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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 2>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신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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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을 살펴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은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 우상을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우상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 우상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을 만들 때 사람들은 좀 더 신을 잘 섬기기 위해서라고 변명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상이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참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사실 돌이나 나무나 금은으로 신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며 절할 때 모든 사람들은 제 자신이 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조상들은 뒤뜰에서 새벽에 길은 우물물을 떠놓고 정성껏 빌었습니다. 이것을 흔히 ‘정한수’라고 부르는데 잘못된 말입니다. ‘정화수’(井華水)가 옳습니다. 그런데 왜 정화수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매일 새벽 정성을 들인 것입니까? 산에 가면 영험 있게 생긴 바위마다 양초의 촛농이 보기 싫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돌로 만든 부처들을 보면 코 부분만 심하게 닳아 있습니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절마다 부처 앞에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비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두 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자녀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복을 비는 것 아닙니까? 말로는 부처를 위하고 신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목적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의 안위와 복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자기 자신을 위해여 새긴 우상’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상종교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이것입니다. 참 신앙은 신의 영광을 위해 내 자신의 안위나 복까지 포기할 수 있지만 우상종교는 오직 제 자신과 가족의 이익과 복만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신앙도 바로 이 점에 의해 참된 신앙이 될 수도 있고 우상신앙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 자신이나 가족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되어야만 참 신앙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하나님 믿는다고 하고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목적하는 바가 자신의 복뿐이라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닌 우상신앙 수준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우상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님이 다른 신의 형상을 본 딴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심지어 하나님의 모습도 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4:12~13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하면서 자신이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불꽃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지 하나님의 형상은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음성만 들은 것이 아니라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두 개의 돌판에 십계명을 친히 써서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은 절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주일 예배가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는 요한복음 4:24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절대 눈에 보이거나 만져볼 수 있는 육적인 존재,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식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의 나라들은 모두 다신교 신앙이었다고 지난주에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방종교들의 특징은 자기가 믿기는 신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을 태양이나 달의 모양으로 나타내는 경우, 또는 어떤 짐승의 모양으로 나타내는 경우, 제일 흔한 경우는 신을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섬기는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동에서 고고학 발굴을 하면 여자 모양, 남자 모양, 짐승 모양을 한 온갖 우상들이 엄청나게 출토됩니다. 8절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라고 말씀한 것이 이것입니다. 왜 이렇게 신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기를 좋아했을까요? 눈에 보여야 믿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신을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어디 믿기가 쉽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신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떡하니 집에 모셔 놓고 섬기면 날마다 볼 수도 있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 마음속에는 자기가 믿는 신을 자꾸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집안에 모셔 놓고 ‘자기 신’으로, 내 ‘전용(轉用) 신(神)’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본능이 바로 우상숭배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런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으실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까지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형상이 아닌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가? 두 가지 방법입니다. 12절에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또 13절에는 돌판에 새긴 ‘십계명,’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면 그것을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지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들려오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오직 기록된 말씀인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한 사람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입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입니다만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오직 말씀’(라틴어로 sola scriptura)이라는 모토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 오직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에서는 말씀 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았는가?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성당에 가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성당에 가보면 유난히 어떤 그림이나 형상으로 된 것들이 참 많은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교회의 십자가는 십자가만 달려 있지만 성당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달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그림이나 벽걸이 같은 것을 통해 예수님이나 성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테인 글라스라는 것도 성당에서 나온 것인데 유리에 예수님이나 성경의 장면들을 새긴 것입니다. 또 ‘묵주’라는 것도 있는데 보셨습니까? 꼭 불교의 염주처럼 구슬이 달려있는데 차이라면 거기 십자가가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이 묵주를 가지고 다니면서 묵주기도를 자주 합니다. 이처럼 어떤 예수님의 형상이나 성경의 장면들, 성자들을 형상으로 만든 것을 ‘성상(聖像)’ 즉 거룩한 형상이라고도 부르고 영어로는 ic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천주교에 이 성상이 이렇게 많이 생긴 데는 까닭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사에 보면 본디 천주교도 형상을 금지하는 성경말씀대로 형상을 잘 만들지 않았는데 기독교가 게르만 족이나 노르만 족 같은 야만인들에게 전파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 야만인들은 아무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야만인들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냐?”라고 반문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 야만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할 수 없이 “직접 보고, 만져보고 믿어라” 하면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는데 이것이 바로 성상, 즉 아이콘의 유래입니다. 그런데 후에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형상을 만들어보니 좋거든요. 잘 보이기도 하고 뭔가 훨씬 구체적인 것 같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림에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기까지 했습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가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그림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담과 손가락을 마주치고 있는 하나님이 마치 수염을 하얗게 기른 할아버지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그림으로 형상화 된 것입니다. 이후 천주교가 중세를 거치면서 점점 많은 성상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신자들이 이 성상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쓰던 수건이라고 하면서 거기 손을 대면 병이 낳는다고 합니다. 성인인 성 프란체스카가 쓰던 물건에도 영험한 힘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가 온통 성물로 가득 차게 되고 신앙의 본질은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성물을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의 종교가 성물의 종교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때 이 모든 성상을 파괴하고 절대 성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강조한 것이 종교개혁자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에는 십자가 외에 어떤 거룩한 형상도 둘 수가 없고, 천주교는 여전히 이런 영향을 받아 아직 성당에 여러 가지 성상들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물론 다른 신을 돌이나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도우상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도 우상이고, 따라서 십자가도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심지어 교회당 안에 십자가를 걸지 못하게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일 뿐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섬기거나 십자가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거나 십자가에다 대고 기도하거나 소원을 비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 앞에서도 절하거나 숭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제 9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처음 교회 다닐 때 참 이해가 안 가던 말씀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질투를 한다니? 그렇다면 하나님도 우리처럼 질투하고 미워하는 수준이라는 뜻인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말이 어떤 뜻이겠습니까?

