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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날부터 지금까지 (행 20: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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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우리를 세상에 내시고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들이 모여 회개하며 마음 모아 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2005년 9개월의 삶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힘든 일 많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심 감사드립니다.
남은 3개월의 삶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와 간증이 넘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세상이라는 바다는 잔잔하지 못하고, 고요하지 못하고…
우리를 한숨쉬게 하고 탄식하게 하는 모진 풍랑으로 흔들어 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하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견딥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답답한 일을 만나도…
눈물 참기 어려운 상황에도… 낙심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울더라도, 넘어져도… 낙망하여 아주 주저앉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위로 열린 희망의 문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교회 인사대로 범사에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원근각처에 흩어져 살던 이들이 모여 앉았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한 이들이 있습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이 있으며 병상의 환자들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인도하실 줄로 믿고
존귀하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10월 첫 주일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10월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10월 2일)은 노인의 날(제9회)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경로 효친(敬老 孝親) 사상 확산시키고,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1997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그런데 몇 살부터 노인입니까? 65세?, 70세?부터 노인입니까?
돋보기 낀 사람(?), 흰머리 나면 노인입니까?,
검버섯이 생기고 목덜미/눈가에 주름 생기면 노입니까?
나이 줄여서 말하기 시작하면 노인입니까?
나이보다 적게 말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노인이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노인에 해당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사도 바울의 삶

시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을 잊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안 늙을 것처럼 교만하게 살아가고
반면 노인은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인정치 않고 삽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돌이켜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껏 어떻게 사셨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사시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 (막12:30)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가능합니까?
우리에게 그런 삶을 모범으로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간증합니다.
17~18절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17절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18절 "장로들이 오자,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시아에 온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고백하는 내용이 20장 19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바울은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며 산다는 이유 때문에… [모함]을 받았고,
[모함]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행20:19).
☞ 모함(slander)은 남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하는 것인데
물론 지금 우리는 바울이 어떤 모함을 받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 도서출판 두란노에서 발행한 [Bible Knowledge Commentary] 사도행전 159~160면 참조 -

그러나 바울은 "[고통]을 당했다"고 표현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이 고통 당한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며 산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기둥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모든 사람이 좋게 여깁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 잘 하라고 다 도와 주지 않습니다.
꼬는 사람, 방해하는 사람, 씹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먼저 바울의 경우를 보시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바울을 모함하여 괴롭게 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입니까? 우상숭배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울과 가장 가까운 동족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하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 열심히 신앙생활 해 보려고 열심히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마음을 정하면…
빈정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안하던 교회 일 하려고 봉사의 자리에 있으려 하면… 실룩거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어려운 사람 돕고 살려 하면…
- 목회자를 돕고 목회자를 가까이 하며 함께 일하려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로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불신자들인가요? 절에 다니는 사람들입니까? 무당들이 그렇게 합니까?
아닙니다.
같은 교인입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때로는 같은 선교회원, 가장 가까운 것 같은 사람들이
모함하고, 마음 아프게 하고, 한 숨쉬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이 바울에게도 있었는데 제게는 없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없겠습니까?
아무리 신앙생활 해도 자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없다'는 분들은
'봉사하는 자리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언제나 겸손했던 바울

그러면 모함을 받고 고통 당한 바울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바울은 언제나 겸손했습니다.(19절)
본문 말씀에는 "모든 겸손"(great humility - NIV)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습니다.(출신성분)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행21:39)
-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학력)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행 22:3)
- 장막 짓는 기술자였습니다.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기술)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행18:1~3)
-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신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습니다.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행22:25)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7)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언제나 자기를 낮추며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바울은 겸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당하는 고통을 참았습니다.
눈물이 아무 때나 나옵니까? '이제부터 울어야지' 라고 마음먹기만 하면 바로 나옵니까?
바울이 얼마나 참기 어려웠으면… 눈물을 흘리며 견뎠겠습니까?

예수 믿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신앙생활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기둥교회 출석하며 섬기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집사, 권사, 장로, 선교회장, 속회인도, 지역장, 찬양대, 교사, 안내… 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만큼 모진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예수님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는데 우리들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바울은 모함을 받는다고 피하고/숨고/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럽다고 집어치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보면,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가 되는 소리를 들었다고 집어치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유익되는 것은) 전파하고 (행20:20)
(하나님 말씀은) 가르치고 (행20:20)
(예수님 믿으라고) 선포했습니다. (행20:21)
언제부터 언제까지 바울이 그렇게 했습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행20:18)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함을 받아도,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려도 변함 없이 계속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18절에 나오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라는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처음 잘 하기는 쉽습니다. 잠깐 잘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계속 잘하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끝까지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이제까지의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삶입니다.
이제부터 끝날까지의 삶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생활, 부부관계, 부자관계, 형제관계… 이제까지 살아온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사회생활 학교 친구 관계, 사회 친구관계, 사업상 관계된 사람/관계된 일…
이제까지 살아온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 예배 참석, 성도의 교제, 봉사생활… 이제까지 하신 것 잘하셨습니다.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떠냐가 더 중요합니다.

