 성령은 계획에 기름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구나 계획에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도를 고안하거나 무기를 생산하지 않으시고 오직 한 사람, 모세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성경은 모세를 가리켜서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총이란 그 어떤 자격에 따라 입는 것이 아닙니다. 고행을 한다고 해서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은 국어 사전을 보면 ‘높은 이로부터 받는 특별한 사랑’ 또는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그 뜻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은총은 전적으로 위에서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첫째,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격노케 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멸하려시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모세를 통해서 새 민족을 이루시려고 했습니다. 웬만하면 적극적으로 환영할 일이 아닙니까? 단체나 조직을 이끌어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눈에 가시 같은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갈수록 불평과 원망이 늘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열 번이라도 더 없애 주실 것을 간청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은총의 옷은 헛된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이웃의 발을 닦아 주는 수건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은총을 입은 자로 산다는 것은 항상 유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은총을 입은 것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이 곧은 그들과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하면 그만큼 실망이 크셨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는 하나님의 실망을 극복할 그 무엇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6)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백성이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어찌 은총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험한 광야 길을 거치지 않고 편하게 구름 위로 실어다가 가나안에 옮겨 놓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날마다 소위 형통한 삶을 보장해 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다만 은총을 입은 자들과 함께 동행하사 고난 중에 승리를, 험한 길에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퀴즈를 냈습니다. 워낙 상이 컸기 때문에 많이 사람들이 응모했습니다. 비행기가 가장 빠르다느니,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느니, 새벽에 지름길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면 가장 빠르다느니 등등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고 실제로 시간을 재어보면서 서로 자기들의 아이디어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상을 탄 사람의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거리 계산법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총을 입은 자의 삶입니다.

  끝으로, 성경은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보여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또 극히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의보다 눈에 보이는 불의가 훨씬 더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할만한 뚜렷한 증거를 얻고 싶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영광은 죄로 물든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영광의 일부를 보여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또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대속의 은총을 입은 것이 바로 우리가 아닙니까?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총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다른 어떤 은혜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총을 입은 자들과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뜨겁게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이웃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보좌 앞에 섰을 때 썩지 않고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을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 석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