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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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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05년에서 681년 사이는 앗시리아 제국이 세계 천하를 지배하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의 산헤립 대왕이 십팔만오천명의 군대를 풀어 유대 나라를 침공하였습니다. 구약 열왕기하 18장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유대 나라의 왕은 '히스기야'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의 물리적 힘 앞에 유대 나라의 힘은 하루 아침거리 밖에 안 되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유대 나라가 또다시 앗시리아 제국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 놓여 있을 때 히스기야 왕과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기적 도움으로 산헤립의 군대를 모두 진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의 승리를 노래한 것이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위에 보면 작은 글씨로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노래하는 전문 은사자가 하나님을 찬송하였던 역사를 나타내 주고 있는 말입니다. 여기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는 말이 있는데,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학설이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찬송 문화는 그들의 역사가 반영이 된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너무 기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치고 노래를 하니까 이스라엘 처녀들이 그 뒤를 따르며 여호와의 능하신 손길을 찬양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바로 그것에서 처녀들의 합창단이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보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 찬송시를 그토록 좋아하였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루터가 작사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라는 찬송을 애국가 같이 좋아합니다. 전 세계에 개신교 신자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편 46편을 읽으면서 작사한 것입니다. 루터의 개인적 역사에 이 찬송을 만든 동기가 나타납니다. 그가 1529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그 나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습니다. 터키군의 침략을 받아 비엔나는 완전히 포위가 되었고 이제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이 터키 군은 옛날부터 호전적 민족으로 역사화 되었습니다. 터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마치 독수리와 참새로 비교할 만한존재였습니다. 이런 국가의 비극적 운명이 닥쳤을 때 비엔나 시민들은 교회로 모두 다 몰려가서 하나님께 급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터키 군이 깨끗이 물러갔습니다. 이유는 본국에서 비엔나를 함락시키지 말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엔나에 갔다가 그 현장을 목격한 루터는'이런 것이 기적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힘이다.' 그래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적군이 못 들어오게 하는 성이며 하나님이 성이 되어 지켜주심을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한 가지 지식이 있는데 "힘이 있어야 된다."라고 믿습니다. 그 살아가는 힘을 만들기 위해서 누구든지 피나는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힘인가?"하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삶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오늘이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어떤 힘을 교회가 가르칠 것이며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어떤 힘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보통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지식은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지식 경쟁, 교육 경쟁의 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만큼의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것도 아는 것 때문에 되었습니다. 이런 지식 경쟁의 문화가 이루어져 후진국에서는 앞서가는 선진국에 유학가는 것이 꿈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철학을 믿기 때문에 되어진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장 많이 오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그렇게 좋지 못한 두 나라의 관계이지만 그런데도 이 면에서는 미국이 앞서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중국은 이 힘에 의해 저렇게 급속도로 발전을 하고 있다고 평가를 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자녀들에게 그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학군이 좋다고 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좋은 학교에 들여보내기 위해서 아주 처절하리 만치 노력을 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밤새도록 공부를 시키고 구론 말할 수 없는 노력이 "치마 바람"이라는 문화까지 만들어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문에서 이런 말을 봤습니다. 요즘 서울에서는 영어를 잘해야 출세를 한다고 아이들의 혓바닥을 수술해준다고 합니다. 혀가 꼬부라져야 영어 발음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그릇된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무엇으로 힘을 줄 것인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우리가 가르칠 것인가에 갖가지 삶의 철학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돈이 힘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힘을 갖기 위해서 돈 버는 일이 있다고 하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열심히 하려고 사람들이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선진국에서는 빈번하게 있는 일이 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일수록 마약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약의 만연된 문제 때문에 사회가 위태로울 만큼 험악해졌습니다. 그게 얼마나 비싸게 매매가 되는지 마약 한 덩어리만 있으면 부자가 됩니다. 마약생산지인 중남미 일대에서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길을 철저하게 차단을 하니까 마약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하면 부자가 됩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심지어는 비닐봉지에 조그맣게 만들어 그것을 먹습니다. 그리고 미국 들어와서 화장실에 가서 똥을 싸 가지고 거기서 끄집어 내가지고 팝니다. 성공만 하면 굉장한 돈벌이가 됩니다. 문제는 뱃속에 들어가서 그것이 터져 많이 죽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합니다. 뭐, 일년에 수십 명씩 죽습니다. 돈이 힘이라고 하는 철학을 믿기 때문에 그런 위험스러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자기 몸을 상하고 보험금을 받아내는 일은 우리 사회에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더군다나 돈 몇 백불 얻자고 강도가 되어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선순위를 돈에다 힘의 철학을 두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권력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아주 열심히 갑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인맥 등등 힘의 철학은 우리 주변에 삶의 철학의 방향에 따라서 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거지 왕초가 있었는데 죽으면서 부하들에게 유산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낡은 공책 한 권을 주면서 "이것만 잘 보관하면 너희들 밥은 굶지 않고 먹고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 부하들이 그것을 받아보니까 그 인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제사 날짜와 생일 날짜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날에 갔을 때는 누구나 밥을 따뜻하게 주니까요. 무슨 힘이든지 있어야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갖고자 합니다. 힘 중에 어떤 힘을 가지고 살 것이며 우리 자녀들에게는 무슨 힘을 가르칠 것인가? 그것이 오늘 같은 날 우리가 생각해야 될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 첫머리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무엇일까? 그것을 아는 자가 힘이 있는 자다." 그것입니다. 이런 정리를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항상 어렵습니다. 갈보리 교회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 교역자들이 성지순례를 한번 가면 어떻겠냐고 자꾸 묻는데 성지순례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 사회 상황이 불안합니다. 죽어도 책임을 못 져요. 제가 갔을 때에도 사건이 일어나 골목마다 장갑차들이 총을 들고 있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1967년 전쟁 때 주변의 10개국이 뭉쳐서 이 유대 민족을 완전히 뭉개버려야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그 조그만 나라하고 10개국이 10대1의 전쟁을 했습니다. 결과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자기 국토의 3배나 되는 더 큰 땅을 차지했고 그 주변의 나라는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그 민족으로 하여금 불사조 같이 살아남는 역사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가들은 누구나 똑같은 평가를 합니다. 그 역사 평가란 인류 역사 안에서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유대인입니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세계사 공부를 할 때에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본국에서 사는 숫자보다 밖에서 사는 숫자가 훨씬 더 많은 특이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무슨 힘으로 그런 역사를 만들었는가? 나라도 강원도보다 조금 더 클까 말까한 조그만 나라이고 나오는 것도 없고, 돌과 산악, 모래밭뿐입니다.

