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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제사장으로 살라 (벧전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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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새벽기도회 때 베드로전서를 묵상하면서 저 개인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읽어보면,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제사장됨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합니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벧전 2:9에서는 그리스도인된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는 제사장이란 의식이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라고 하면, 구약의 제사장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한, 어떤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로 이야기 하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 사람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후로, 더 이상 제사장은 따로 구별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친히 자신을 제물로 한 번에 드리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사 의식을 따로 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는 제사장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이 후, 종교개혁자들이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이요, 예수 믿고나서는 마땅히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목사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제사장입니다. 목사만 제사장으로 살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으로 살되, 특별히 오늘 본문에 근거해서 축복의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축복하는 일입니다. 제사장은 제사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꼭 하는 일이 있는데, 그 것은 남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위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축복하는 일입니다. 축복은 본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권을 위임받아서 대신 축복하는 것입니다. 마치 축복의 대사와도 같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권을 위임받아서 자신의 12아들을 축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세우시면서, 이미 축복권을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 축복권을 지금 잘 사용하시고 있습니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억원인가 하는 복권에 당첨이 되었는데, 자신이 당첨된 줄도 모르고 신고 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그만 그 복권이 쓸모없이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수억원, 수십억원 복권보다 더 값진 축복권들이 주어졌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축복권들을 다 사용도 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다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억울한 인생이 되지 않토록, 억울한 삶이 되지 않토록 하기 위해서, 그 축복권을 다 쓰라고, 사도 베드로가 오늘 강하게 권면한다. 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여기서 마지막으로 말한다는 것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것만은 잊지 말고 마음판에 꼭 새기고 이대로 살라는 뜻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깝게 지냈던 베드로가 마지막이란 말까지 쓰면서 강하게,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은 무엇일까? 이 말씀은 공동체 내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한데, 먼저는 모든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해서 체휼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 인간적으로 실천하기 힘든 말씀을 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축복권을 누구에게 사용하라고 했습니까? 내게 악을 행하는 사람, 내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조금만 피해를 입어도 책임을 묻고 법적으로 고소하는데, 성경은 정반대입니다. 내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 대해서 악으로 갚아서는 안되고, 내게 모욕을 준 사람에게 대해서 욕으로 갚아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 사람들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은 “도리어 복을 빌라”, 축복권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잘해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축복권을 사용하지 말고, 내게 피해를 준 사람, 내 인생을 망치게 한 사람을 향해서도 축복권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본래 축복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지만, 하나님 대신 우리가 그 축복권을 위임받아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축복해야 하는 것이요, 그렇게 축복권을 사용해야만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복주십니까? 축복권을 남에게 다 쓴 사람, 특히 도저히 축복권을 쓰고 싶지 않은 대상을 향해서도 아낌없이 다 쓴 사람을 복주십니다. 게으르든지, 인색하든지, 속이 좁아서 그 축복권을 다 쓰지 않은 사람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설사 복을 주신다고해도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쓰지 않은 축복권은 쓸모가 없어져서 다 쓰레기처럼 버리게 되고, 나중에는 축복권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꼭 물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로부터는 여러분은 꼭 축복의 제사장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안 살았으면, 지금 이순간부터라도 현재까지 적체되어 한가득 쌓여 있는 축복권을 부지런히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행복해지게 됩니다. 본인도 행복해지고 남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우리 교회의 별칭은 ‘예닮골’입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골짜기’(‘예수를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 골짜기’) 예닮골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축복의 제사장들로 살아야 합니다. 아낌없이 축복권을 다 사용해서, 우리 교회 안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히고 샬롬의 축제가 날마다 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서 축복이 흘러 넘쳐서, 그 축복의 바이러스가 강남 일대로, 서울 전역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축복권을 사용할 것인가? 처음부터 원수같은 사람에게 축복권을 사용하기가 어렵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시면 됩니다. 가족, 교우, 친구, 직장사람들...... 우선은 매일 함께 사는 가족, 남편, 아내, 자녀, 부모님, 시부모님을 축복하는 실습을 하시면 됩니다. 가족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수고를 당연시 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시로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가족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화목해집니다.

