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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이 비추면 사물은 밝히 보입니다.(행 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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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의 3대 민속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설과 단오, 추석이 삼대 명절로 지켜져 왔습니다. 가배절, 중추절, 가위, 한가위 등으로 불려지는 추석은 정확한 기원은 모르나 신라시대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 되면 추석 2-3일 전에 조상의 묘를 찾아 잔디를 베고 잡초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새옷을 입고 햇곡으로 빚은 송편, 술, 과일을 차리고 고조까지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가 끝난 후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지키는 추석 문화는 이미 돌아가신 조상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 문화입니다. 일년 농사를 지어 햅쌀과 햇곡식과 햇과일을 거두고 그것이 조상의 은덕으로 된 것으로 해석하여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며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불신 가정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추석은 좋은 추억보다 나쁜 추억이 많은 명절입니다. "일 년 열 두 달 3백 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사람들을 말하는데 저는 "일년 열두 달 한가위만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때 성묘를 가지 않으려고 예수 믿지 않은 가족을 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른 것은 다 좋았는데 차례 문제와 성묘 문제로 가족들과 갈등을 빚져서 추석이 기쁨의 날이 아니고 피하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이 성묘 문제 때문에 아버님으로부터 부자관계를 정리하자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추석에 평안이 없고 기쁨과 풍요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축제로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면서 민속 명절인 추석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 보다 하나님께 나와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도 혹시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으신 성도님 계십니까? 혹시 반복되는 실패로 의욕 상실의 감옥에 갇혀 있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혹시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미로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 앞에 절망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혹 질병과 경제 문제로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으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둠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결국 어둠을 밝혀 어둠의 뜻을 이해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에게 풍요와 감사를 주시는 하나님,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결국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만나 어둠의 터널을 뚫고 진정 위로를 받고 진정 기쁨을 얻고 분명한 비전을 품고 힘차게 일어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바울도 긴 어둠과 고통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억울하게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방인들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죄목으로 유대인들을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예수님께서 고통에 잠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바울을 위로해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희망을 주십니다. 죽지 않고 로마에 갈 것이라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다면 얼마나 기대를 하겠습니까? 중병으로 쓰러져 절망 가운데 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죽지 않고 주신 사명을 다 이룰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힘이 솟아나겠습니까?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데 염려하지 말라 머지 않아 경제적인 부를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기대에 부풀겠습니까? 잠을 자다 좋은 꿈만 꾸어도 희망에 부풀어 로또 복권을 사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새 날이 밝아 오면 무엇인가 획기적인 일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이 새날이 밝아 왔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12절 성경을 보십시오. 어둠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겨우 로마 시민권을 통해 죽음을 면했는데 이제는 더 큰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2-16)

1)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더욱 깊어 만 갔습니다(12-14).
유대인들 중에서 열성분자 40여명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한 명만 회사에서 대적해도 힘겨운 일입니다. 40명이 죽이기로 작정하고 덤빕니다. 주님의 확실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희망의 새소식을 들려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음모는 더 깊어만 갔습니다. 일은 더욱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죽음을 향해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병은 더 깊어만 가고 사업은 더욱 어렵게 된 것입니다.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했는데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정당한 법으로 바울을 죽이지 못하니까 열정분자들이 암살단을 만든 것입니다. 맹세를 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금식하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자객팀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천부장의 군대가 바울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을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리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들 대제사장과 장로는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한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음모를 지지해주고 정당화시켜주는 배후 세력도 확보했습니다. 그 계획은 철저했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공회가 천부장에게 재심을 청구하고 로마 군대가 바울을 공의회에 출석시키기 위해 성에서 데리고 내려올 때 길가에 자객을 매복시켜 습격하면 바울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음모는 아무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둠 속에서 진행된 일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남모르는 고통, 우리의 질병, 우리의 어려움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바울을 도우셨습니다(16-21).
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음모가 그대로 진행되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았지만 극단적 상황으로 가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생질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가 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이 음모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돕는 자를 세워 바울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주님께서는 바울을 로마에 보낼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룰 때까지는 바울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이룰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을 살리는데 쓴 사람은 바로 바울의 누이의 아들입니다. 조카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성경에 단 한 번 나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와 바울의 생명의 살려 주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인물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은 결정 적인 순간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아마 바울을 이 위기로부터 구해낼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고 하나님 마저도 내 사정을 외면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조카를 준비시켜 놓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바울을 위기로부터 구출해 주었습니다.

