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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여 (롬 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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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인생의 삶의 모습은 발걸음과 같습니다. 나의 삶의 발걸음이 무엇이냐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어떤 발걸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헛된 삶의 발걸음을 바꾸어서 값진 삶의 발걸음이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애굽의 왕실에서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도망자로서 광야에 버려진 자와 같이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셔서 만나주신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신을 벗게 하셨습니다.(출3:4)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모세가 살아왔던 더럽고 때묻은 삶의 신발, 지치고 피곤한 삶의 신발, 의미성을 상실하고 무의미성 속에 살아가는 허무한 삶의 신을 벗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학정에서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발걸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값진 발걸음의 발을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사야 52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오실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의와 자비와 구원을 전하시는 발걸음의 아름다운 발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에까지 적용시켰습니다.

  아름다운 발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시는 발걸음의 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값지게 여기시는 삶을 살아가는 발걸음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발걸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은 어떤 것입니까? 정말 나의 발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값지게 여기시는 발걸음을 걸어가는 발입니까?
  바울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을 가진 발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여기시는 발임을 말했습니다.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은 우리인류에게 복된 소식인데,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의 발을 하나님은 아름다운 발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발이 값진 발걸음의 아름다운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발걸음이 하나님께서 아름답다고 하시는 아름다운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이 왜 아름다운 발걸음입니까?

  확신 있는 자의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확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확신 있는 것을 전하며 나눕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가 전하는 좋은 소식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 발걸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중에서 확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유대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새번역 9-13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확신하십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확신하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에 해당되는 헬라어 ‘퀴리오스’(κύριος)는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주’는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이라는 것과 그분이 우리의 죽음과 생명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믿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의 속죄를 위함이고 그분의 부활하심은 우리를 사망에서 살리시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 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믿는 확신 있는 성도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전 제자들과 유월절을 절기를 지키시면서 잔을 가지고 사례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바울과 베드로는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이라”(롬5: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이나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임이라”(벧전 1:18-19)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는 확신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절대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실 뿐 아니라 나의 인생을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시인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왕이신 우리주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어 구원받았다는 확신과 예수님은 우리로 부끄러움 당하지 않게 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우리의 왕이신 분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의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좋은 소식 안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 사랑 안에 살기에 그 삶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발의 걸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롬8:35)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고, 그 사랑 안에서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며 승리하는 삶을 살기에 그 발걸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채찍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 맞은 채찍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가죽을 가늘게 잘라 꼬는데 한 가닥 과  두 가닥 , 심지어는 7가닥 정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가죽 끝에는 나무를 길게 매달아 손에 움켜쥐면 딱 맞게끔 하고 그 끝에다가 다시 가죽 끝을 매달았습니다. 가죽  끈을 손에 칭칭 감으면 꽉 손에 움켜잡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채찍 마디마디에는 짐승의 날카로운 뼈를 쪼개고 갈아서 꼽고, 끝에는 엄지손톱만 한 납을 조롱조롱 매답니다. 사가들은 “이것을 가지고 내려치면 사정없이 살은 난도질되고 찢겨지고 순식간에 뼈가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옆구리 쪽으로 내리치면 창자가 쏟아져 나오곤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채찍으로 맞으신 것입니다.

  잔인한 로마의 군인들은 특별히 유대인 죄수들을 만나게 되면 이들에 대한 분노심 때문에 이 가죽 채찍을 물에 푹 담가놓았다가 내리쳤습니다. 이탈리아 트리노 성당에 보관되어있는 예수님의 수의의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채찍에 80번 정도 맞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핏자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 밑에서 종아리까지 채찍에 맞으시는 순간 온 몸은 검푸른 자국으로 멍들고 검푸르게 멍들은 자국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찢겨진 자국마다 납이 박혀서 살점을 뜯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가 응고된 등에 60kg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600m의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죄 지은 인간이 살아야 되는 이 땅의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듯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쓰러질 때마다 응고된 자국의 피가 터지면서 너무 많이 피를 흘려 골고다 언덕에 오르실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는 15㎝ 길이의 쇠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의 발목도 비틀어진 채로 함께 모아져서 못이 박혀졌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에 죽음이 확인되었고 염통에 창이 닿으면서 물과 피가 사정없이 다 쏟아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 하체를 수건으로 가려 놓았는데 예수님은 발가벗기 움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이란 것은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발가벗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신분의 사람이라고 해도 발가벗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는 수치요 부끄러움이요 창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사53:5-6)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상상해볼 때, 그곳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아픔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다시고 아들의 고통을 외면해야만 하는 사랑의 아픔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 사랑을 전해주는 발걸음이기에 그 발걸음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누는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발걸음은 아름다움입니다. 좋은 것을 나누어주는 발걸음은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나누어주는 자의 발걸음을 아름다운 발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2절)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의 좋은 소식은 나누어져야 할 소식입니다. 아름다운 발걸음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나누는 발걸음입니다. 이 나눔의 발걸음은 풍요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눔의 발걸음의 발은 아름다운 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새번역 14-15절) 
  복음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전해주는 자가 필요함과, 전해주기 위하여 보냄을 받는 자가 필요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서는 나누어주는 자, 곧 주는 자가 복됨을 말씀했습니다. 우리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귀한 것을 나누어주는 이웃사랑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구원하려는 뜨거운 사랑이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과 같은 나눔의 축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주일 저녁 스펄젼 목사님은 청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들이여,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잠자고 있는 여러분의 딸을 깨우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증거 하십시오. 왜 지금까지 이 선한 일을 미루고 있습니까?” 스펄젼 목사님의 이 말에 한 부인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부인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서 자고 있는 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딸에게 전도했습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너무나 간절한 전도를 받은 딸은 이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서 저에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주시기를 얼마나 바라고 기다리셨는지를 몰라요” 딸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후 이 딸은 훌륭한 주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주를 섬겼습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신다면 이 좋은 것을 누구에게 먼저 나누시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자식 내 가족이 아닐는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9:37,3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1:3)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축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할 수 잇는 아름다운 발걸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 성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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