    저도 가족을 향한 축복권을 많이 실습하려고 합니다. 요새 축복권 실습을 위해서 아주 좋은 도구가 나왔는데, 휴대폰 문자 메시지입니다. 우표 붙이지 않고 굳이 우체통까지 않아도 금방 쓴 편지 2-3초 내로 전송해서 상대방이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지난 주간에는 아내에게 한 번은 이런 문자메시지를 전송했습니다. 비밀이지만 공개하겠습니다. ‘아내를 크게 축복합니다. 최진실보다 더 이쁜......’ 요새 최진실 씨가 무슨 드라마에서 열연한다고 하는데, 그 분보다 더 예쁘게 보여서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답변이 왔는지 아십니까? 아무런 답변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은근히 이런 답변을 기대했습니다. ‘남편을 크게 축복합니다. 배용준보다 더 멋진......’ 혹은 ‘남편을 크게 축복합니다. 다니엘 헤니보다 더 잘 생긴......’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렇지만 저녁식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반찬, 몇 가지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축복권의 위력이 얼마다 대단한 것인지를...... 여러분도 오늘부터 가정에서부터 축복권을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십시요. 자녀를 향해서, 부모님을 향해서, 시부모님을 향해서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십시요. 비록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러면 그 축복이 배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축복의 강물이 흘러넘쳐서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하고 싶어집니다. 교우들도 축복하게 되고, 이웃집 사람들도 축복하게 되고, 직장 사람들도 축복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에 오셨는데, 그냥 눈인사만 하지 마시고, 한 분 당 10명 이상 축복해보십시요. 특별히 축복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냥 ‘축복합니다’ 한 마디만 하셔도 됩니다. 미소를 머금고......

    마지막으로는 원수같은 사람들에게도 축복권을 많이 사용하십시요. 오늘 본문에 증거된 것처럼, 내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 내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도 오히려 복을 빌어 주십시요. 처음부터 이 것이 힘들면, 기도부터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 내가 저 아무개를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복을 빌어주라고 말씀하셨사오니, 말씀에 순종하여 저 아무개를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저 아무개를 축복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면, 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스데반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그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현대인의 성경) 이는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오히려 축복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눅 6: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큰 상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 그 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도 인자하시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 악한 사람도 축복하신 분입니다. 축복의 아량, 축복의 스케일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축복의 아량, 축복의 스케일을 넓혀야 합니다. 은혜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 악한 사람에게까지 넓여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닮기를 힘썼던 바울이 롬 12:14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요” 누구나 저주권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저주권을 사용할만한 그 자리에서도 축복권을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사단, 마귀를 우리를 자꾸만 시험에 빠지게 해서 남을 저주하도록 유도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그 유도에 넘어가지 말고, 그럴수록 더 축복권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사단, 마귀가 두 손들고 항복하고 달아납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우리 서울중앙교회가 예닮골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진앙지가 되어서, 우리 교회 안에서 축복의 강물이 흘러넘쳐서 축복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과 온 세상에 널리널리 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축복의 메시지를 서로 전해주고,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 역사가 날마다 있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 브니엘 기도회 때 ‘사랑의 주님이’라는 복음송을 불렀습니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듯, 나도 널 사랑하며 섬기리’ 이 노래 가사 중 ‘사랑’이란 단어를 ‘축복’이란 단어로 바꿔서 부르니, 더욱 은혜로왔습니다. ‘축복의 주님이 날 축복하시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축복의 주님이 날 축복하시듯, 나도 널 축복하며 섬기리’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축복의 제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주님이 나를 축복하며 섬기셨듯이, 나도 나 아닌 모든 사람을 축복하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영광된 직분을 받았습니다. 축복의 제사장! 일평생 축복의 제사장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시고 섬기며 살아가셔서, 여러분 가는 곳에 천국의 축복이 강물처럼 넘쳐 흐르게 되고, 죽어가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소성의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충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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