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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적인 서운함 (막 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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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서운함’이라는 제목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단 3구절로 이루어진 간결한 말씀입니다.
29절입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30절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31절입니다. 예수님이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장모가 예수님 앞에 수종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그런 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련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제 제자된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미묘한 심경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입니까? 우선은 이때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한 초기였으며, 또한 시몬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라야 요한, 야고보, 시몬, 안드레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충분히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한, 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야겠다고 전적인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머뭇거리는 형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나선다고 자신의 배와 그물, 가정과 집 등을 내놓고 전적으로 헌신했으니 그 모습이 장모의 눈에 어찌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여기에 장모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를 보여주는 조건들이 충분히 담겨져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흔한 말로 장모가 몸져 누운 이유는 화병입니다. 이 열병을 헬라어로는 “퓨레토”라고 합니다.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병은 두 종류의 영역으로 다 구분됩니다. 하나는 “노소스”입니다. 이것은 병약한 자에게 오는 내, 외과적인 질환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스틱스”입니다. 이것은 38년 된 환자나 12년 된 병들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즉 노소스는 병약함으로 오는 일상적인 질환이고, 마스틱스는 오랜 지병을 의미할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는 이런 병으로 누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장모는 퓨레토라는 열병으로 누운 것입니다. 이 열병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진찰을 하면 멀쩡한 것이 그 특색입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괴롭습니다.

사실 장모의 열병은 사위 때문입니다.
우선, 베드로는 결혼한 남자입니다. 이 베드로는 장가들어 아내와 장모, 그리고 동생을 돌보며 사는 건실한 젊은이입니다. 성경말씀에 몇 구절씩 나오는 말씀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배도 있고, 그물도 있고 또한 삯군을 두어 고기를 잡는 나름대로 규모있는 가업을 지닌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이전의 일을 내팽겨치고 오로지 예수님만 쫓아다닌다고 난리입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공감하시겠지만 대부분 장모님들은 딸을 무척이나 각별하게 생각합니다. 아낍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그런 관계가 형성된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딸들은 어머니와 친구같은 친밀함을 느낀다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 각별한 딸 장모 사이에, 더욱이 삶의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을 맡길 사람을 찾으며 모르긴 몰라도 이것저것 많이도 따졌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눈 조그만한 분들도 두눈 동그랗게 뜨고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사위감을 살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내딸 굶기지 않겠다 싶을 때 비로소 딸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시몬은 일등 사위감이니다. 우선은 나름대로 하나의 일가를 이뤄 고기를 잡은 일을 맡는 사람이니 우선 경제적으로도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사도행전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을 보면 전도여행을 하며 부부동반으로 함께 다닐 정도로 아내를 아끼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바로 베드로니 장모의 마음에 무척이나 흡족하였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위가 달라졌습니다. 예수에 바람이 났습니다. 예수라는 작자를 만나더니 잘 하던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나돌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온통 그일에 미쳤습니다. 심지어는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제느 배와 그물과 집과 자기 딸까지 몽땅 내팽겨쳤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속 터질 노릇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지금 집에 들어온 것이 매일매일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나선 이후 이제 처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병이 난 겁니다. 화병이 난 겁니다.
저는 여기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이 났구나, 아니면 베드로의 삶이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장모가 겪고 있는 열병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상숭배 때문에 열병이 생깁니다.

장모의 화병은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장모의 생각은 오로지 갈릴리 바다에만 가 있습니다. 고기잡이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원망하고, 사위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따라 가느냐? 이 바다를 버리고 말이다! 이 배만 있으면, 이 그물만 있으면, 이 기술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는데 왜 이것을 의지하지! 아무 기대도 없어 보이는 예수를 왜 따라 가느냐 말이다. 이젠 우리 집안 망했다” 하며 열병에 걸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살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의 영육간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 놓치 못하고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인해 좋아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며 사는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이 다 인줄 알고 살다가 그만 열병에 걸립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믿고, 자기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 당신께 달렸습니다! 하다가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돈 떼어먹고 가자 열병에 걸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에다가 중심을 두다가 그만 뻥하고 터지자 열병에 걸리고 마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지식, 자기 기술, 자기 힘, 직장, 경험, 처세에 대해 지나치게 믿고 하는 것 버려야 합니다.