본디 이 낱말은 부부사이에 관련된 말입니다. 율법에 보면 남편이 자기 아내가 간음한 경우에는 그녀와 그 정부를 죽이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질투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부부 사이에 질투를 인정한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질투가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관계입니다. 부부가 서로 질투한다는 것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다른 상대와 간음을 하는데도 질투가 안 나고 덤덤하다면 심각한 문제지요. 더 이상 부부 사이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도 부부사이인데 아내인 우리가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고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은 당연히 질투하시고 그래서 우리가 남편 되신 하나님에게 큰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제일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구약의 호세아서입니다. 바람난 아내 고멜을 계속해서 돈 주고 사와야 하는 남편 호세아의 모습이 바로 영적간음인 우상숭배로 더렵혀진 백성과 남편 된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벌과 상

그래서 9절 뒷부분과 10절에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간음하는 자, 즉 우상을 숭배하는 자에게 내려는 벌과, 반대로 부부 사이의 정절을 철저히 지키며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에 대해 말씀합니다. 다같이 9절 뒷부분(‘하나님인즉’ 다음부터)과 10절을 읽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맨 처음에 ‘나를 미워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또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사람과 간음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미워하기에,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에, 미워하기에 바람을 피우고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를 ‘나를 미워하는 자’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상숭배자들에게는 어떤 진노의 형벌이 내려집니까?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그 대가인 저주와 벌이 우상을 숭배한 사람 하나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나 자녀손까지 삼대 사대에 이르기까지 미친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죄가 온 가정과 가족들,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죄이며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설명한 것이지요.

반대로 우상을 멀리하며 신앙의 정절을 철저히 지키는 자에게는 큰 상급이 주어지겠지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내 남편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절대 다른 남자에게 한눈팔지 않는 것처럼, 남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분만 바라보며 그 말씀에 100%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절을 지킨 성도들에게는 어떤 상이 주어집니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약속하십니다. 우상숭배자에게 주어지는 벌이 삼 사대인데 비해 신실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복이 천대까지 이른다니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면 나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천대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내 자녀와 자녀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니 참으로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지만 충성은 엄청난 복을 받는 일입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남편을,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내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일, 내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계에 보면 부부싸움을 할 때 어떤 게 제일 싫은가? 바로 배우자가 내 집안 이야기를 할 때라고 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당신 집안은 왜 그 모양이야?” 이런 말을 하면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부싸움이라도 최소한 할 말, 안 할 말은 구분해야 합니다. 오래 살아보면 아내나 남편이 무엇을 제일 싫어하는지 잘 압니다. 최소한 그것만 안 하면 큰 문제는 안 생깁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남편이 양말 둘둘 말아 방구석에 처박아 놓는 것은 정말 못 참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안 고쳐요.” 그 남편은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양말만 세탁기에 잘 갖다 놓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쉬운 것을 잘 못합니다. 이혼하는 가정을 보면 무슨 대단한 이유에서 갈라서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가장 많은 이혼사유가 ‘성격차이’인데 성격차이란 부부 간에 이런 사소한 일들로 인해 자잘하게 갈등이 생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작은 균열이 부부간에 불신감을 가져오고 결국 가정이라는 큰 댐이 터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들 어떻게 하나님 마음에 100% 맞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최소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간음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눈을 돌리고 그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지난 주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하나님만큼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보다 먼저 생각나고 먼저 찾는 대상이 있습니까? 내게 너무도 소중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들, 심지어 내 신앙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하나님보다 뒤로 놓지 않으면 우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십니까?(막 12:30)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인생과 영혼과 가치관을 점검해보기 바랍니다.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거나, 하나님보다 차지한 자리가 크거나 우선순위가 먼저로 되어 있다면 빨리 그 자리를 뒤로 밀어 놓으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는 정절과 충성의 신앙으로 여러분 자신뿐 아니라 내 자녀와 자녀손, 온 가정에 이르기까지 천대에 걸쳐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이 하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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