3)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울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다 우리를 배반하는 것같고 다 원수인 것같지만 늘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 분이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수같이 생각했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건강을 일으켜 세우고 사업을 다시 세울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울 사람, 우리와 함께 뜻을 같이하고 일할 사람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사명을 붙들고 나가다 보면 누군가를 통해 도움의 손 길을 하나님께서는 펴 주실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고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사명을 성취하게 할 때 뜻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도와 주게 합니다. 우리는 잘 몰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바울에게도 때와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에 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와 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를 만나 사도들의 인정을 받게 만듭니다. 눈이 멀었을 때는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여 눈을 뜨고 사명을 받게 합니다. 신실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 교회를 개척하게 합니다. 아들같은 디모데를 만나게 하여 함께 동역하게 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광야 40년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라하니까 말이 둔하여 못한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출 4:14)" 하나님은 모세를 위해 대언자로 아론을 이미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인신 매매되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형들과 부모가 절하는 꿈을 꾸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디발을 준비시켜 놓아 그 집의 총무로 삼아 주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음모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술맡은 관원장을 준비시켜 놓았다가 그로 하여금 바로 왕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사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적을 베풀었는데도 여전히 이세벨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 홀로 밖에 없다고 하며 죽여 달라고 합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우리를 위로해 주고 도와 주고 격려해 주고 실제적으로 문제를 풀어 주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내어 도와 주시고 있으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 지쳐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하는데 세상 살기가 너무 힘이 듭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증거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제 끝이 난 것 같고 이제 홀로 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베드로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5)" 그리고 그 날 밤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는 풀려났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여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7-22)

우리는 바울과 같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의 과정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고난 가운데 침묵하시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어머니는 많은 고난의 과정을 거칩니다. 고난의 과정없이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비록 고난을 겪지만 그 고난의 과정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계속되는 고난의 과정을 겪고 있는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의 조카가 바울을 죽이려는 열성분자들의 음모를 바울에게 알려 준 후 사건은 그 후 어떻게 전개되었습니까? 인간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17절 이하를 보십시오.

1)죄수인 바울의 말을 불신자인 백부장이 마치 상관의 말처럼 듣습니다(17-18).
자신의 조카를 밑도 끝도 없이 천부장에게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입니다. 당시 로마 감옥은 세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공중 감옥(custodia publica)으로 보통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대개 어두운 지하실이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자유 감옥(Custodia libera)으로 상류층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군영 감옥(custodia Militaris)으로 군사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손과 죄수의 한 손을 함께 묶어 감시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이 군영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죄인인 바울의 요구를 들어 주겠습니까? 죄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 면회 온 사람을 경찰 서장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무슨 이야길 한 것만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경찰 서장을 만나게 해 주겠습니까? 그런데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백부장이 아무말 하지 않고 천부장에게 데리고 갑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천부장에게 갔습니다. 천부장은 어떻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2)불신자인 천부장이 친절을 베풀어 청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19-22).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순수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그 공회가 바울을 다시 재판하겠다고 부를 때 그를 보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40명의 자객을 숨겨 놓고 가는 중에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이 사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일개 시민의 제보를 믿고 국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부장은 신비하게도 바울의 생질의 말을 믿습니다. 천부장은 친절하게도 둘 사이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경계시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생질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음모자들이 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울 생질이 밀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울의 조카를 살려 주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음모가 들통났다는 것을 알면 다른 방법을 쓸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음모를 꾸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천부장이 바울 편이라 그렇겠습니까?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를 전에부터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겠습니까? 우연히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부장도 천부장도 우연히 그렇게 했겠습니까? 저는 고난 가운데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마음을 간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기 위해 과정 가운데 섬세하게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낯선 사람의 말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용기있게 산헤드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힘있는 자 권력있는 자의 마음도 움직이어 실제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은행장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집도하는 의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대적하는 힘있는 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3) 과정에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여서도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7-22)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 만 주시고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렇지 과정에 섬세하게 개입하셔서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이해를 못한다고 그 과정을 참지 못하고 원망하고 좌절하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의 과정, 어떤 긴 터널이 있을 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불신자의 마음을 세미하게 간섭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불신자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명 붙들고 쓰임받은 인물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섬세하게 도와 주십니까? 다니엘을 보십시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같습니다. 다행이 궁중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상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의 정조는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자신을 관리하는 환관장에게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환관장이 허락하였습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 1:9)"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환관장의 마음을 하나님 다스렸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지혜로워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자기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비록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지만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왕에게 고합니다. 왕은 기쁘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국경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려 주었습니다. 건축할 재료까지 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 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이방 나라 왕의 마음도 움직이어 도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불신자의 마음까지도 움직이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일지라도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불신자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사명을 이루는데 도와주는 자로 쓰임을 받게 만듭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에 핍박이 오히려 저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겨울 철에 잘 밟으면 잘 밟은 만큼 보리는 봄에 더 건강하게 자라 많은 수확을 거두는 것입니다. 바람으로 인해 오히려 배는 빨리 가는 것입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503장 2절)" 큰 풍랑이 있습니까? 그 풍랑 속에서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이어 항구에 도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미한 손길을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고난 가운데 처해 있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까? 23절 이하를 보십시오. 천부장은 즉각 어떤 조치를 합니까?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1)천부장의 권력 조직인 로마 군인을 사용하여 바울을 보호합니다.(23-24)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렀습니다. 그 때가 밤 제 삼시입니다. 지금 말하면 저녁 9시입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집요함과 폭력성을 익히 잘 알던 터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합니다. 음모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울을 밤에 빼돌리렸습니다.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로마 병력을 동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송이 아닙니다. 바울을 생명을 살리기 위한 철저한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 데 호위 병력을 무려 사백 칠십명, 자기 병력 반이나 동원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보병 이백, 마병 칠십, 창을 든 창군 이백명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 당시의 제도와 천부장의 권력을 충분히 이용하십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보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은 증오이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군인들이 사명자 바울을 살리는데 쓰임 받습니다. 악한 제도가 오히려 선한 도구로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악한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선하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타고갈 짐승까지 준비하였습니다. 자가용을 준비하여 태우고 가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부장의 이러한 조치가 바울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한 사람의 로마 시민이 자기의 관할 구역에서 무고한 희생을 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그이 권력을 통해 그의 조직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자연 재해가,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때로는 폭력적인 정권이, 때로는 고난이, 때로는 실패가, 때로는 사고가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천부장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더 상황은 나빠졌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사용하여 바울을 도와 주십니다.(25-35)
그는 총독에게 편지를 합니다. 그 편지 내용은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로마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은 율법에 관한 문제일 뿐 형사 처벌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바울을 해하려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간계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총독에게 이 재판을 맡기기를 원해 바울을 총독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총독은 이 편지를 받고 어떻게 합니까? 한 가지를 물어 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어느 영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황제의 직할지인가 아니면 지방 총독의 속주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바울의 출신지에 따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이었으므로 벨릭스는 자기가 재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서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무려 2년 동안(행24:27) 그곳에 결박되어 세월을 보냅니다. 로마에 가겠다는 사명을 받은 바울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천부장이 그렇게 까지 편지를 써서 선처를 부탁했으면 바로 석방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의 법정에 왔으니 당연히 석방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결과는 무엇입니까? 더 악한 사람에게 붙들려 있습니다.

