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호와의 영이 떠난 사람 (삼상 16:14-23, 롬 12:6-13, 마 25:45-46)..

  • 잡초 잡초
  • 876
  • 0

첨부 1


1. 어떤 대학 교수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구걸을 해서 밥솥을 마련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 솥에 밥을 잘 지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이 그 밥을 자기들 끼리 배불리 퍼먹었기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은 나중에 누룽지를 긁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김영삼 대통령이 IMF 때문에 솥까지 팔아먹은 것을 김대중 대통령이 카드를 긁어서 새 솥을 마련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코드를 잘못 끼워서 밥솥을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우스개라고 하기에는 사뭇 진지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세월이 흐르고 나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소위 친일 인사의 명단이 발표되어 굉장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존경하여 마지않던 인사들이 친일행각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역사의 평가가 매우 냉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역사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날에는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까지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야 그럭저럭 의인인척 가장하고 속이고 한평생을 살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야 적나라하게 다 들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찬송가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혹 우리가 역사적으로 불의의 현장이었던 그 한복판에 있지는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서 의인을 필요로 했던 그 자리에 있었느냐고 묻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숨길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자백해야 하고, 직고 할 수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내 삶의 내용이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그 일이 바로 영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같이 새 성전을 건축하는 현실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책임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 일은 우리 교회 80년 역사상 가장 크고 귀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시대에 이 큰 일을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의 테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옛날 여리고 도상에서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사건,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시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테스트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저들처럼 무관심하고, 외면하고, 피하여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거기 아무런 핑계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사람을 기억하셨고 “바로 이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주님은 동시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라고 물으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내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건만 나 위해 너는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처럼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무슨 변명과 핑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처음에 군계학(群鷄鶴)이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한눈에 띄는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장신(長身)에다 미남이었습니다. 거기다 첫 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온 백성들은 “임금님 만세!”를 외칠 만큼 국민들의 신망을 한 몸에 모았습니다. 말하자면 초기의 사울은 “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왕의 직분을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백성들로부터 섬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놓고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노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과 그 은혜를 제쳐놓고 모든 일은 자기 힘으로 이루었노라고 그 공로를 세상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울에게서 행여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것이 나의 자화상은 아닙니까? 에베소 교인들에게 책망하면서 경고했듯이 우리도 처음의 그 순수하던 믿음, 처음의 그 원색적인 사랑, 처음의 그 뜨거운 열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성경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끝내 사울은 불행한 운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14절에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케 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사울은 승리했고 형통했습니다. 선지자와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주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서부터 그는 정신병 환자가 됩니다. 모든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악한 신에 의하여 조종 받게 됩니다. 사탄의 화신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서부터 멸망의 내리막길로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기기로 결심하고 그가 주님의 제자단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마귀가 그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캄캄한 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가룟 유다 자신은 목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멸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와서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행1:8에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승리하고 성취하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3. 사울과 대조적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사울 신하들의 촌평이 있습니다. 18절 마지막 절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다윗의 평생 동안 따라다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다윗은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듯이 다윗이 다윗 된 비결은 “하나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셉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형통했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구하고 자기 부모와 형제들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의 생애가 어떠했습니까? 그가 애굽의 총리를 목표하고 최고 경영자 코스를 이수했습니까? 아닙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노릇 하다가 실패 했고, 감옥에서 죄수들을 뒷바라지 하는 일을 했습니다.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총리될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죄수들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가 총리로 직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총리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가 거기서 잘 섬겼기 때문에 나중에 가장 훌륭한 총리가 되어 잘 다스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총리 자리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요셉이 그랬다면 그의 운명은 일찍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섬김 받으려 할 것이 아니라 섬기시기 바랍니다. 현재 여러분이 처한 현실, 감당해야하는 직분, 그것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일도 맡긴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이미 사무엘을 통하여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악한 사울 왕을 섬기는 종이 됩니다.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 받고도 종으로 섬깁니다. 왕이면서 종입니다. 이점에서 우리 주님과 닮았습니다. 주님은 만 왕의 왕이시면서 모든 사람의 종으로 섬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아십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왕이라는 말씀에 전혀 실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왕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 땅으로 망명 다닐 때 누가 그를 왕이라고 인정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왕의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건이 어렵습니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드십니까?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바로 그 일, 바로 그 환경, 바로 그 사람들을 통하여 왕 같은 제사장으로 훈련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을 연단하셔서 지극히 높여 주시고, 가장 귀하게 들어 쓰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4. 다윗은 처음에 아버지 이새의 양떼를 맡아 쳤습니다. 사실 양을 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가장 비천한 직업입니다. 형들이 왕 될 사람으로 사무엘에게 면접 보러 갈 때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을 불평 없이 감당했습니다.  그 다윗이 하나님의 낙점을 받아 왕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의 목양(牧羊)은 단지 목양이 아니라 왕업(王業, kingwork) 즉 왕이 되기 위한 CEO코스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말을 들은 의인들은 너무 놀라서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 그런 일을 하였나이까?”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여러분, 지금 여기서 교회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는 나의 지극히 작은 일이 놀랍게도 나중에 왕이 될 코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같이 성전을 건축하는 오늘 내가 이 거룩한 사역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나의 관심, 나의 기도, 나의 헌금, 새 성전을 밟는 내 발걸음 하나하나까지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 내가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너는 내게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 받았을 때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던 것처럼 오늘 성도 여러분의 헌신이 우리 교회를 훌륭하게 세우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지금 하는 일을 하찮게 생각지 마십시오. 지금의 직분을 가장 소중하게 감당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주님이 절실하게 요구하시는 일에 여러분의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축복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김 오동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