생사화복의 주권은 우리 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시몬의 장모는 시몬을 믿었고 그 고기잡이 사업을 믿었고, 기술을 믿었고, 갈릴리 바다를 믿는 우상숭배하다가 열병에 걸린 것입니다.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을 사랑치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시름시름 열병을 앓는 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열병은 간음으로 인해 오는 열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오인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간음이란 육체의 간음도 말하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 짝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짝하고 또 짝하려 할 때 간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현실은 마다하고 감사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며 남의 과거가 좋아 보여서 남의 형편만을 바라보며 그것과 짝하고 싶어 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 집에 갔다 오면 열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현실에 대해서 따분하게 한심하게 여기면서 예수님과 멀어지고,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봉사에서 멀어지는 이러한 것을 간음이라고 하며 이 때 열병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현실통과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급급해서 꿈도, 소망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잠언서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자기가 처해 있는 가정과 모든 현실을 바로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은 세상적 차원의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꿈을 말합니다. 그 현실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최고, 최대, 최선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거기서 최선을 다 하며 성실을 다 할 때, 믿음으로 그 현실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바른 축복과 바른 구원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보는 기준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몬의 장모는 자기 현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거에 매이고 남을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으로 살다가 열병에 걸린 것입니다.


셋째로, 맡기지 못해 시험이 와서 열병을 앓게 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다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되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맡길만한 대상에게 맡겨야 하는데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 맡기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는 따르는데 믿고 따르는 목적이 아직 뚜렷하지 못하고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몬의 장모는 주님을 절대 의지하지 못해서 열병에 걸렸습니다. 주님께서 내 사위를 크신 뜻을 위해 부르셨으니 이제 내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주님이 내 걱정, 근심 다 없게 하시겠지! 이제는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내 현실에 충실하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언약해 주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주님은 나를 절대 절대 버리시지 않으신다! 이렇게 하지 않고 “야! 큰일났다” 하면서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하다가 열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시몬의 장모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입술로는 믿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하면서도 정작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지 못해서 시험을 당하고 열병을 앓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데, 안 맡긴 내가 아니겠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셨는데도 내가 근심하고, 너희는 두려워 말라, 떨지 말라 내가 너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는데도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두려워하고 사건이 오면 벌벌 떠는 내가 아니었습니까? 다 맡겨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원망, 후회 때문에 열병이 생깁니다.

괜히 내 딸을 시몬에게 주었다. 그때 주지 말 것을 기왕에 주었으면 참 잘 주었다 해야 하는데 이게 아닙니다.
이게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요소입니다. 주어진 사건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는 다 이 원망의 열병이 납니다. 감사가 없으니 인색해지고 인색이 깊어지니 예수님이나 팔아서 뭘해 볼까 하는 가룟 유다 운동이 일어나 하나님과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어쩌자고 내 사위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 그것까지는 내가 양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날 요 모양, 요 꼴로 두실 겁니까?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뭘 좀 보여주시든지 생각지 못할 축복을 폭포수같이 주십시요! 그래야 내가 믿지요!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아니 사람과 싸워도 어리석은데 그래 하나님과 싸우다니 되겠습니까?

원망은 곧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만은요? 사람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원망과 불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원망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날 그냥 두시지 예수 믿게 하셔서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십니까? 환란을 당하게 하십니까? 이럴 때 예수 안 믿었으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텐데 내게 믿음을 주셔서 못하게 하십니까?” 하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원망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은 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요. 사람 낚는 어부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게 얼마나 커다란 은혜요, 축복인데요. 감사해야지요! 그래도 주님 감사해요!“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이럴 때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 주셔서 죄 안 짓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고 예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이렇게 열병에 걸려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찾아가서,
눅 4:39에 보면 꾸짖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열병에 걸린 것에 대해 꾸짖음을 받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축복이요, 영화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나를 꾸짖으시는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오늘도 지금도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이 치유의 기적과 역사는 세계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상하시고 채찍에 맞아주심을 내가 믿을 때에 나에게도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쁜 일입니다. 우리의 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전이기에 깨끗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의 영혼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연약함을 고쳐주시는 치유의 역사가 이 자리에서도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손이 이 시간 열병에 걸린 내 마음과 내 머리와 내 영혼을 잡으실 때 여러분 속의 열병이 떠나가고 시몬의 장모처럼 주를 위해 봉사하는 참된 일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워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상숭배하다가, 간음하다가, 맡기지 못하고 시험에 들어 또 원망하다가 들어 눕게 되는 것입니다. 열병에 걸리면 교회출석도, 충성도, 봉사도 누워 버립니다.

이런 나를 주님은 말씀 중에 찾아오셔서 치료하심을 믿고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치료함 받아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열병에 걸리지 않도록 말씀으로 나를 단속해 나가시는 거룩하고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 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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