당시 벨리스 총독은 노예 출신으로 총독이 된 사람으로 아내를 셋이나 두고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측근도 장애가 되면 살해해 버렸고 대제사장 요나단도 살해해 버린 사람입니다. 악명을 떨친 사람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바울이 왔습니다. 벨릭스라는 총독의 출신이나 전력, 인품으로 보아서 정당한 재판, 정상적인 재판으로 석방되기는 쉽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바울의 앞엔 첩첩산중이 놓여 있었습니다. 천부장에게 채찍으로 맞는 것이 고통스럽고 싫어서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재판을 받겠다고 해서 총독에게까지 왔는데 총독은 천부장보다도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너무 한 것일까요? 고난의 현장에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요?

3)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만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수모와 고통이 언제나 끝이 옵니까? 왜 어두움 밤이 계속됩니까? 2년 동안을 기도했는데 결과가 왜 더 안 좋은 것입니까? 이만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봉사했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빛이 드러나면 그 이유를 밝히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바울을 로마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보낸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벨릭스가 선한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의 편지를 받았으면 바로 석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활하고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2년동안 잡아 두었습니다. 만약 바로 석방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죽기로 금식하며 바울을 죽이려는 40명의 자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만 죽기로 작심해도 살아 남기 힘듭니다. 하나님은 그 악한 벨릭스를 통해 2년 동안 바울의 생명을 철저하게 보호했던 것입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바울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싶어 가이사에 가겠다고 상소를 합니다. 그래서 로마로 갑니다.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도 죄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로마로 보낸다고 해 놓고 왜 이런 꼴을 해야 합니까? 바울은 나중에 깨닫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1:12에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황제 시위대가 바울을 지켰습니다. 지금 말하면 경호실입니다. 최고의 엘리트들입니다. 바울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층에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유인으로 갔다면 어떻게 최고의 권력층에게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권력층이 변했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져 버린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갖은 고생을 한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요셉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수많은 세월 얼마나 질문을 했겠습니까?

"하나님 왜 억울하게 감옥에 가야하고 왜 이런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나의 고생은 언제나 끝이 납니까?"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어떤 고백을 합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깨닫습니다.
바울은 유대 땅에 머물던 기독교를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한 시대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명을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이루기 까지는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통과해야 했습니다. 사명을 이루는 앞길에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이 있습니까? 벗어나고 싶은 고통이 있습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으로 의욕을 상실하였습니까? 신앙의 기쁨도 마음의 평안도 이미 없어졌습니까? 오늘 이시간 바울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2-16)
2.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여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7-22)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잠 29:25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 김 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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