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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 부흥의 길 (합 3:1~3, 행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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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전승으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레위인이었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엘리사가 살려준 수넴 여인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회의가 많아 ‘구약의 도마’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 시기에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포로기가 끝나기 2년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하박국서는 소선지서입니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은 책이지만 신약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외경 ‘벨과 용’에 보면 하박국이 밭을 갈고 있을 때 천사가 그의 손을 끌고 데려다가 다니엘이 갇혀 있는 이방 감옥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하박국은 죽을 쑤어 갇혀 있던 다니엘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하박국 제1장에서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합니까?”, “왜 악인이 잘되고 성합니까?” “왜 악인으로 하여금 의인을 고통당하게 만드십니까?” 이런 문제가 하박국의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2장에서는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2:4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질문에 해답을 주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해결 후의 하박국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는 3:2에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하박국 당시에 백성은 포로가 되고 나라는 황폐했습니다. 성은 무너지고 국민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하박국의 고민은 더 해갔습니다. 그는 억울하고 비참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전 역사의 고민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을 당합니까?” “왜 이방인이 우리보다 잘 삽니까?” “왜 우리를 오랫동안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않습니까?” 하박국의 기도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의심의 돌파구였습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당면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침체합니다. 경제도 침체합니다. 사회도 혼란합니다. 이런 때에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의 부흥이 요청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은 하박국에서 바울에게로, 바울에게서 어거스틴으로 그리고 루터로 이어지면서 신앙의 근간이 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성경적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부흥이란 영어 단어, ‘revival’은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지칭합니다. 없던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되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은 것이 많아집니다. 작은 것이 커집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로마서 1:7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가 무엇입니까? 앞의 믿음은 무엇이며 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믿음이 커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성장이며 신앙 부흥의 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다시 부흥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신앙사경회는 우리의 작은 믿음이 커지는 신앙부흥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신앙부흥은 의를 지킴으로 일어나는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우리의 부흥이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이 주의 일의 부흥입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6:10에는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바울도 디모데도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의 일을 힘쓰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8에서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의 일입니다. 주의 일의 부흥이 우리의 관심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의 책에서 “거룩한 삶은 미소를 띠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이 내 삶입니다. 이것이 주의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하박국은 의를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의를 지키는 일은 당시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악한 자가 왕성합니다. 마음에 많은 회의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그의 마음에 위기를 조장합니다. 그러나 악한데 가담하지 않고 하나님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고난이란 하나님의 의를 지킴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의를 지키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부흥케 하는 기본자세입니다.

  사이토 다카시가 쓴 ‘코멘트력’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부시를 죽이면 범죄자이지만 후세인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인을 죽이면 테러지만 이라크인을 죽이면 정의라고 합니다. 이런 인간적, 주관적 의가 아닌 성경적 의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의입니다. 승리가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옳은 것이 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체타카’라고 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소질입니다. 신약에서는 ‘디카이오수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행위의 법칙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른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당시에 의인이었습니다. 모두 악한 때에 의로운 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악하게 살 때는 악하게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의롭게 살았습니다. 욥은 당시에 의인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왜 팔복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등장합니까? 사람들이 아예 의를 추구하지 않고 삽니다. 나아가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하십니다. 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욕하고 박해를 당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합니다. 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팔복 가운데 의에 대한 대목이 두 번 나옵니다. 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것이 신앙부흥의 길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행동을 하게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 우리가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의로운 생각이나, 의로운 행동이 아니라 의로운 백성 되는 것이 신앙부흥의 길입니다.

둘째, 신앙부흥은 회개와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여호와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하박국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간절한 바람입니다. 하늘의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일은 첫째는 회개와 기도를 통하여 신앙부흥이 가능합니다. 모든 신앙부흥은 회개의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때든지 회개의 기도 없이 교회가 부흥된 적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루에 세 번씩 하는 기도였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하였습니다.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자기의 공을 나열합니다. 여기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참 기도는 아닙니다. 신앙의 성장이나 부흥도 꿈꿀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5:7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합니다.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가 세리입니다. 세리의 기도를 보세요. 이 사람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회개가 있는 기도가 참 기도입니다. 이런 회개의 기도가 신앙의 성장이 있고 부흥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주님이 거둬주시는, 잡아주시는 손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죄 사함이 있는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이며 미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무디는 “위대한 하나님의 운동은 모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크게 부흥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회개의 무릎이 회개의 기도가 신앙의 부흥을 가져옵니다.

  유대인이 생각하고 있는 기도의 의미는 ‘히트파렐’입니다. 히트파렐은 ‘스스로를 평가한다’ 혹은 ‘자기를 달아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달아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회개하고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어떤 기도는 경배이고, 어떤 것은 회개이며, 어떤 것은 찬양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경배와 회개와 찬양 이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해야 참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하고 이런 기도가 부흥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ACTS라는 네 가지로 요약하여 기억하면 쉽습니다. 찬미(Adoration), 고백(confession), 감사(Thanksgiving), 간청(Supplication)이 그것입니다. 고백이 무엇일까요? 고백은 회개입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고백 즉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고해를 성사라고 합니다.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하는 것은 성례입니다. 신부에게 고해하고 죄사함의 선포를 받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예식입니다. 우리는 목사에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합니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만이 성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성례처럼 거룩하게, 매일 진지하게, 간절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기도이며 이것이 개인의 신앙부흥의 길입니다. 세례나 성찬을 받지 못하고도 구원 얻을 영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없이 구원받을 영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의 기도를 통하여 신앙의 부흥을 가지고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신앙사경회도 우리가 회개의 기도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신앙부흥이 가능합니다. 베드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비굴한 항복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외침이 아닙니다. 새로운 변화와 자신의 내면의 개혁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부흥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완전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완전히 옛 생활에서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회개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변화와 개혁이 부흥의 요소입니다.

  새롭게 함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아나카이노스’는 사고의 중대한 개혁을 암시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화와 성장을 위하여 때때로 그동안 의존해온 우리의 껍질인 구조와 외형을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성장과 부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22-24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벗어버리는 회개는 새롭게 되는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새 사람을 입는 개혁을 가져옵니다. 여기에 부흥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한 제자는 바다에 나갔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바다의 유혹을 받지 않으려고 바다로 향하는 창문을 막아버렸다고 합니다.
  영적 성장이란 꼭 변화를 의미합니다. 믿지 않는 삶에서 믿는 이의 삶으로, 죄 많은 삶에서 경건한 삶으로 변화를 의미합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사람이 변화되고 사람이 변화되면 문화와 세상이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이며 성장입니다.

결론

  2007년은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이 전국으로 불같이 번진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새로운 부흥의 불실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올해에 있었던 특별새벽기도회의 감동이 우리의 부흥의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에는 다시 40일 특별새벽기도회로 부흥운동 100주년을 우리교회에서부터 일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2005년 신앙사경회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깨우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으로 깨우치고, 신앙이 부흥되고, 신앙이 성장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이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소서”.

  하박국의 이 기도가, 이 소망이 우리의 기도가 되고, 우리 교회의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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