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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례주일]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마 26: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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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으심이 임박했습니다. 죽음을 앞두시고 맞이하시는 마지막 저녁식사입니다. 때는 목요일입니다. 그의 열두 제자와의 마지막 만찬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아름다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까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월 29일에 “죽음학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잘 죽는 법을 찾아보자는 운동입니다. 잘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잘 죽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참 뜻을 이해해야합니다. 왜 인간은 죽어야합니까? 암이 인간을 죽인다고 합니다. 루게릭병이 우리의 몸을 돌덩이처럼 만듭니까? 다 골치 아픈 현대인의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정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걱정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 하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권위의 도전입니다. 그러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씨앗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죽음입니다. 

Ⅰ.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은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째가 유월절준비(17~19)입니다. 둘째가 가롯유다가 예수님 배반(20~25) 세 번째가 최후의 만찬(성찬예식, 26~30)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성안에 가라. 우리 선생님께서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당신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이 일을 맡아 준비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한 장소는 예루살렘 성안의 어느 다락방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 사는 유대인은 유월절 만찬은 반드시 예루살렘 안에서만 먹어야했습니다.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무교는 누룩이 없는 빵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이집트의 종으로 있다가 애굽을 탈출하기 전날 밤입니다. 양을 잡습니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릅니다. 누룩을 넣지 아니한 떡을 먹습니다. 쓴 나물을 먹습니다. 문설주에 피가 발려진 집은 무사합니다. 그러지 않은 집은 천사가 와서 사람이나 짐승 가리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난 것은 모조리 죽였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무교절은 유대 달력으로 니산월(양력 3,4월) 15일부터 21일까지 지킵니다. 7일입니다.(레23:6, 민28:17) 무교절 첫날이란 밤 13일을 가리킵니다. 곧 목요일 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드디어 제자들과 역사적인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때에 예수님이 가롯유다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롯유다는 3년 제자훈련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열두제자의 살림을 맡아 살았습니다. 그도 전도했습니다. 이적도 행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구세주를 돈 받고 팔았습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저는 이 말씀을 배우면서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제 선배, 제게 은혜를 입힌 스승, 이런 사람을 섭섭하게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우리도 돈이나 명예 때문에 흔들릴 때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사랑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 사랑이 바로 최후의 만찬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별 볼일 없는 우리를 위해 구원하기 위하여 외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겪는 가장 힘든 죽음입니다. 유월절 전날 밤의 정막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Ⅱ. 모두를 주신 예수님

“이것은 너를 위해 주는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찬예식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가락 하나 잘라 줄 수 있습니까? 눈 알 하나 뽑아 줄 수 있습니까? 그럴 마음은 간절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힘이 들지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바로 성찬식을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입으로야 누가 사랑을 말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실천한다는 것 그리 쉬운 것 아닙니다. 시간도 못 바칩니다. 돈도 못 바칩니다. 그러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진실한 찬송이어야지요.  “죽도록 충성하겠네” 찬송처럼 살면 멋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 다 주셨습니다.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가페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것에 비하면 우리가 드리는 것은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엉망입니다. 치료불가능한 중환자입니다. 그러나 이를 치료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의 십자가보혈은 만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어떤 죄도 다 씻겨지는 약입니다. 이것 아니고는 죄는 영영히 씻겨지지 않습니다. 찬송가에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렇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 주신 것입니다.  “이를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 26:26)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십자가를 너무 쉽게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시에만 찔려도 아프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가죽에다 낚싯바늘 같은 것을 달았습니다. 이 채찍으로 옷을 벗기고 친 것입니다. 살점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외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고 사랑을 논할 수 없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하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지요. 그 날 밤 잡히시고 내일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은 상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그들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례주일로 지킵니다. 세례를 행했습니다. 이젠 성찬예식을 행할 것입니다. 이 떡은 보통 떡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점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또 마실 포도즙은 보통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쏟으신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받으셔야합니다. 우리는 사실 매일, 늘 이 십자가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자 그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양으로써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 대신에 소, 양, 염소, 비둘기를 대신 잡아 불에 태웁니다. 이것을 희생제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십자가 사랑이라 고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성례주일은 바로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감사합시다. 우리도 헌신합시다. 우리도 이 사랑을 전합시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 안에서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박충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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