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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않았다. (약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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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극복>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약 1:12)

한 남자가 비행기 운전교본을 들고 항공기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엔진에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조종간을 앞으로 당기고..." 책에 써 있는 대로 하나하나 과정을 잘 따라해서 드디어 멋지게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아~ 상쾌한 하늘의 공기!" 자~아! 이제는 착륙을 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그런데 아뿔싸! 책에 씌어 있는 글을 보고 사내는 사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착륙 편은 다음 호에 계속...... ㅠㅠ]

그리스도인 삶에는 종종 난감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와 쉽게 떠나지 않을 때에 당황스럽고 난감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새롭고 행복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짐이 벗겨지고 날아갈 것 같은 자유와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어떤 이는 예수믿고나서 오래 고생하던 두통이 치유되고 불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또 죄로 인하여 개인과 가정안에서 짓누르던 저주가 떠나가고 불행이 사라져 행복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과 치유, 기도응답과 기쁨등의 축복을 경험하며 아름다운 새 삶을 누리는 이들의 간증이 우리안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종종 예외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거나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때때로 시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친밀해지고 있음에도 현실은 경제적으로 가난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간절히 부르짖고 있음에도 질병이 우리를 위협할 때도 있습니다. 순전한 믿음을 지키려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는데 가정과 직장을 통해 핍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기대했던 좋은 것들이 별로 없고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섬기지 않았던 때보다도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외에도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시험 또는 시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시험이나 시련을 만나면 몹시 당황합니다. '아니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고 형통한다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목사가 순 사기친 것 아닐까?' 하며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시련의 기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흔들립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의 구원은 부도난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내가 다시는 교회 일에 관여하나 봐라' 하고 열정이 식어져 하던 봉사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박차고 세상으로 다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교회와 목회자 교인들을 원망하며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이토록 고난을 당하고 괴로와하며 부르짖고 잇는데 왜 응답하시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일까요? 약속하신 말씀대로 좋은 것을 상을 주시지 않고 시련속에서 신음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일까요? 악한 일을 일삼으며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일마다 형통하고 날로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는데..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손대는 것마다 떼돈을 벌고 자식들은 공부도 잘 해서 일류대학에 쏙쏙 들어가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유학의 문이 활짝 열리고, 좋은 것은 혼자 다 챙겨 먹고 생전가도 아프지도 않고 쌩쌩하기만 한데.. 오히려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나는 왜 이렇게 풀리지 않는 걸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로 실패속에 가난속에 질병속에 버려두어 언제까지 신음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불공평한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도우실 수 없을만큼 무능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이런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것에 관심조차 없으신 것일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의 대 선배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렘 12:1) <예레미야의 질문> "주님, 내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시편 73편에 아삽이라는 이의 시에는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73: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 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 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과 의롭게 살고자하는 우리의 시련을 보며 미끄러지고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는 영화로 치면 중반부에 불과합니다. The End 가 나오려면 아직 더 가야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구성에 있어 사건의 발단, 전개, 갈등, 클라이막스, 해결의 과정을 거칩니다. 반드시 중반에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은 중간에 있는 과정입니다. 그 갈등을 참아내고 통과하여 클라이막스를 거쳐 문제가 다 해결되고나면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갈등장면에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면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과정중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보려면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험을 참고 견디어 내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을성이 없습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참지 못해 뛰쳐나가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나의 머리로 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나의 가슴으로 용납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힘든 순간을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나의 몸으로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더욱 기도하며 참고 버텨야합니다. 시험과 시련의 순간은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지나고나면 이해가 되고 많은 유익이 숨어 잇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0세기 초에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보낸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치료해주며 복음을 전하며 문명과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선교사부부는 아프리카에서 힘들게 고생을 많이 하며 사역을 하고 마침내 은퇴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사역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휴가를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과 뉴욕으로 향하는 한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마침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항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선교회에서 마중나와 환영해주리라고 기대했으나 항구에는 선교사를 반겨주는 현수막도 없었고 그를 파송한 교회 교인들은 물론 그를 파송한 선교회 직원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선착장에는 요란한 환영 현수막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잇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관악대, 빛나는 제복을 입은 의장대, 주지사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였습니다. 선교사는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흐느끼며 아내에게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황금기에 헌신하여 최선을 다해 일함으로 사명을 성공적으로 다 감당했소. 많은 것을 희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실하게 봉사했는데 고국에 돌아와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아무것도 없지 않소! 그런데 이 양반은 몇 주 동안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코끼리 두 마리를 사냥하고 돌아온 것 뿐인데 영웅처럼 환대를 받고 있소. 이것은 정말 공평하지 않아!"

선교사는 허름한 호텔에 돌아와 짐을 풀었으나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마침내 응답을 하셨습니다. "얘야,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라. 너는 아직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잖니? 네가 영원한 집에 돌아오는 날 네가 오늘 보았던 것보다 더 훌륭한 악대를 준비하고 너를 맞아 주마, 오늘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천사들과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 너를 환영해 주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참고 견디면 우리가 참되다는 것이 입증이 되고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으로 보상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 고난중에 있습니까? 아직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까? 지금껏 애쓴 주님을 향한 모든 수고가 헛수고처럼 느껴집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받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뿐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 여러분의 믿음이 참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임합니다. 시련이 끝나고 웃을 일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질병이 끝나고 치유가 임합니다. 가난이 떠나가고 부요함이 찾아올 것입니다. 더 이상 실패가 따라다니지 않고 형통과 성공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시련과 고통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를 더 아름답게 성숙시키십니다. 더 큰 은헤와 신령한 선물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과 믿음과 지헤로 빛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시련을 통하여 준비가 끝나고 감당할 그릇으로 완성되면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큰 믿음을 소유하여 여러 시험을 잘 견디어 내는 큰 인물이 되어 크게 복을 받으며 더 존귀하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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