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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영광 나의 기쁨 (살전 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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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명과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것을 찾고자 합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며 기도합니다. 성경을 한 절 한 절 읽으며 어느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인가 기대하며 소망하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어릴 적부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사명과 비전이 무엇인가 애타게 찾으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태국에서 선교에 대해서 기도하며 생각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궁극적으로 단 한 가지 동일한 사명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The Great Commission, 우리 주님의 지상 대명령으로 세계선교의 모토인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만난 주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면 나는 제자된 이후에 몇 사람이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였는가를 질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다시 제자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새문안교회 성도들이라면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것을 믿고 아는 것에 머물지 아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또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의 관심 역시 온통 제자 세우는데 집중되어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골로새서 1장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갈라디아서 4장 19절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성숙한 신앙의 단계에 이른 성도로 세워지도록 늘 기도하며 전도하며 권면하며 가르쳐 왔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때에 자신을 통하여 가장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주님 앞에 담대한 믿음으로 서는 이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많은 선교사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을 찾아 세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나간 이유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 혼자만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저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그만인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과 영생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 그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그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그런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국은 오랜 선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면에서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가 힘든 나라들 중의 하나입니다. 민족구성을 살펴보면, 주종족인 타이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을 다 합하면 약 20여 종족이 됩니다. 물론 이들 소수 민족들 중에 몇 민족들에게는 복음화율이 높은 민족들도 있지만 태국의 주종족이라 할 수 있는 타이족은 참으로 미약한 상황입니다. 지난 오랜 세월동안 많은 나라의 여러 선교사들이 태국에 들어와 선교하였지만 그 결과는 생각만큼 그렇게 크게 드러나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럽의 어떤 선교부는 수십 년의 선교지원에도 크게 변화가 없자 이제는 서서히 지원을 줄이며 철수단계에 들어간 선교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국에서 선교하는 가운데 분명히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선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수할 일군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태국 선교가 시작된 지 177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처럼 꼭 십일 시에 불려온 품꾼과 같은 기분입니다. 바라기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태국에도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셔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귀신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행복과 자유의 인생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생각과 자세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제게 언제부터 그 어려운 선교사의 길을 결심했느냐고 묻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내 몫까지 선교를 많이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사 혼자 선교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같이 함께 선교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전방, 후방, 선교사, 평신도 할 것 없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대로 힘을 합하여 총력 선교해야할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주님의 재림을 기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을 소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우리가 마땅히 주님의 지상 대명령인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일에 함께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교사가 따로 있고 평신도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태국 매쑤어이 기독교 교육센타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산족들입니다. 태국 민족 분포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과거 우리의 사회 계층을 생각해 볼 때 천민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민족들은 한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이 나라 저 나라에 소수민족으로 흩어져 살면서 힘 있는 민족의 눈치를 보며 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교육 외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기가 힘이 듭니다. 도회지로 나가 유학 생활을 해야 하는데, 집안이 가난하기에 그것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여자아이들은 14세 정도에 결혼하여 한 평생 산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 중에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산족이기에 태국 사람들과 똑같이 일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사회적 현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의 정황 속에서 만났을 때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둡던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게 되었고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에 기쁨과 감사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꿈과 소망이 없던 이들이 꿈과 소망을 품고 자신의 달란트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지난 4월 새문안교회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고 돌아갔던 것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작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큰 것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 커다란 격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훗날 나도 한국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국 민족을 향한 우리의 책임과 사명은 매우 크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큰 책임과 사명을 주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태국에 비하면 큰 복을 받은 민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최근 동남아에는 한류열풍으로 한민족의 자손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태국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하고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것처럼 한국은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요 꿈의 그리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러한 복을 생각하며 아울러 주신 사명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교회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선교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 계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과 능력, 특기를 가지게 하시고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게 하시고 또 남들보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지게 하셨다면 그것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과거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민족 