어떻게 무슨 힘을 가졌는가? 성경에 나오는 큼직한 역사만 우리가 몇 가지 골라보면 그들은 바벨로니아 제국과 앗시리아로 연결되는 70년 간의 식민지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잡혀가서 남의 나라에서 70년을 살면서도 그들의 언어를 보존했습니다. 애굽 시절의 430년이라는 그 긴 세월의 잊어버릴 역사를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히브리 민족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다."라는 종족 보존과 언어문화 존속을 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의 곡창 지대는 전쟁이 24번이나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도 역사의 주인이 10번도 넘게 바뀌었습니다. 옛날 구약시대 말고 근세의 역사만 보아도 B.C 63년에서 A.D 395년까지 로마제국을 지배하에서 수백 년을 살았습니다. 아랍족에게도, 터키족에게, 십자군에게, 이집트에게, 오스만투르크, 나폴레옹 원정으로 1948년까지는 영국이 지배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 민족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민족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비로소 독립을 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아남는 힘이 되었는가? 물질의 힘이었는가? 돈은 없었습니다. 군대의 힘이었는가? 흩어져 사는 민족이었고, 정치적 힘이 있었는가? 과학의 힘이 있었는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신앙의 전승입니다. 그것 하나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 밖에는 그들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8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선수는 강력한 금메달 우승 후보였지만 안식일이라고 경기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 10년 이상 훈련을 받아 기록으로 보아서 절대적인 우승 후보가 여기 날짜로 토요일, 자기들이 지키는 안식일에 경기하니까 "NO!" 자기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에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날 경기에 나가서 금메달 따면 뭐하겠습니까?"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경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금메달이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아브라함 신앙의 전승이 그 민족으로 하여금 불사조 같이 살아남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그들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2절에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아니하리로다." 이게 무엇입니까? 여기의 내용으로 봐서 "세상이 다 뒤죽박죽 엎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누가 따라갑니까? 여기 알라못에 맞춘 노래로 처녀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누가 그들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도다."

