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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기도합니다 (삼상 2:1-11, 엡 1:15-19, 눅 1: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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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녀시인 이해인은 「내 기도의 말은」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 긴 말을 안 해도 / 금방 마음이 통하는 / 연인들의 통화처럼, 너무 오래된 / 내 기도의 말은 / 단순하고 따스하다" 긴 말을 하지 않아도 금방 마음이 통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기도란 그런 것입니다. 주님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주여..."라고 한 마디만 해도 내 마음 속속들이 살피시고 아시는 주님께서 내 소원을 훤히 알아들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냥 주님 앞에 앉아있기만 해도 주님과 내가 서로 연결되고 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내가 있다" 또는 "내가 거기 있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앞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있고, 주님 말씀 듣고, 그리고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끊고 나면 / 늘 아쉬움이 / 가슴에 남는 통화처럼 / 일생을 되풀이하는 / 내 기도의 말 또한,  부족하고 안타까운 /  하나의 그리움일 뿐 / 끝없는 목마름일 뿐".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할 마음조차 없지만 늘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무리해도 하면 할수록 더욱 기도의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인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예배에 관한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유대인들처럼 지식을 가지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모르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으로 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바로 이 최고 수준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한나를 통하여  2가지 종류의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상황이 다급할 때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구의 기도나 회개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그 기도가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2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대체로 간구와 회개의 기도로 일관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온전한 기도는 한나와 같이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도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을 잘 할려고 하면 우리 귀와 눈이 예민해야 합니다. 우리 귀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우리 눈으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응답을 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간구와 회개, 감사와 찬양의 균형 있는 기도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기도를 반성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먼저 2:1에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눈물 흘리며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때문에 즐거워한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이 좋아서 내가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할 때 대체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결과, 즉 응답을 보고 그 때문에 감사합니다. 이것은 예컨데 결혼하는 신부에게 "오늘 무엇이 기쁘냐?"고 물으면 신랑이 주는 예물이 값이 나가서 기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랑 집이 부자라서 기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냥 "이 사람이 내 신랑이 되었고 내가 이 사람의 신부가 되었으니 기쁘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 가락으로 된 복음 성가에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라고 했듯이 우리 기쁨은 주님 바로 그분 때문이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은 무엇을 주든지 주지 않든지 늘 무조건 감사하고 항상 찬양하고 늘 기뻐할 수 있는 전천후 신앙입니다.
구약의 한나의 기도와 너무나도 흡사한 성모 마리아의 기도를 보십시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은 너무도 엄청나고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차원 높은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고, 예수께서 내 구주이시며, 성령께서 나의 보혜사 되시는 이 놀라운 은총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한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누구이신가를 알고 감사합니다. 2절에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니.....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비교했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몰아쳐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데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반석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내 인생을 든든하게 떠받쳐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적수인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키고 멸시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내 반석이 되시는 한 그런 것 따위는 개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보장해 주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기도를 보십시오. 눅1:46에 "그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다"고 했습니다. 한나는 누구며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만군의 하나님께서 그 여인들을 돌보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마찬가지로 이런 은총을 받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3) 한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역전시켜 주는 분이심을 알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격분하여 눈물 흘리던 한나와 그 아들 사무엘의 인생을 역전승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구절만 인용해보면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8:에 있는 합력위선(合力爲善)의 은총입니다. 오늘 내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내 일에 개입하시면 결과를 완전히 바꾸어주십니다. 역전시켜 주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막내로서 형들이 그를 팔아먹고,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던 형통했습니다.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나중에 형들이 그에게 와서 양식은 물론 목숨까지 구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을 "바꾸어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한나의 인생도 역전승하게 해 주신 하나님, 마리아의 인생도 역전시켜 주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인생도 합력위선으로 역전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절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드라마의 각본은 하나님이 쓰시고 연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내 인생의 역전 드라마를 계속 연출해 나가십니다.

마리아도 한나와 똑같은 내용으로 기도했습니다. 과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황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드라마에는 십자가 저편에 부활의 승리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교만한 말을 하지말고 오만한 말을 입에서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오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러나 문제는 여기 국한되지 않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생사문제를 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원래 우리 사도신경 원문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내려가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자가나 무덤이나 음부에까지 내려가도록 한 것은 인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로마 정권과 유대종교가 결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온 세상이 예수님을 내려가도록 하는데 합심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승리했습니까? 죽이고 살리는 일이 그들 손에 의하여 결정되었습니까?

우리 사도신경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총동원해서 내려가게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올리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입이 예수를 주시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오늘 여러분의 현 위치는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주변의 여러가지 환경과 여건의 작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의 마지막이 아닌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궁극적으로 잡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려가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지금은 잠시 여러분이 다른 여건에 의하여 내려앉아 있다고 할지라도 거기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역전의 결론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이 기도의 마지막에는 위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처음에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뿔을 높여주신 것을 인하여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기름부음 받은 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메시아"입니다. 지금 한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메시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성취되기까지는 적어도 1천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셔서 이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1천년 후에 마리아의 입에서 한나의 기도와 같은 내용의 기도가 흘러나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나로 부터 3천 여 년, 마리아로부터 2천 여 년 후에 살고 있는 오늘 우리도 역시 한나의 하나님, 마리아의 하나님을 믿을 때 한나에게처럼 마리아에게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상1:에서 한나의 모습은 울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상2:에서 한나의 모습은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거기에 한나의 기도가 있었고,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한나의 인생은 역전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총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  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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