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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에서 승리하기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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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밀려오는 예기치도 못한 고통과 아픔으로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겪어야 할 고통을 미리 알고 있을 때 그 고통과 함께 심리적인 긴장과 불안을 더욱 심하게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고난과 고통은 육체적인 고난 일수도 있고, 정신적인 아픔을 함께 겪어야 하는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고난이 상처와 아픔만으로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나의 태도에 따라 고난이 유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아들에게서 배신을 당하는 기가막힌 고난을 당하였지만 시편 119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를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욥기5:7절에서 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우리의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고통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고난이 우리 삶에 엄습해옵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난 가운데는 매우 일상적인고 보편적인 고난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한 생을 살다보면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 실패에서 오는 시련, 가정문제로 오는 시련, 믿음으로 당하게 되는 고난 등 수 많은 다양한 고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8절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이기었습니다. 고통을 이기었습니다. 조금도 비굴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앞에 두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길러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자신을 향해 침밷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기도할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을까요?
어떤 고통이 닥쳐올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위대한 비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떠한 고통과 고난이 우리에게 온다할지라도 승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고통을 이길 수 있을까요? 고난을 이기는 원리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고난을 대하는 태도를 통하여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가운데 승리하기 위해서

1.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라.(36-38)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의 마음이 연약해지셨습니다. 고민과 슬픔이 내리눌러서 그 자체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보와 요한 앞에서 그의 마음을 실토하면서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37-38절입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 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너무나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될 때 그 고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을 숨기고 싶어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체면문화와 수치문화가 강조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통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 아무에게도 그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의 선생이요, 메시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엄청난 고통을 앞에 두고 외롭고, 괴로운 그 날 밤에 고통을 나누며 함께 기도할 친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음이 괴롭고 고통을 당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혼자 염려하고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며 슬퍼하십니까? 누가복음 22;45절에서는 제자들은 슬픔으로 인하여 잠을 잤다고 하였는데 잠을 잡니까? 쇼핑을 합니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풉니까? 어떻게 하시는가요?
고난과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이기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한 가지 비결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함께 할 친구들에게 마음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까?
스위스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웃들의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었고, 유익한 책을 많이 썼던 [폴 투르니에]의 책에서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배우자와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부부의 애정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동성친구 가운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를 비판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경청해 줄 수 있는 친구 몇 사람만 있다면 인생에 아무리 무서운 폭풍우가 밀려온다 해도 우리는 그 폭풍우를 뚫고 지나갈 수가 있다."
인생의 고통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배우자와 마음으로 통하는 애정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비판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고통의 자리에 함께 하며 기도할 수 있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면 아무리 무서운 고통의 폭풍우가 몰아쳐 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교회는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입니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없다면 여러분이 먼저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을 함께 하여 기도하는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모두 함께 세상에서 아무리 험난한 고난과 고통이 와도 믿음으로 이기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함께 하는 친구들의 합심기도의 위력을 아십니까?
우리가 남모르게 홀로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위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16절에서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다윗은 사울이 죽이려는 그 고난 앞에 요나단에게 함께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에게 그의 마음을 이야기하였을 때 요나단은 "더욱 힘있게 주를 의지하도록 용기를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도 고난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친구들에게 마음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는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나 또는 디모데, 실라와 같은 진정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도 고난 가운데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과 어려움으로부터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가까운 믿음의 친구들에게 마음을 토하며 함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처럼 친구들에게 마음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승리하기 위해서

2. 하나님만 의뢰하라.(40-46)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곁에 갔다가 욥의 친구들처럼 상처만 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계를 겸손히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그 부분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순간에 제자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할 것을 원하였지만 그 고독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에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22:45절에 보면 슬픔으로 인하여 자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도움이 되지 못한 이런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9절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서서 손을 들고 성전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 기도가 절박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괴로움을 놓고 몸부림치며 생명을 걸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서는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친구들이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예수님은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그 마음속에 있는 좌절과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을 그대로 쏟아 내 놓으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생명을 다해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나도 자식을 낳지 못하여 당하였던 멸시와 마음의 괴로움을 그의 남편이 아무리 위로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전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옆에서 볼 때 술 취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단독의 체험이다."고 했습니다.
리전트 칼리지 학장인 [제임스 휴스턴]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우정에서 진정한 도움을 받지 못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나의 고통을 아시고, 내 한 숨소리를 아시고, 내 눈물의 의미를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고통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였습니다. 시편6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 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 리이다."
다윗은 삶의 절망 속에 그의 피난처이신 주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주님은 날개를 펴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 안에 들어오는 나를 받아주시고, 영접하시고, 눈물을 씻기시고, 위로하시고 안식을 제공하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고통 가운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래도 제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가서 지금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누가복음 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여호사밧이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역대하 20:12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전쟁을 하러가는데 하나님만 의뢰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래하는 자를 앞세워 노래와 찬양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윌리엄 커싱]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한 그런 목사님 이였습니다. 메시지를 잘 전하여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그런 목사님 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성대가 나빠져 버렸습니다. 설교자에게 성대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성대가 나빠져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끝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로 인해 이 목사님은 목회사역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절망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곁에 와서 위로하였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언제까지 이런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 끝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그를 위로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다시 소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는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위로가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슬퍼했던 고통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겨냈던 것입니다. 그는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위리엄 커싱 목사님은 다시 목회사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거룩한 시를 쓰는 놀라운 시인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위대한 찬송시를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하나님 앞에 특별한 방법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위리암 커싱] 목사님에게 임했던 동일한 주의 날개가 오늘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이 곤고 하고 삶이 고통스러울 때 날개 그늘을 펼치고 기다리시는 주님 앞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고통과 절망가운데서 승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난가운데 고통 가운데 승리할 수 있을까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가까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39-46)
[의미요법]이라는 심리치료법을 개발한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박사가 나치 독일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그 감옥 안에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 순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많은 사람이 먼저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가더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 고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면 우리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자신의 생각 자기 육신이 앞서서 비굴해지고,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난 앞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리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뜻을 이루려고 세 번이나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 번씩이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히브리서 11장에서 고난의 의미를 알고 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 고난의 의미를 알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죤 밀톤은 40세에 맹인이 되었고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 때 그가 쓴 글이 있습니다. "오, 주님!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내 영혼이 수그러짐은 나의 창조자를 섬기기 위함이니이다. 고난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고난 가운데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벤자민 슈몰크]목사님이 1648년 루터교회를 맡아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36개 부락이나 되는 넓은 지역에 교회가 단 하나 밖에 없었으니 목회생활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한 번 심방을 나가면 하루 종일 걸려 밤중에 오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습니다. 이 때 집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었습니다. 1704년 어떤 날 두 부부가 전도와 심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불이나 온데 간데 없고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불에탄 어린 아들 형제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부부는 한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마음이 고롭고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무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우리가 읽은 본문과 똑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성경인 마가복음 14:36 절 말씀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처럼 슈몰크 목사님도 기도하면서 통곡하며 울다 이 말씀이 생각이 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하나님의 뜻, 오직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나에게 있다면 나는 여기서 살아야 하고 일해야 하며 마침 그 뜻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내가 지금 고통 가운데 있다해도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참아 낼 것입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폭풍우를 뚫고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일어 설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예수님께서 그 놀라운 여유와 평안 속에 힘차게 일어서시며 실망을 주었던 제자들을 오히려 축복하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간 것처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승리하는 귀한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이기는 놀라운 지헤,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삶의 원리가 되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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