그러면 그와 같은 철저한 신앙의 흐름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전승시켰는가?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 설교의 초점은 여기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 교육은 학교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가정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잠언을 보시면 그들의 신앙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말씀의 시작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것이 전승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을 이삭이 믿고 야곱이 믿고 네 아비의 훈계,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신앙 교육이 가정입니다. "네 선생님의 교훈을 들으며 전도사님의 법을 들으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랍비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랍비를 거역하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랍비가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교육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랍비와 아버지가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건지겠느냐?" 아버지 앞에서 말하니까 "아버지요!" 그랬더니 귀싸대기를 맞았습니다. 랍비라고 대답해야 정답입니다. 그렇게 랍비를 존경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에 보면 "네 랍비의 말을 들을 것이며" 이것이 아닙니다. "네 아버지,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 신앙의 전승을 떠나지 말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의 최고의 교사는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을 암송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써서 조그만 대롱에 집어넣어 문에다 붙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 가시면 유대인들이 경영하는 호텔을 가 보십시오. 들어가실 때 호텔 문을 자세히 살피면 호텔 방문마다 그것이 붙어있습니다. 그 안에 그 말씀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유심히 살펴보니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들이 잠옷 차림으로 그것을 손으로 붙잡고 막 울면서 기도합니다. 나갈 때에도 들어갈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만집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앙 교육 장소가 집인 것입니다.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너희 집에서 잘 해야 돼!"바로 신앙 교육의 교사가 부모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최고로 사랑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 자녀는 부모가 책임지지 못할 때 이 세상의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가정이 노력하지 않는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정말 힘이 될 만한 일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르치기는 고사하고 아이들에게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루아침에 위기가 닥치면 신앙이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70년간의 바벨로니아 식민지, 430년간의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도 그들은 안 무너졌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섭섭할 때 많습니다. 여름 성경학교 한다고 하면 그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있습니다. 식사비, 티셔츠, 교재비는 특수 프로그램이니까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고 교회들이 말하잖아요? 그거 뭐 얼마 됩니까? 일이만원정도인데도 교회에 와서 그거 깎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두 명이니까 절반만 내면 안 되냐?"고 하기도 합니다. 좀 더 내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걸 깎아 달라고 하니 아니, 세상에 교육을 위해 얼마나 많이 투자들을 합니까? 이거 뭐, 일년에 만원 정도 하는거 가지고 교회에 와서 왜 등록비 받느냐고 하고…. 아이들을 이런 신앙 교육으로 길러서 뭐 하려고요? 부모들이 이렇게 신앙 교육에 인색합니다. 어떤 때는 실망되어 하기가 싫어집니다. 아니, 세상에 내 자녀들 교육시키는데 레슨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고 얼마나 많이 투자하면서 그거 얼마나 된다고 여름 프로그램으로 신앙을 가르치는 것,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가정에서 훌륭한 신앙인을 키울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훌륭하면 됩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지요? 부모들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어떤 아버지는 이랬답니다. 공부 못하는 아들을 "야, 이놈아! 아브라함 링컨은 네 나이에 변호사가 되었는데 넌 뭐 하는 거야?" 그랬더니 아들이 "아버지 나이에는 대통령 됐는데 아버지는 뭐합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교회에서 A학점 교인인가? 아니면 문제아인가? 낙제생인가? 아이들이 다 평가합니다. 저에 대해 우리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 A학점 목사인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평가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은 자식들은 다른 교회 나가라고 합니다.

주일날 아침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훈을 했습니다. 돈 오천원 짜리를 하나 주면서 "너 오늘 교회 가서 이것 가지고 헌금하고 주일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하고 와!" 그렇게 말하고 골프채를 메고 나가니까 아들이 "아버지! 아버지!" 돈을 도로 주면서 "골프 치실 때 힘드시죠? 이것으로 아이스크림 사 잡수고 착하게 하고 오세요." 아버지가 멍해져서 '어? 이 자식 봐라?' "아버지는 인류 대학 나오시고 공부도 잘하셨고 돈도 잘 벌고 말도 잘하시고. 다른 아빠, 엄마들은 다 주일학교 선생님 하신단 말이에요! 아빠는 사회에서 성공하신 분이 왜 교회에서 아무 것도 안 하세요?" 이 얘기가 기독교 신문에 났습니다. "뭐하시는 거예요? 가서 아이스크림 사 잡수고 착하게 하고 오세요." 아버지가 아들한테 당한 겁니다. "야! 난 내년부터 할 거야, 이 자식아!" 이러면서 나갔다고 합니다. 성공한 부모일수록 가정에 소홀할 수 있는 비율이 높습니다.

영국에서는 요한 찰스 웨슬레 형제가 크게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들이 선교 활동하러 갔다가 대서양에서 큰 풍랑을 만나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고 통곡하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 형제는 지금 선교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죽는다고 하는데도 한쪽에서 몇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며 미소를 지으며 그냥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 형제가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 위험한 시기에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차분히 앉아서 기도하면 찬송하실 수 있습니까?" 알고 보니 그들은 모라비안파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풍랑 중에도 하나님이 계시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형제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우리는 지금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가는데 우리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이신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그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는구나!"라고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세계 선교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국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특별히 감리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은 찬송이 지금 찬송가에 있습니다. "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구주 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그 힘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자녀를 최고로 사랑하는 방법이 됩니다.

"어린이 주일 뭐 사줄까?" 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어린이 주일이 지나가고 어버이주일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생각하다가 나가서 아이스크림 두 개 사 가지고 와서 "오늘 어버이주일인데 이거 하나씩 잡수세요." 그리고 돌아서서 하는 말이 "어린이날 빚 갚았다, 더러워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부모가 훌륭하면 자녀들은 자연히 훌륭해 집니다. 오늘 그런 마음으로 어린이 주일을 지내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이 진리 하나를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가 확실하게 가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이 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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