성령에 매인 사도 바울

바울은 성령을 통해, 성령의 매임을 통해
불투명하고 고통스런 장래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행20:22~23)
그런데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행20:24)
바울은 성령에 매여 살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매여 삽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매여 사십니까?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디엔가 붙들려 있는/매여 있는 존재입니다.
- 어떤 사람은 술과 담배에 매여있습니다.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고,
잠시라도 담배 없이는 못산다며 담배에 얽매인 사람이 있습니다.
- 요즘에는 휴대전화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휴대전화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라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예배 시간에도 전화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돈에 매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 권력에 사로잡혀 권력이 끌어가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 쾌락에 매인 사람도 있습니다.
- 자식에게 매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 자기 자신에게 매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자기 마음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하면
1년 뒤의 약속이라도 수첩에 적지 않고도 다 기억했고, 약속을 어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5년 전쯤 이중약속을 하고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수첩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수첩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전화를 하다가 약속을 하려 하면
"죄송합니다. 제가 수첩을 봐야 합니다"라고 답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수첩입니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어떤 약속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금 내가 주의 인도하심 따라 살지 않고
수첩 인도하심 따라 사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매여 있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얽매여 있고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시는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묶인 날 이후로 줄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 3:7~8)
모든 범사,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성령께 매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성령에 매여/성령의 인도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장래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었고
결국 로마를,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게 하는 출발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매여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혹시 여러분의 생각대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 말씀 듣고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갔습니까? 가기는 갔는데 자기가 가고 싶은 [다시스]로 갔습니다.

현대 크리스챤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아멘"하지만… 문제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요나] 참 이름을 잘 지었습니다.
오른손을 들고 가슴에 손을 대면서 해봅니다. [요~나]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향해 갔던 바울 같은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살게 하시고, 여기 있게 하시고,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엮어 주신 모든 관계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는 것도 뜻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얼마나 더 살려 주실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합시다. 달려갈 길 다가도록 믿음을 지키십시다.
물론 가슴을 후벼파는 소리하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한숨쉬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는 사랑을 실천하며 승리할 수 있기 바랍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실천했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고통을 참아가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 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백성 되라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의 소식이 전해지고, 제가 여러분에게 바울을 전하고,
여러분이 바울을 아는 것처럼… 훗날 사람들이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는 참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산 사람이다'라고 기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훗날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바나바처럼 정말 좋은 사람(good man)이었어'라는
소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남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생선 같은 만남, 꽃과 같은 만남,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첫째, 생선 같은 만남이란 만지기만 하면 비린내가 나는 만남을 말합니다.
손 씻고 그 사람의 흔적도 깨끗이 지워 버리고 싶은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은 오래 갈수록 더욱 부패한 냄새를 풍깁니다.
둘째, 꽃과 같은 만남은 만나면 향기가 나고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금세 시드는 만남을 말합니다.
잠시의 즐거움으로 만나는 사람입니다.
셋째, 손수건 같은 만남이 있습니다.
핸드백 구석에 넣어두거나 주머니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기 때문에
있는 지 없는지 때로는 기억도 안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땀도 닦아주며 함께 하는 만남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만남의 대상입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고 나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생선 같은 만남이어서
또 만날까봐 겁나는 만남은 아닙니까?

저는 지난 목요일에 가슴 뭉클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두 부부가 정말 오랜만에 제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10년 전에 건축헌금을 작정했는데 그때 일부만 드렸고
작정한 대로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짐이 되어 가져왔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분들이 가신 후에
'혹시 나는 작정하고 하지 않은 것은 없는가' 한참 생각해 봤습니다.
누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적어 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10여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살아왔으니
그분들 참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과의 약속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사십니까?
여러분은 사람끼리의 약속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사십니까?
약속을 잘 지키십니까? 못 지켰으면 왜 못 지키는 지 연락하셨습니까?
언제까지 지키겠다고 뜻을 밝히셨습니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십니까?

이 [노인의 날]에 묻습니다.
누가 노인입니까? 어떤 사람이 노인입니까?
75세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나님,
80세인 모세도 쓰신 하나님… 앞에 누가 노인행세를 하렵니까?
우리들 모두는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2005년 10월 2일 오늘이라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빈둥거리고 흘러간 세월/추억만 그리는 사람, 옛날에 젖어 사는 사람이 노인입니다.
그러나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
나이와 상관없이 현재에 감사하며… 앞의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은 젊은이입니다. 희망의 사람입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입니다.

바울처럼 '첫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다고 고백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부터 끝까지", 이제부터 천국 갈 때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작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끝날까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이제부터 끝날까지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평생의 삶이 되도록 연약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바울이 "첫날부터 지금까지"라고 담대하게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없으나 "이제부터 끝날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주일 세상에 살면서 땀흘려 애써 모은 것들과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드립니다.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10월 2일 주일낮설교, 고신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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