역시 서양 선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학교를 세워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병원을 세워줌으로 치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교회를 세워줌으로 영적인 안식을 얻으며 꿈과 소망이 있는 삶을 영위해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양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 양화진에 가보면 그들이 한국에 와서 흘렸던 피와 땀과 눈물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지금부터 약 120년 전 이 조선 땅에 20대 미혼의 젊은 나이에 와서 지병으로 이 땅을 떠나게 되기까지 자신의 온 정열과 사랑을 조선 땅과 조선 민족에게 쏟았고 자손 5대에 이르기까지 그 후손들이 한국 땅에 머물면서 한국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들의 수고와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교의 사명과 선교사들을 통해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 대국 2위라는 위치에 올라 있으며 우리 교단의 태국선교의 역사도 50주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세계 교회에 내 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그러한 모습인가 생각해 볼 때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종종 들려오는 대형 교회들의 부정과 다툼과 갈라짐의 문제들은 한국교회를 배우고자 하는 선교지 교회들에게 보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다시금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가운데 제2의 도약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한 영혼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주안에서 바로 세우고자 가졌던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 여러분들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예수님을 알더라도 믿음이 연약한 이들에게 좋은 영적인 어머니 다시 말해서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뒤에서 기도해 주는 기도후원자가 되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지에서 한 사람을 주의 제자로 제대로 세우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워내는 것이 어려운가? 왜 태국은 그렇게 선교의 열매가 적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실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태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한 선교사님이 "선교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부터가 선교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태국 사회는 오랜 불교 전통 속에 인사조차도 불교식의 합장을 하는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과 생활 모두가 불교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태국 사람들은 종교의 가르침이 막연하고 불확실한 것을 좋아 합니다. 교리가 너무 확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들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마음에 부담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는 너무나도 확실하고 명확한 종교라는 것이죠. 태국 사람들은 명확한 교리같은 것을 모르고 믿을 때에 마음이 평온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불교를 믿을 때에도 교리는 잘 알지 못하고 다만 관습과 습관에 따라 신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국사람들만큼 낙천적이고 태평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국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열대지방의 더위와 풍부한 자원이 저들로 하여금 낙천적이고 무사안일주의에 젖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태국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서두르지도 않고 염려하지도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선교사들은 너무나 열정적이고 급하고 바쁘게 보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열정과 열심을 가진 선교사들의 모습이 태국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태국 사회는 변화가 느리고 사회 가족 간의 결속력이 강한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 개종이 되지 아니하고 가족 구성원 중에 한 명이 다른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동네 어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날 왜 이렇게 선교하기 힘든 나라를 남겨놓았을까요? 저는 태국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선교역사 177년의 나라에서 내가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선교의 열매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선교는 나의 능력과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120년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배를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마지막 때에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내가 이 선교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태국에 부흥을 일으키시기 위해 너무나 열심히 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손이 모자라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현재 매쑤어이 기독교교육센터에는 중,고등학생 43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욱 영적인 훈련을 받고자 하는 훈련생 13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람푼 한-태 기독교선교관은 태권도교실, 피아노교실, 영어교실, 한국어교실, 선교원 등 여러 활동들의 장들을 마련해 놓고 태국 학생들이 선교 센터를 찾아왔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기도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활동의 장들을 함께 꾸려나갈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장신대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오는 단기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에게 피아노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 등을 가르치며 사역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도 학교를 휴학하고 왔기에 공부를 마치고자 귀국하여 현재로서는 그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면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선교지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선교지도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분들이 6개월 혹은 1년간 지속적으로 오셔서 선교지의 사역들을 든든히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는 선교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제자된 성도로서 복음을 전하며 사람을 세우는 믿음의 활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자랑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사람을 키우는데 주력하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야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여러분들에게는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저는 저 분 때문에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이 곳 천국에 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로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일을 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그때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큰 영광을 얻을 것이며 또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와 제자 양육의 사명은 단지 목사님이나 선교사의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혹 그 반대로 그 날이 좀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될 그날은 그리 많이 남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 칠, 팔십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며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믿음의 족보의 대열에서 맨 끝자리는 면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세워 놓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세워나가길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주님의 제자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들을 통하여 영벌에서 영생으로 참 구원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제는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우리에게 귀한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 역사, 충만하심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들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새문안성도들 머리 위에, 지금도 선교지에서 수고하고 계시는 선교사들의 각 가정위에 그리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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