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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벳세다 광야의 기적을 체험하라 (마 14 : 13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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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마 14 : 13 - 21
제 목 : 벳세다 광야의 기적을 체험하라

세상의 모든 성도들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또 축복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줄로 압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다닌다는 것 말고, 세상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삶 속에서, 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저들의 능력 이상으로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자신의 인생에 이런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지극히 적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진, 특별한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특별한 감동이 별로 나타나질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며 전도를 하지만, 그들이  잘 호응을 하지 않고, 우리가 전한 그 복음을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 눈에 보여지는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무엇을 전합니까?  천국을 전하고, 이 땅에서의 축복을 전합니다. “예수 믿으면 영혼의 구원받고, 이 땅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믿습니다. 전혀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불신자들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를 통해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천국 복음을 먼저 전파하고,  나중에 이 땅에서의 축복을 전합니다만,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축복이 먼저이고, 영혼 구원은 나중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의 축복을 먼저 체험하는 것을 보게 되면, 영혼 구원에 대한 복음도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저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신앙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서, 저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를 통해,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그들은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이런 확실한 증거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이 자리에는 계실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오늘 이 시간에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덧입어야겠고, 또한 새롭게 약속하시는 축복도, 이후로 다 누리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오늘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더하시고, 과거에 이러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은혜를 받으시고, 이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꼭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놀라운 축복의 기적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방법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룬 말씀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닙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된  기적입니다.  족히 2만 명이 넘는 인원이, 그 벳세다 광야에서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설명이 되질 않는 사건입니다.  어찌 한 아이의 도시락 분량으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적인 일이 가능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주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체험하며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주님이 계신 현장에 우리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13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주님이 어디에 계셨다고 했습니까?  무리를 떠나 배를 타시고, 따로 빈 들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떠했습니까? 주님이 계신 그 빈들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좆아 갔다고 했어요.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었던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중교통 수단이 특별하게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주님이 계신 곳은 빈들이라고 했어요.  벳세다 광야입니다.  광야란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 먼 곳을 여러 고을에서 힘들게 주님을 만나기 위해 걸어왔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이렇게 주님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병 고침의 은혜를 입고자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14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베푸신, 주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은혜가 어떤 사람에게 임했습니까?  주님이 계신  그 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원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육신을 움직여 의지를 가지고, 주님을 향해 나아온 사람들만이, 이런 주님의 은총을, 주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시고, 언제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나아가지 아니한다면,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생각만 있지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원만 있지, 주님을 만나러 나오는 신앙의 모습은 없다는 것이예요.
오늘 이 벳세다 광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거의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입니다.

14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바라보실 때, 그들의 처지가 한 눈에 보아도 불쌍하게 보였다는 겁니다.  누가 보아도 가난한  사람이요, 병든 사람인 줄 알 정도로, 그들의 처지는 딱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병을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만나러 그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심지어는 병든 육체의 고통을 마다않고, 오직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일념을 가지고, 주님이 계신 그 벳세다  광야로 나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여러분도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 때마다 나오시길 바랍니다.  기도 시간 마다 나오시길 바랍니다.
벳세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이 엎드려 기도하신 기도의 장소입니다.  벳세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을 증거하신 예배의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계신 벳세다 광야가 어디 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이 곳 벧엘교회 성전인 줄 믿습니다. 

이 곳 성전에서 말씀을 증거 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지금 형편을 생각해 보세요. 참 불쌍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가난합니다.  우리의 심령이나 육신도 병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부족하고 초라한 모습이 주님 보실 때에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부요한 자요, 건강한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주님을 굳이 시간 시간마다  만나러 나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다가 책망을 받은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어느 교회입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계 3 : 17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님이 이런 생각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8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흰 옷이 무엇이며, 안약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육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말씀 19절 상반절을 보세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 주님이 무리를 향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잔디 위에 앉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뭐 그리 중요하고 대단한 말씀이냐?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그때 벳세다 광야의 상황을 한번 연상해 보세요. 해가 이제 저물어 갑니다. 저녁때가 되어 배가 고플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제자들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지금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자 하는 상황인데, 지금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병이어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보리 떡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한 아이의 도시락입니다.

물고기를 쌓아 둔 것도 아니었고, 보리 떡을 쌓아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작은 도시락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 위에 앉으라 했을 때, 아무런 불평도 없이 질서 있게 앉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순전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저 단순하게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순종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순종에 은혜가 임하고,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즉시 순종입니다. 
주님 그들을 부르실 때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따라 나서면 득이 되느냐 손해 보느냐  따지지 않았습니다.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 말씀이시니까,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제자의 반열에 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벳세다 광야의 사람들과 같이,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 말씀 하시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없을지라도, 그저 눈에 보여지는 것은 한 끼 분량과 같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앉으라 하면 앉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가라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설 줄 아는, 순종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어떠한 말씀이라도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게 되면,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도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기적 체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의 신앙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자신이 가진 오병이어의 도시락을 주님께 드린, 한 어린 아이와 같은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만 보면, 꼭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도시락을 가져 온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 6 : 9절에 보면,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도시락은 한 어린 아이의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리게 된 것입니까?
15절 말씀에 보면,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배고픈 무리들을 염두에 두고 염려스럽게 제자들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주님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16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지금 자신도 먹을 때 꺼리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어린 아이가,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신이 가진 도시락을 제자들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사실 이 어린 아이가, 자신이 드린 도시락으로, 잠시 후에 2만 명이 넘는  무리들을 다 먹이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줄 압니다. 그저 단순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헌신은 적시 적소에 이루어진 헌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들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헌신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주님의 필요를 헤아릴 때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필요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메시지를 통하여 주님의 필요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를 귀 기울려 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무엇입니까?  관심입니다.
이러한 관심이 있을 때, 주님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관심이 있을 때, 비로서 헌신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관심은 가졌어도, 주님의 필요를 깨달아 알았어도, 그 때 헌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버스 지나가 버린 다음이라는  겁니다.  은혜의 기회를 놓쳤고, 축복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적시 적소의 헌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는, 바로 이런 적시 적소의 헌신을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헌신하기가 쉬웠겠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입니다. 그것도 보통 때의 도시락이 아닌, 바닷가의 한 산에서 소풍 나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 여러분 얼마나 귀하고 귀한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어린 아이는, 주저 없이 자신의 것을 드렸다는 겁니다.  바로 이 헌신을 통해, 그 유명한 벳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주님 앞에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적시 적소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헌신은 주님의 필요를 헤아릴 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형편을 헤아릴 때 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는 그 아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전부를 드렸지만, 그는 결코 주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다 배불리 먹고, 자신도 여유있게 싸 가지고 갔습니다.  모든 무리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리고도 남은 것이 얼마였습니까? 
열 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 남은 것은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한 양식으로 또한 사용되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시적소에 이루어진 헌신의 결과가 이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의 헌신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부요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과 제자들의 사역에도 큰 힘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야 말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의 교훈을 여러분 마음에 꼭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헌신을 주님 앞에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헌신하겠다고 작정만 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헌신을 통해, 오늘 여러분에게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의 신앙에, 앞에서 먼저 이야기 한,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주저 없이 찾아가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신앙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축복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그 기적의 축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서의 귀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벧엘교회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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